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업체 사업자가 선정 입맛 맞게 평가

◈대도심 교통난 완화를 위해서는 교통영향평가제에 대한 전면적인 개선 등 정부차원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삼성 홈플러스 둔산점이 불과 4차선의 좁은 도로에 위치하고 있어 교통대란이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대도심 교통난 완화를 위해서는 교통영향평가제에 대한 전면적인 개선 등 정부차원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현행 교통영향평가제도는 인구 10만 이상의 도시지역을 대상으로 도시교통의 원활한 소통과 편의성을 증진하고 교통체계의 효율적 운영관리 등을 위해 사업자가 교통영향평가 전문용역업체에 의뢰, 시행하도록 규정돼 있다.

평가결과는 해당 지자체 교통영향평가심의위원회에 상정되고 심의위원회는 검토과정에서 보완, 시정조치 등을 내려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을 경우 최종 심의결정을 내리게 된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도시교통정비촉진법에 의거 지방교통영향심의위원회를 구성, 운영하고 있는데 이 위원회는 교통업무를 관장하는 실·국장을 위원장으로 한 각계 전문가 21인 이상 40인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또한 심의회의는 사전에 지정한 11명의 위원과 지정인원의 과반수 이상 출석으로 진행된다.

평가내용 중 최소한의 주변 여건만 조정 가능
◈형식적인 교통영향 평가로 할인점 앞 도로는 상시 교통체증 구간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심의 제도는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사업자가 교통영향평가 용역업체를 선정하는데 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사업자가 선정한 업체는 당연히 사업자의 입장에서 평가를 수행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교통영향평가심의위원회에서는 주차대수나 주변교통시설의 정비촉진 등 평가내용을 가지고 최소한의 주변여건만을 조정할 수 있을 뿐 구조적인 도로망 구조개선이나 원활한 교통흐름을 위한 조치에는 전혀 손을 댈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삼성홈플러스 둔산점과 관련한 디트뉴스24의 기사에 대해 대전시 교통국 관계자들이 "도시계획상 대형 유통업체가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들어 놓고 교통이 막히는 것에 대해 모든 책임을 교통영향평가가 잘못됐다는 식으로 몰아 붙이는 것은 곤란하다"고 항의하는 것도 교통영향평가제도의 한계를 인정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이와 함께 교통영향평가심의위원회 구성에도 문제가 많다.
현재 심의위원회는 지방자치단체 교통국장이 당연직으로 위원장을 맡고 있고 사업장이 소재한 관할 자치구 도시국장, 경찰서 경비교통과장 등 교통 관련 행정 공무원들이 심의위원으로 포함된다.
물론 교통 및 도시공학을 전공한 지역의 대학교수 등이 전문가 형태로 참여하고 있긴 하지만 도시계획상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사업추진을 막을 수 없다는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논리에 끌려갈 수 밖에 없다.

대전시교통영향평가심의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진명섭 교수는 "이미 도시계획상 상업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데다가 심의위원회가 사업 자체를 무산시킬만한 권한도 없어 심의과정에서 대부분 보완조치를 요구하는 선에 그치고 있다"며 "행정논리가 앞서는 상황에서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반대할 심의위원은 없다"고 말했다.

백화점 몇 달만에 예측 수요 넘어

이런 문제점 때문에 대전지역에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백화점 및 할인점의 교통영향평가가 건축승인을 받기 위한 형식적인 통과의례였음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난 2000년 3월 서구 괴정동 (구)국제특수금속 자리에 지하 7층, 지상 12층 규모로 문을 연 롯데백화점 대전점은 개점 3년도 안돼 주차 수요와 발생교통량이 당초 예측의 2배 이상을 뛰어넘어 주변지역의 주차난과 교통체증을 가중시키고 있다.

