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예산여고 한국근현대사 지도 한성준 교사


충의사의 박정희 친필 현판 복원문제에 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전교조 충남지부와 '역사교사모임'이 예산여고를 시작으로 '윤봉길과 박정희의 생애'라는 제목으로 공동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다음 글은 예산여고에서 3학년을 대상으로 한국근현대사를 지도하고 있는 한성준 교사가 공동수업을 진행한 후 느낀 점들을 정리해 보낸 글입니다. 한 교사의 말대로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마련되어 우리나라가 더욱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전문을 게재합니다.(편집자 씀)

‘윤봉길과 박정희의 생애’라는 제목으로 특별 수업 자료를 만들어서 수업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예산지역 시민단체와 전교조 충남지부장 등이 충의사 현판 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하도록 요청하러 찾아간 자리에서 박종순 예산군수가 “일본 군인이라고 해서 친일분자라고 보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제에 들어가 별 짓 다한 사람 많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젊은 군인으로서 성공해보려는 꿈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군대가 없는 상황에서 ... 문제가 안 된다고 본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한 사실 때문이었다.

공동수업을 진행한 까닭

그러나 사실은 충의사 현판과 관련된 대립적인 의견들이 예산군청 홈페이지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나돌고 있을 때, ‘이 사안은 단순히 현판의 글씨를 누구의 것으로 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마치 17세기에 남인과 서인 간의 ‘예송논쟁(禮訟論爭)’이 겉으로는 상복을 얼마동안 입느냐의 문제로 논쟁을 벌인 것이었지만, 실은 그것이 조선이라는 나라의 정책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고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지를 결정짓는 정치 철학의 대결이었던 것처럼, 충의사 현판 문제도 역사의 흐름의 한 과정에서 대한민국의 정책이 어떤 성격으로 결정되어야 하고, 앞으로 대한민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느냐 하는 문제에 대한 논쟁이다’라고 생각하였다.
3학년을 대상으로 공동수업을 진행중인 한성준 교사.

그리고 지역과 관련된 역사적이며 시사적인 사안이 떠오르면 그것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라고 한 카(E.H.Carr-「역사란 무엇인가」를 쓴 영국의 저명한 역사철학자)의 말을 생생하게 실천하고 경험할 수 있는 좋은 역사 교육의 소재가 되기 때문에, 역사 교사는 놓치지 말고 그것을 수업에 끌어들여서, 역사를 배운다는 것이 단지 과거에 있었던 사실만을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는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게 하는 일이며, 나아가 앞으로 우리 민족과 인류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올바른 ‘역사 인식’과 ‘역사 의식’의 바탕을 마련하는 중요한 탐구활동임을 학생들로 하여금 깨닫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수업 지도안을 만들기 위해 다음의 인터넷 사이트들과 소장하고 있는 「예산군지」를 비롯한 몇 가지 책들을 참고하였다.

o www.yunbonggil.or.kr (윤봉길 의사 기념사업회)
o www.soguri.com/chungcheongnam-do/yesan-gun/deoksan-myeon/ (충의사 소개)
o www.soguri.com/seoul-teukbyeolsi/seocho-gu/yangjae2-dong/ (매헌 윤봉길 기념관 소개)
o http://www.yesan.chungnam.kr/index.html (예산군 - 문화관광 - 예산군지 - 일제지배 민족항쟁)
o www.archives.go.kr/president/pjh/profile.html (박정희 대통령 약력)
o www.516.co.kr (박정희 대통령 인터넷 기념관)
o new.newstoon.net/sub_read.html?uid=3385§ion=section202 (만화 박정희)

수업은, 1학년 국사 시간(한승연 선생님)과 3학년 한국근현대사 시간에 시행하였으며, 윤봉길 의사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애․충의사 현판 문제와 관련된 언론 보도문, 대립되고 있는 양측의 주장 등에 대한 읽기 자료를 충분히 읽은 후, 주요 내용들을 (교사가 모니터에 제시하는)사진 자료들과 함께 검토해 보고, 자기 의견을 발표하고 토론하며, 최종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정리하여 논술해보는 순서로 진행하였다.

뜨거운 관심속에 진행된 공동수업

예상대로 학생들은 높은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수업에 임하였다. 평소 오후 수업 시간이면 고개를 꾸벅이며 졸던 몇 몇 학생들도 초롱초롱 눈으로 자료를 읽고 모니터에 제시되는 시진들을 관심 깊게 들여다보았다.
진지하게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3학년 학생들.

