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차량사이 아슬아슬하게 뒤쫓아

지난 18일 오후 3시50분 충남지방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상황실의 무전기가 다급하게 울렸다.
봄 날씨를 연상케 하는 기온에 맑은 하늘, 주말을 맞아 고속도로에는 행락 차량이 붐비기는 했지만 따뜻한 날씨만큼이나 사고는 어울리지 않은 상황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상황실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이종락 경장은 무전기를 급히 들었다.
부산으로부터 날아든 공조 수사 요청이었다.

지난 16일 부산시 금정구 부곡동 정모(45) 여인의 집에 침입해 흉기로 위협, 1천만원을 요구하고 성폭행하기 위해 폭력을 휘둘러 정씨의 이를 부러뜨린 강도강간 혐의자 이모(22)씨가 탄 부산발 서울행 고속버스가 관할 지역을 지난다는 급보였다.

이 경장은 고속버스 회사에 전화를 해 버스 운전사의 휴대 전화번호를 입수했다. 재빨리 일반전화를 들었다. 버스 기사에게 상황을 설명한 뒤 버스가 천안시 경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상황을 파악했다. 20여분만 더 달리면 경기도로 넘어가게 되는 상황이었다.

토요일 오후 부산으로부터 날라 온 급보

같은 시간 경부고속도로 천안 지점에서 교통 근무 중이던 고속도로 순찰대 212, 231호 차량에 긴급 호출이 날아들었다.
″OO고속 경기 70바OOOO호에 강도강간 용의자 탑승. 신속히 출동할 것″
두 대의 순찰차량은 조금의 지체도 없이 경보음을 울리며 시속 100km가 넘는 차량 사이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1분 1초가 급한 상황이었다.

고속도로에서 차를 찾는 것은 짚 덤불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어려운 일. 순찰대 보다 앞서 달리는지 뒤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문제의 버스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상황실과의 연락이 계속됐다. 고속으로 질주하는 차량들 사이에 2대의 순찰차는 지그재그로 미끄러지듯이 빠져나갔다.

무전을 주고받기 10여 차례. 고속 질주하는 차량 들 사이를 지나며 아슬아슬한 순간이 연출되기 5분여가 지나자 문제의 버스가 수백 미터 앞에 달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속버스 앞뒤로 두 대의 순찰차가 바싹 달라붙었다. 상황실에서는 전화를 통해 버스기사에게 순찰차가 붙은 이유를 설명하고 버스를 안전하게 갓길에 정차시킬 것을 요청했다. 이렇게 달리기를 약 1km. 버스는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부산기점 338km 부근지점 갓길에 정차했다.

변장한 강도강간 용의자 태연하게 검문 응해

버스가 채 서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경찰 4명이 버스에 황급히 올라탔다. 이들은 곧 버스기사에게 문을 닫을 것을 요구했다.
부산에서부터 내쳐 달려 피곤함과 지루함으로 잠을 자고 있던 30여명의 승객들은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어리둥절하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고속도로 위에서의 불시 검문은 흔치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버스에 오른 충남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 제2지구대 231호 박인규 경사와 권선국 순경, 212호 하태진 경장과 차신규 순경의 눈이 빛났다. 용의자를 검거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좁은 버스 안의 30여명의 승객들의 안전도 보호해야 하기에 경찰들은 극도로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4명의 순찰대원 중 2명은 뒤쪽부터 앞으로 훑어 나오며 승객들을 검문했고 나머지 2명 중 1명은 앞에서부터 승객들의 신분증과 얼굴 등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1명은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출입문 앞을 막아섰다.
상황실로부터 용의자 이씨가 육상선수 출신으로 달리기를 잘한다는 정보를 받았기 때문에 밖으로 도망 칠 것을 대비해 출입문을 봉쇄하고 양동 작전을 펼쳐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3명의 경찰은 용의자의 인상 착의와 신분증을 대조하며 승객들을 꼼꼼히 검문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상황실로부터 받은 첩보와는 달리 20대 초반의 다소 긴 스포츠 머리를 하고 있는 운동복 차림의 용의자는 찾아 낼 수 없었다.
버스 중간 지점 오른쪽 창가에 앉은 20대 청년이 정보의 내용과 비교적 일치했다. 그러나 이 청년은 순찰대의 검문에도 긴장하는 기색도 없이 경찰들과 눈을 마주치며 범죄자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태연함으로 경찰들의 혼선을 유도했다. 순찰대로서는 용의자의 가능성만 가늠할 뿐이었다.

손가락 상처 정보따라 재검문으로 검거

부산 경찰청에서 날라 온 첩보가 틀렸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부산 지방경찰청에서 직접 들어온 정확한 정보였다. 이틀 전에 일어난 사건이며 피해자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용의자의 인상착의에 의심을 달 수 없었다. 그렇다면 용의자가 변장을 했다는 것인가? 하지만 일치하지도 않는 겉모습만으로 어림잡아 용의자를 체포할 수는 없는 일었다.

그렇다고 1km 가량 추격전을 펼치며 어렵사리 세운 버스 안의 용의자를 눈앞에서 놓쳐 버린다면 충남 경찰의 위신이 말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끝날 경찰들이 아니었다.
좀더 확실한 단서가 필요했다. 상황실에서 접수된 정보에 의하면 용의자가 피해자를 성폭행 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을 물렸다는 것이다. 머리 모양이나 옷차림은 바꿀 수 있겠지만 하루아침에 손가락에 난 상처가 아물리는 없었다. 보다 명확한 증거였다.

승객들에게 손을 펴 보일 것을 요구했다. 승객들은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승객을 잠시 진정시키고 앞뒤에서 동시에 2차 검문을 시작했다.
승객들의 손을 검사하자 경찰들이 미심쩍어 하고 있던 중앙 오른쪽 창가에 앉았던 가장 유력한 용의자의 낯빛이 변했다. 전해들은 정보와는 달리 머리 모양은 스포츠보다 다소 길었고 깨끗이 정돈 돼 있었다. 운동복 차림도 아닌 전형적인 학생의 옷차림이었다.

순찰대는 서두르거나 당황하지 않고 청년에게 접근해 신분과 혐의점을 물었다. 용의자는 출입구가 막히고 자신의 주변을 에워싼 경찰의 용의 주도함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순순히 양손을 내밀었다. 상황 종료시간 4시 15분. 용의자는 곧 부산지방경찰청에 인계됐다.

부산으로부터 날아든 공조 수사 급보를 접수한 지 불과 25분만에 치밀한 작전과 재치 있는 검문으로 인해 자칫하면 놓칠 수 있는 범인을 잡아낸 완벽한 체포작전이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