실제 지난 2000년 2월 롯데백화점 대전점 교통영향평가를 담당한 (주)건익기술연구단이 대전시에 제출한 보고서의 예상 주차수요는 2001년 822대, 2005년 979대이었고 발생 교통량도 2001년 유입 1,678대 유출 1,715대 등 총 3,393대로 예측했으며, 2005년에는 이보다 약간 늘어난 유입 2,044대 유출 2,089대 등 총 4,133대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롯데백화점은 개점 몇 개월 만에 밀려드는 주차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인근의 공한지를 임대, 주차장을 늘린 데 이어 지난 2001년 8월에는 백화점 정문 맞은편 공한지를 또다시 주차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임대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에 따라 오는 2005년에서야 4,000대를 넘어서리라고 예상했던 발생교통량도 이미 훌쩍 뛰어넘어 평일, 주말 구분 없이 무려 5,500대∼8,000대의 차량이 백화점을 드나들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11월 중구 문화동에 개점한 까르푸 문화점도 비록 8차선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긴 하지만 바로 옆에 대형유통시설인 세이백화점이 위치하고 있는 데다 평소에도 시내 및 도마동 방향으로의 교통량이 많아 도로가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유출되는 차량 대부분이 8차선 도로로 진입하고 있어 까르푸 및 세이백화점으로 진입하려는 차량들과 뒤엉켜 서대전 육교에서부터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지고 있다.
까르푸 측은 도로와 접하고 있는 전면에 3개의 완화 차로를 설치해 교통난을 줄이겠다고 했으나 이것 또한 건축허가를 받기 위한 생색내기식 교통대책이라는 비난이 높다.

시민 서모씨(41·중구 대사동)는 "주말에 까르푸 문화점에서 쇼핑을 마치고 서대전 4거리까지 진입하는데 무려 30분이 걸렸다"며 "바로 옆에 대형백화점이 있어 평소에도 교통량이 많은 대로변에 또다시 유통업체가 들어서 교통체증만 가중시키고 있다"고 강한 불만을 터트렸다.

삼성홈플러스 용전점 주변 심각한 체증

지난 연말 동구 용전동에 문을 연 삼성 홈플러스 용전점도 점포를 빠져나와 동부4거리 방향으로 직진하기 위해 3차로까지 무리하게 진입하는 차량과 완화차로를 이용 점포로 들어가려는 차량들이 뒤엉키기 일쑤여서 동선구조에 상당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더욱이 출구에서 빠져나온 차량들이 직진 차로에 진입한다 하더라도 불과 20m앞에 신호등이 설치돼 있어 주말 등 혼잡시간 대에는 점포를 빠져나온 차량들과 뒤엉키는 등 심각한 병목현상을 겪고 있다.
또 우회전 차량들이 점포진입 전용으로 설치된 2개의 완화차로를 통과해야 할지, 아니면 교차로 끝에서 우회전을 해야 할지 망설이는 경우가 많아 교통사고의 위험도 매우 높다.

대형 유통시설 입점에 따른 심각한 교통체증과 교통영향평가의 신뢰성 문제 등은 비단 대전의 일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현상이다.
(주)신세계가 광주시 광산구 우산동에 추진중인 이마트 우산점도 최근 주민들이 "심각한 교통체증을 야기할 수 있다"며 입점 반대 시위를 벌여 광주시가 교통영향평가 재상정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또한 인근의 충북 청주시에서는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이 "도심 한복판에 대형 할인매장인 까르푸가 개점하면서 교통 소통이 원활하지 못해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고 있다"며 교통영향 평가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 논란이 일고 있다.

교통영향평가제도 전면 대수술 시급

따라서 이 같은 할인점 등 대형유통시설 입점에 따른 심각한 교통체증의 악순환을 끊고 교통영향평가의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교통영향 평가제도에 대한 전면적인 수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장현봉 교수(목원대 교통공학과)는 "사업 자체를 무산시킬 수 없다는 제도적 한계가 있다보니 심의과정에서도 부분적인 보완조치를 요구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며 "비단 대전시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므로 국가차원의 과감한 제도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광진 대전경실련 사무처장은 "경제적 이익논리에 우선을 둬야 하는 사업자가 용역업체에 맡겨 교통영향평가를 하고 지방자치단체 교통국장이 당연직 위원장으로 활동하는 현행 심의위원회 체제 하에서는 제대로 된 평가결과가 나올 수 없다"라며 "대형유통시설 개점에 따른 더 이상의 교통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교통영향평가를 신뢰받는 외부평가 기관에 위탁하는 등 국가차원의 제도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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