예산이라는 지역에서 자라온 터라 윤봉길 의사에 대해서는 다들 대략 알고 있었지만, 박정희에 대해서는 중학교 때까지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서 부모님으로부터 지나가는 말로 듣거나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피상적이고 부분적으로만 들어서 사실상 단편적 지식 밖에 없었는데, 극단적인 찬양과 비판을 배제하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로만 만든 읽기 자료를 읽는 그들이 눈은 호기심과 놀라움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충의사 현판 문제가 단순한 글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대립적인 두 세력의 논쟁이라는 것을 읽기 자료와 교사의 설명을 통해 점차 깨달아가면서 학생들의 얼굴은 점차 진지하게 바뀌고 있었다.

의견 발표와 토론 시간이 되자, 처음에는 선뜻 일어나서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교사의 눈에는 양측의 대립되는 주장들이 모두 논리적 근거가 있어서 섣불리 판단하기 어려운 면도 있고, 혹시나 내 의견이 다름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하는 두려움도 있어서 그러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곧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아무도 의식하지 말고 오직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말해보세요! 나는 여러분이 되도록 다양한 의견을 말하기를 바랍니다! 사회적 쟁점이 되는 사안에 대해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일은 대학입시 수시와 정시 면접을 대비해서도 꼭 필요한 일입니다!”라는 교사의 권유를 듣자, 한 두 사람씩 손을 들어 발표하기 시작하였다.

충의사 박정희 친필현판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

발표하는 학생들은 대개 읽기 자료에 들어있었던 내용에 자신의 의견을 보태서 말하였고, 듣는 학생들도 무척 진지한 자세로 경청하였다. 그리고 각자 자기 의견을 적은 것을 수업이 끝나고 제출하였다. 의견은 다음 세 가지로 갈렸고 그 이유도 다양하였다.
1학년 학생들이 공동수업에 참여, 윤봉길과 박정희의 생애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① “충의사 현판은 교체되어야 한다!”
- “독립투사의 사당에 일본군 출신자의 글씨는 어울리지 않는다”, “박정희의 글씨가 거기 걸린 것은 그 사람이 대통령이었기 때문인데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면 앞으로도 권력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기념물을 만들어놓을 위험성이 있다”, “박정희는 경제개발을 했지만 민주주의를 탄압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글씨가 무슨 역사적 가치가 있나?”, “지금까지 걸려 있었던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제는 바꾸자!”, “윤봉길 의사께서 지하에서 기분 나빠하고 계셨을 것이다”, “외국인이 보면 한국 사람들이 독립투사의 사당에 일본군 출신자의 글씨로 현판을 단 것을 우습다고 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을 고통받게 했으므로 그런 사람의 글씨는 안 된다” ...

② “충의사 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글씨로 복원되어야 한다”
-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개발을 성공시킨 공은 인정되어야 하고 그의 글씨도 인정되어야 한다”, “박정희는 프랑스의 나폴레옹처럼 멋있는 사람이며 그의 글씨도 멋있다”, “어쨌든 대통령이었던 사람의 글씨가 아닌가! 이미 역사 유적으로 되어 있는 것을 함부로 훼손할 수 없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 글씨를 쓸 때의 마음은 순수했을 것이다”, “잘못이 있더라도 큰 공을 세웠으면 용서할 수 있으며 글씨까지 철거할 필요는 없다”, “만약 충의사 현판을 철거하면 현충사 같은 곳의 것도 철거해야 하는데 그것은 국력과 국가 예산 낭비이다” ...

③ “아무려면 어떤가? 현판 문제로 싸우지 말자!”
- “왜 이런 것 가지고 싸우는지 이해가 안 간다”, “싸우지 말고 화합하자!”, “솔직히 관심 없다”, “양측이 조금만 양보했으면 좋겠다”, “글씨만 좋으면 되지 누구의 글씨 건 무슨 상관인가? 그냥 두어도 좋고 바꾸어도 상관 없다” ...

그리고 의견들을 분류해 보니 학년과 반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3개 반 96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해 본 결과 ① : ② : ③의 의견이 62 : 22 : 12명으로 64.5 : 22.9 : 12.5 %로 나타났다. 다른 반에 계속 수업을 진행하여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된다.

더욱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수업을 하면서, ‘이런 수업이 살아있는 역사 수업이구나!’하는 생각을 했고, ‘학생들의 인식과 수준이 평소에 보던 것보다 훨씬 성숙되어 있구나’하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일본이 자꾸만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은 역사를 바르게 가르치지 않아서인데,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고 바르게 역사를 인식할 수 있는 교육을 한다면 반드시 일본을 따라잡고 평화 통일을 이루어 진정으로 인류의 평화와 공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밝은 미래를 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예산여고 한성준 교사.

개인적으로는 충의사 현판이 김구 선생의 글씨로 교체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역사적 정당성과 문화재적 가치’라는 기준으로 예산군과 문화재청에서 충분한 의견을 수렴하여 합리적이고 현명한 판단을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이 문제가 대립과 분열로만 치닫지 말고 현명한 해결책이 마련되어 우리나라가 더욱 성숙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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