봉사·도전하는 삶 살고싶어

 차세대인물탐구(사회)-구논회 대학학원 이사장


〃간절히 바라는 건 언젠가는 이뤄진다.〃
얼마 전 신앙 간증을 한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았던 글귀다.
절실한 바람과 실현은 사실 우연히 되는 것은 아니다. 이면에는 정성과 노력이 뒤따른다. 간절히 원하는 만큼 이를 달성하기 위해 일상을 뛰어넘는 힘을 쏟아야 하고 모든 생활이 거기에 맞춰져야 한다.

대전 대학학원 이사장 구논회씨(44).
그는 〃교육부 장관이 되라〃는 달성하지 못할 법한 말과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한데 뒤엉킨 삶을 살아왔다. 아버지의 지나치면서 하신 말이 현재와 연결되었고 삶과 죽음이 교차되는 순간에도 해야할 일을 떠올린 결과가 건강의 완전한 회복으로 이어졌다. 그의 인생은 끈질긴 생명력과 함께 살아온 잡초 같은 인생이었다.
아직은 가야할 길이 많지만 지나온 삶은 즐거움보다는 고난이 대부분이었다.
소아마비와 암, 폐결핵이라는 치명적인 병마와 더불어 살아온 게 그의 인생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모습에는 어려웠던 과거보다 미래에 대한 도전, 현재에 대한 자신감이 자리하고 있다.

〃흔히 사교육은 기계적이고 학생들의 성적향상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공부는 기본적인 인격이 갖춰져야 할 수 있다고 보고 인격향상을 우선으로 합니다. 일선학교보다 더 강한 질서를 요구하는 것도 그 탓입니다. 단지 학원이라는 곳을 돈을 지불하고 교육을 사는 곳으로 생각하고 행동이 흐트러지는 학생들에게는 단호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학원을 경영하면서 돈만 벌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사교육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은 인격 향상에 도움을 주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구이사장은 지난 해 12월 대전참여자치연대 후원회장을 맡았다. 평소 자신이 주장해온 버는 돈의 10%는 사회를 위해 쓰겠다는 뜻을 실천하기 위해서였다. 후원회장을 왜 맡았는지가 궁금했다.

〃긴 투병생활 중에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무 대가없이 세상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 빚지고 산다는 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고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야 된다는 생각에서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민운동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재정자립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줄곧 생각해왔습니다. 제가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사회에서 번 이익의 10%를 사회에 환원하는 일환으로 후원회장을 맡았습니다.〃

"번 돈의 10% 사회 위해 쓸 터"

구이사장에 대해 행동 자체가 너무 정치적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다. 모든 활동이 자신의 정치적인 야망달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정말 그럴까. 내친 김에 항간에 떠돌고 있는 정치 참여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대한민국 남자치고 정치적인 욕구가 없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지난해 구청장 보궐선거시 어느 당에서 공식적인 요청이 있었습니다만 처지가 아니다라면서 거절을 했습니다. 정치에 대한 가치관과 철학이 서있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당과 시민단체에서 연합공천으로 나가라는 요구도 있었지요. 그동안 지구당 위원장직을 제시한 당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소문이 난 것으로 봅니다. 정치는 단어 자체가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게 현실입니다. 사회와 국민을 이롭게 하는 수단으로서 정치인이 필요한데 반해 사람들은 정치적 가치관과 철학을 생각하지 않고 정치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정치인이 욕을 먹게 됩니다.〃

난해한 부분도 있었지만 정치는 욕을 먹는 직업으로 여기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정치를 하겠다는 지 안 하겠다는 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정치에 참여하겠느냐고 직접 물어보았다.

〃정치는 정치적인 가치관과 철학, 소신의 정립이 있어야 합니다. 정치인은 적어도 이러한 것을 검증받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와 지역 민으로부터 직업을 통해서든 봉사활동을 이용하던 이런 것들에 대한 검증이 있어야 하지요. 이와 함께 절차적인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도 사전에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역 민으로부터 검증을 받고 어떤 형식으로든 자신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말과 자신의 정치 참여여부는 바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구이사장의 행적을 보면 여건이라는 조건을 전제로 때가 되면 정치를 하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하지만 자신이 현재 남을 도와주는 선행과 정치와는 별개로 들렸다.

"정치인은 객관적인 검증 필요해"

그는 지독한 암과의 투쟁을 통해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웠고 폐결핵이라는 또다른 질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부자로 죽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되었다. 남을 돕는 일은 돈이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아무리 돈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결코 이룰 수 없다. 그래서 지난 해 말 결식아동을 위해 2,000만원을 기탁하면서 '덤으로 사는 인생인데 힘 닿는데까지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고 약속했고 난치병 학생을 돕기 위해 2년에 걸쳐 매년 1,000만원씩 내놓기도 했다.

