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교회 찾아 합격기원 100일 새벽기도

◈불공에 여념이 없는 한 어머니의 모습.

초겨울 칼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토요일 이른 아침.
대전시내 한 불당에는 어스름한 어둠을 밀어내며 차량들이 속속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여자들은 사찰 안쪽으로 올라가고 남은 남자들은 담배를 건네며 삼삼오오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쪽 집은 스트레스 안 받아요? 어휴, 수능이고 뭐고 빨리 끝나야지 마누라며 애들도 다들 고생아냐?" "다들 그렇죠. 그나마 애가 별 탈 없이 그럭저럭 고 3을 보낸 것 같아서 다행이란 생각도 들고... 애 오빠 때는 엄청 고생했거든. 그놈아가 자꾸 딴 생각을 하는 바람에..." "휴, 그래도 이제 며칠후면 고생 끝 행복 시작이네요. 허허허" "껄껄껄껄"
그들은 다름 아닌 고3 수험생을 둔 아버지들. 아내가 불공을 드리는 한시간 가량을 밖에서 떨며 기다리다 다시 아내를 태워 집에 데려다 주면 임무 완수란다.

불당 입구 현관에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신발들이 가득하다. 살짝 문을 열고 보니 얼음장같은 마룻바닥 위에 방석을 깔고 100여명은 족히 넘는 아주머니들이 염주를 쥔 손을 합장한 채 절을 하고 있었다. 아이의 사진과 불경을 적은 헝겊이 놓인 방석 위에 몇 번째인지 모를 절을 하고 다시 또 일어서는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불공은 한 시간 넘게 계속됐다. 그 시간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수십 회. 때로는 무언가를 중얼거리기도 하고 위치를 바꾸기도 하면서 아이를 위한 염원을 부처님께 빌고 또 빈다.

"대입 전쟁 이제부터 시작이죠"
◈이른 새벽 불당을 찾은 어머니들의 간절한 모습.

"사정이 있어 못나올 때도 있었고... 그래도 100일째인 시험당일 새벽까지 안 빠지고 나오려고요"
불공을 마치고 나오던 이규윤(46·대덕구 송촌동)씨는 대전외고에 다니는 딸아이를 위해 지난 늦여름부터 이른 아침마다 불당을 찾았단다.

"수능도 그렇지만 그 이후에 기말고사와 논술, 심층면접 등이 남아 있어 어떻게 보면 이제부터 시작이죠. 사실 엄마 마음으로는 학과 수준을 좀 낮추더라도 좋은 학교로 갔으면 하는 마음인데...(웃음) 무엇보다 아이 건강이 제일 걱정이죠"

엄마가 새벽마다 불공을 드리러 가는 걸 딸아이가 아느냐는 물음에 "부담가질까 일부러 이야기는 안 했지만 절에 다니는 걸 아는 것 같아요. 오히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알아 최선을 다해줬으면 하네요"
찬 새벽 공기덕분에 걸린 감기가 아직도 낫지 않았다며 환히 웃는 이씨는 "딸아이의 합격을 빌어달라"며 총총히 새벽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 아이 잘되기를 빌 뿐이예요"
◈자녀를 위해 기도 드리는 아버지.

다음날인 일요일 새벽에는 수능특별예배를 드리기 위해 몰려든 신도들로 교회당이 꽉 찬다. 대전시 서구 탄방동 주택가에 위치한 비교적 큰 규모의 한 교회는 학부모석과 수험생석, 재학생 석을 따로 정해놓은 뒤 수능 특별기도시간을 가졌다.

목사가 수험생 하나하나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해주는 안수기도가 행해지는 동안 학부모 석에서는 간간이 눈물을 훔치는 어머니들의 모습도 보였고 눈을 감고 두 손을 꼭 쥔 채 끊임없이 기도하는 아버지들도 눈에 띄었다.

"그저 실수하지만 않도록 빌었죠. 아이가 좀 덤벙대는 성격이라...(웃음) 이제까지 해 온 것 처럼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요"
늘 출근 전 새벽 5시면 교회를 찾아 아이를 위한 기도를 해왔다는 김선욱(53·대전시 서구 탄방동)씨는 "모든 것을 주님께서 헤아려 주실거라 믿어요. 자신이 늘 희망하던 대학이 아니더라도 소신 있게 지원하라고 할 생각입니다" 라며 아이의 손을 꼭 잡고 교회 문을 나선다.

수능 시험일을 앞두고 깜깜한 새벽 어둠 속에 이리저리 빌 곳을 찾아 타는 마음을 달래는 우리의 부모님들. '대입'이라는 것이 꼭 학생의 실력으로만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치른다는 苦(괴로울 고)3. 내일 모레면 그동안 쌓은 실력을 발휘할 수능시험날이다. 부디 부모님들의 간절한 염원이 이루어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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