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여명 정보지·모니터 등 보며 열광

최근 들어 경마, 경륜, 경정장이 전국적으로 잇따라 건설되면서 국민들의 정서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애호가들은 최근 주5일 근무제와 레저산업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경마, 경륜 등이 선진국과 같은 대중 스포츠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시민단체 등에서는 도박이나 사행심을 조장하는 등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다며 이를 반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대전시는 레저산업 활성화와 지방세수 증대를 이유로 경륜장 건립에 대해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전시는 11월말까지 나올 경륜장사업 타당성 용역 결과를 토대로 사업추진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지방재정을 확충하려 한다며 사업추진에 제동을 걸고 나서 향후 어떤 결론이 맺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99년 문을 연 대전시 서구 월평동 한국마사회 대전 장외 발매소를 찾아 지역에서의 럭 스포츠(또는 갬블링 산업으로 불림. 경마, 경륜, 경정과 같은 내기 경기를 말함)의 현주소를 살펴봤다.

지방 장외발매소는 대전, 대구, 부산 3곳뿐

27일 토요일 오후 1시 퇴근 준비로 부산한 일반 회사와는 달리 대전시 서구 월평동 계룡건설 사옥 2∼5층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 마사회 대전 장외 발매소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 서구 월평동에 위치한 한국마사회 대전 장외 발매소.
장외 발매소는 서울, 제주의 경마 실황을 중계하고 승마투표권(마권)을 통해 투자(베팅)를 하는 곳으로, 전국에 총 28개가 있다. 이중 25개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일원에 집중돼 있고 지방에는 대전, 대구, 부산 등 3곳뿐이다.

대전장외발매소는 4개 층에 걸쳐 모두 1,220개의 의자가 설치되어 있으며 수용 정원은 3,388명이다. 듬성듬성 빈자리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의자는 가득 차 있었고 서 있거나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숫자는 점점 늘어나 오후 5시가 넘어서며 발매소는 만원을 이뤘다. 5,000명은 족히 돼 보였다. 일요일은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발매소 주변에서 정보지를 판매하는 한 판매원은 "경마가 열리는 날에는 보통 4,000-5,000명이 이곳을 찾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며 "특히 전라도 쪽에서는 관광버스로 사람을 모집해 단체로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장외발매소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과천, 제주 경마장의 경주실황을 중계하는 모니터와 의자 외에 불필요한 장애물을 없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마 예상지를 보며 정보를 교환하는 일에 열중해 있었다.

경주가 시작되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대형 모니터로 집중되며 말과 기수를 격려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잠깐 담배를 피우기 위해 복도에 서성이던 사람들도 황급히 담배불을 끄고 모니터로 달려갔다. 1분∼3분정도 소요되는 경주시간동안 입장객들의 함성 소리는 건물을 흔들었고 골인 지점이 가까워 오면 열광에 가까울 만큼 소리가 높아졌다. 주먹을 불끈 쥐고 ″더 쳐라. 더 쳐. 용식아 더 달려″라며 응원하는 모습 뿐만 아니라 뒤쳐지는 말과 기수에 대한 욕설까지 발매소 안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에이∼″ 경주가 끝날 때마다 들리는 가장 큰 소리이다. 일부 사람들은 마권을 들고 베팅에 따른 배당금을 환급을 받지만 상당수의 사람들은 마권을 구겨 바닥에 팽개쳤다.

대전시 지난해 117억원 세수입 올려

◈경주가 끝남과 동시에 장외 발매소 앞은 쏟아져 나오는 인파로 북적인다.
마권은 베팅 방법별로 단승식, 연승식, 복승식, 쌍승식 등으로 나뉜다. 단승식은 1위 1두, 연승식은 출전한 마필 중 1∼3위 중 1두, 복승식은 선후 순위에 관계없이 1위와 2위 2두, 그리고 쌍승식은 2두의 말을 1조로 하여 1,2위를 순위에 적중시키는 방식이다. 환급금은 물론 적중이 어려운 차례대로 쌍승식-복승식-단승식-연승식순으로 많다.

전국적으로 한 경주 당 보통 30억∼50억원 정도의 베팅이 이뤄진다. 이중 마권 발매액의 10%는 레저세로 지방세입에 징수되고 레저세의 60%, 20%는 각각 지방교육세와 농어촌특별세로 징수된다.
한국마사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경마공원의 하루 평균 매출액은 580억원, 연간 5조 5,091억원을 기록했다. 2000년에 비해 19% 매출액이 증가했다. 올해는 하루 646억원 연간 6조74억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마권수입의 10%에 해당하는 6,016억원이 지방세법에 의해 레저세로 납부됐다. 이 중 117억원이 대전시의 세입에 포함됐다. 지난해 대전시가 거둬들인 세금 6,211억원의 약 1.9%에 해당한다.