구이사장이 선행을 하는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다. 바로 어릴 적 어려웠던 자신을 떠올리면서 남을 돕고 있다. 충남 보령시 청라면 옥계리 정동 아랫말에서 구점서씨(80년 48세로 사망)와 이향경씨(81년 48세로 사망)사이에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 때 기억은 가난이 전부였다. 아버지가 교감선생님 댁에 나무를 해다 주고 등록금을 대신 납부 할 정도였으니 지독한 가난이었던 모양이다. 게다가 7살 때 소아마비가 걸려 장애자가 될 뻔했다. 그때 민간요법을 이것저것 쓰면서 어느 날 갑자기 거짓말같이 나았지만 지금도 어떤 약이 효험을 보았는지를 알 수 없다. 가난함 속에서도 공부는 잘했다. 옥계 초등학교와 청라중학교를 다니면서 보령군 전체에서 늘 1등을 했다. 부모님들도 공부 잘하는 자식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대전으로 유학을 보냈다. 형편은 물론 되지 않았다. 대전고 입학시험을 치뤘으나 역시 도농간 교육의 차이를 극복할 수 는 없었다. 시골에서는 하지도 않는 음악, 미술 점수에서 형편이 없었다. 낙방을 하고 보문고 응시를 위해 원서를 내러갔다가 제일학원으로 발길을 돌려버렸다.

〃아버님이 결정을 하는데 이래라 저래라 라고 한번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재수를 하게된 것도 제 혼자 결정했습니다. 돈이 있어서 재수를 하게된 것도 아니고 혼자 힘으로 할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마음속에는 이루지 못한 꿈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제가 이뤄주길 바랬지요.〃

대전고 입학 위해 재수

다음해에 대전고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고교 때 성적은 중상정도였다. 하지만 가난은 여기에도 따라 다녔다. 수학여행은 시골에서 고생하는 가족들 생각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충남대 경제학과 입학 후에도 웨이터와 벽돌공으로 생활과 공부를 겸할 수 밖에 없었다. 충남대 입학도 다니면서 고시공부를 하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결과였다. 하지만 1학년때 맞은 아버지의 죽음과 이듬해 어머니의 죽음은 청년가장으로 신분을 변화시켰다. 동생들을 이끌고 대전으로 이사를 결정하고 가장으로서의 눈물겨운 생활이 계속되었다. 도시락을 싸서 동생들 소풍을 보내기도 하고 서해안에서 조개를 주어서 팔기도 했다. 예산 오가면 한 농가에 가서 방학때 과수원 일을 하고 돈을 받아 동생들과 함께 살 양식을 마련했고 월부 책장사는 일거리가 없을 때하는 단골 직업이었다. 그러니 고시는커녕 대학공부가 재대로 될 리가 없었다. 어떻게 보면 졸업을 한다는 게 용한 일이었다.
졸업 때 한 교수님이 〃졸업 축하하네. 그런 데 자네 학교를 한 100일은 다녔는가〃라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얘기를 건네 오기도 했다.

〃나름대로 고시공부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내 공부를 하자니 동생들을 공장에 내보내야 하는 데 그런 상황에서 도저히 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포기하는 쪽으로 결정을 했지요. 4학년 때는 스님이 되겠다고 절에 한 보름동안 있었습니다. 역시 동생들이 찾을 것을 생각해서 제 생각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학 2학년 때는 심대평 현 충남지사의 배려로 대전시 총무과 발간실에 근무하기도 했다. 발간실 근무는 남동생에게까지 이어졌다. 군대는 '생계곤란'으로 면제가 되었다. 대학 졸업후 취업도 순전히 가족들을 중심으로 선택했다. 작은 월급으로는 생활이 어렵다는 것을 판단한 그는 능력에 따라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곳을 택했다. 바로 제약회사 영업직이었다

"장래가 정해진 직장은 싫어"

〃저는 장래가 정해져 있는 직장은 싫었습니다. 몇 년 후에는 계장이 되고 또 시간이 지나면 과장이 되는 자리는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직업이 하나인때는 없었습니다.〃

입사 면접 때 일화가 있다. 면접관이 성적표를 보고 '이게 뭡니까'라고 묻자 구이사장은 '성적이 약장사시켜줍니까'라고 대답하면서 그곳을 나와버렸다. 오히려 당돌한 행동이 도전적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입사 3개월 후 전국에서 5등을 하자 그 면접관은 '성적이 약장사를 시켜주는 건 아니구먼'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고시에 대한 열정은 버릴 수가 없었다. 제약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도서관을 찾아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동생들이 걸림이 되었다. 나 혼자만의 욕망을 채우기에는 상황이 허락하지 않았다. 진양제약이라는 곳에 재입사하여 평균월급의 3배를 받으면 영업사원으로서 능력을 발휘했다. 역시 제약회사 영업직은 오래 머무를 곳이 못되었다. 다른 곳에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아버님이 말씀하신 '교육부 장관이 되어 힘든 사람을 도와주라'는 말이 늘 마음 한곳에서 자리하고 있었다.

〃머리 속에서는 항상 학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지요. 제약회사에 다니면서 학원에가서 경영을 배우곤 했어요. 이때 우연히 집사람을 봤는 데 다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달정도 되어서 결혼을 하자고 하니 OK가 되었어요. 하지만 집안의 설득이 문제였지요.〃

신랑감 바꿔오라는 신부측 설득

부모님께 신랑감을 얘기하니 '사람 바꿔오라'는 말을 하더라면서 껄껄 웃는 구 이사장은 직접 면접을 통해 결혼에 성공을 하게된다. 결혼 과정도 마치 인생의 축소판을 보는 듯했다. 부인 유현미씨(40)와는 아들 자헌(13)과 딸 자혜(11)를 두고 있다.

〃인사 가는 날 결혼날짜를 잡았어요. 오랫동안 가장으로 있으면서 찌들고 비뚤어진 사람일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허락이 된 것입니다.〃

이때 충남학원에서 학원 대리운영을 요청했고 95년 암 선고시까지 기획실장, 운영이사를 맡게되었다. 95년 3월 16일 위암 3기 선고를 받으면서 충남학원과의 관계도 소원해지면서 갈등국면을 맞게된다. 구이사장은 이 대목에서 다소 흥분하였고 장시간 설명을 했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이면을 상세하면서 조목조목 얘기했다. 협박꾼으로 오해받은 과정과 합의서 작성 과정을 얘기할 때는 억양이 고조되면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듯했다.
아무튼 구이사장은 인터뷰후 두 차례에 걸쳐 이 부분은 다른 학원과의 관계도 있는 만큼 상세하게 쓰지 말아 줄 것을 요청했다. 투병과 함께 학원을 둘러싼 갈등속에서 폐결핵 진단을 받으면서 '이제는 정말 죽는구나'하는 마음이 들었다.

〃살아있는 동안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달 인생이었지요. 한달동안 항암치료를 받고 이상이 없으면 다음 달 진단을 받을 때까지는 안심하고 사는 거지요. 자식들한테도 빈둥빈둥 놀다가 죽어간 아빠가 되기 싫었어요. 그래서 빌었습니다. '살려준다면 가치있는 삶을 살겠습니다. 혹시 사업을 하거나 돈을 번다면 종교인은 아니지만 10%를 사회를 위해 쓰겠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위암 3기 속에 학원 설립

1996년 1월 대입전문 대학학원을 설립하면서 어려움 속에 기쁨을 맛보게 된다. 남들이 보면 정말 말이 안되는 일이었다. 몸 관리나 할 일이지 학원은 무슨 놈의 학원이냐는 게 세상 인심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병원에 누워서 시민단체의 활동을 보면서 참여해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고 그 사람들에게 얹혀 사는 느낌으로 부끄러움을 가졌다.

〃일하다가 3년, 약먹다가 3년이 지나버렸습니다. 병이 어떻게 나았는지도 몰라요. 이제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제가 세웠던 원(願)을 실천하고 싶어졌어요. 돈을 쌓아놓고 원하는 일을 할 수 는 없습니다. 3년째 되던 해에 참여연대 후원회에 참여했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고 있습니다.〃

최근 지적되고 있는 시민운동가의 정치 참여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정치 집단들은 패러다임의 전환과정에서 다양한 세력들이 등장해왔습니다. 한국사회는 이제 민주 세력들이 자리잡아왔고 점차 시민운동가들이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지요. 정치가란 그가 속한 사회의 패러다임하에서 가치관이나 철학을 구현하는 도구와 같다고 봅니다. 따라서 시민운동가들의 정치 참여가 자연스럽게 대두될 시기가 올 수 있다는 개연성과 가능성은 열어 둘 수 있다고 봅니다. 제 자신의 계획은 앞으로 많은 가능성을 갖고 도전하며 살고 싶습니다.〃



 ″인간다운 교육 강조하는 참교육인″

 대학학원 오효진 교사가 본 구논회 이사장


인간다운 교육을 강조하는 참 교육자입니다.
사교육의 단점을 최소화하고 긍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교육관과 경영마인드를 갖고 있습니다.
최근 사교육에 대해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면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교육수용자 중심의 학습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인재양성을 위해 열정을 받치는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습니다.
학원운영이나 생활모습에서 빈틈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완벽을 추구합니다.
대입학원이기 때문에 해마다 바뀌는 입시환경을 정확히 분석해 서울의 대형학원 못지 않은 진학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전지역 최고의 대입학원으로 성장시켜 이 곳에서 일하는 교사나 직원들이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주십니다.
앞으로도 지역인재 육성을 위해 노력해 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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