스트레스 해소와 레저로 경마장을 찾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경마에 중독된 사람들도 적지 않다. 마권의 기본 발매단위는 100원이며 1경주 최고 10만원까지 구매가 가능하다. 오전 11시 경마가 시작돼 30분 간격으로 12경기가 열리므로 규정에 따라 10만원씩 구매를 한다고 해도 하루 120만원 정도를 투자하게 된다.

더욱이 1경주 당 10만원으로 제한된 최고 한도 베팅액도 층 당 10여 개의 마권 발매 창구가 있고 한 사람이 여러 번 이용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런 제한은 무의미하다.

20대서 60대까지 다양한 계층 찾아

◈장외 발매소 앞은 사채업자와 호객꾼들이 진을 치고 있다.
발매소 안과 건물밖에는 돈을 잃은 사람들을 노리는 사채업자들이 전단지 등을 돌이며 서성이고 있다. 신용카드와 자동차 대출을 통해 즉석에서 고리의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인근에는 전당포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발매소를 찾는 사람은 예상보다 다양했다. 60대 노인에서 20대 초반의 여성까지 발매소 안에 보인 사람들에게 어떤 일정한 경향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대부분 호기심에 시작해 고액배당이라는 마수에 걸려든 사람들이 많다. '5,000원을 베팅해 500배 이상의 고배당을 받아 한번에 250만원을 벌었다'는 식의 달콤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시작한 사람들이 많다. 발매소는 경마가 직접 이뤄지는 경마공원과는 달리 ′꾼′들이 모이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12경기 중 5경기만에 200여 만원을 잃은 한 남자는 ″따서 돌아가는 사람들은 많이 보지 못했다. 대부분 돈을 잃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찾는다. 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면 경마가 ′도박′이 된다″며 ″경마가 도박이 되면 패가 망신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했다.

반면 경마를 ′운′이 아닌 정보 스포츠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경마를 1년째 계속하고 있다는 40대 남자는 ″인터넷이나 정보지들을 통해 말과 기수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어야만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자신의 노력여부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단순한 도박이 아닌 자기 노력이 있는 게임이라″며 도박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매주 10만원 내외의 돈을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각한 교통 체증 속 주변 업소들 특수 누려

오후 5시50분경 모든 경주가 끝나자 계룡사옥 일대는 발매소에서 나온 사람들과 ′신용대출′이 쓰인 명함을 돌리는 사채업자, ′OO 미시클럽′과 같은 전단지를 돌리는 유흥업소 ′삐끼(호객꾼)′들이 뒤엉켜 큰 혼잡을 이뤘다.

월평동 일대는 지난 99년 7월 대전 장외발매소가 개장한 뒤 형성된 신흥 유흥가라는 것이 주변 주민과 상인들의 설명이다. 돈을 잃어도 술을 마시고, 따도 술을 마시기 때문에 이곳은 주말이면 불이 꺼지지 않는다. 식당들도 경마가 열리는 날에는 특수(?)를 누린다.
특히 토요일 저녁에는 일요일 경마를 위해 숙박을 하는 사람들로 인근 모텔은 방이 없을 정도이다. 인근 유료 주차장도 주말만 되면 경마장을 찾는 외지차량들로 빈틈없이 가득하다.

동시에 빠져 나온 차량들로 인근은 교통지옥을 방불케 했다. 대전 번호를 단 차량만큼이나 충남·북, 전남·북 차량들이 많이 눈에 띈다.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대전을 포함해 대구와 부산에만 장외 발매소가 있기 때문에 중부와 서남부권 경매 애호가들이 이곳을 찾고 있는 것이다.

한 유료주차장 관리인은 ″평소에는 텅 비어 있지만 경마가 열리는 날에는 수용대수를 넘겨 주차를 시킬 정도로 자리가 모자란다"며 "주차 차량의 10대 중 6대 정도는 외지 차량들″이라고 말했다.

발매소 인근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관계자는 "평일에는 공실율이 높은 편이지만 주말에는 이 주변에서 방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며 "주말에 숙박하는 사람의 상당수는 경마를 위해 대전에 온 타지인들"이라고 말했다.

월평동은 경마가 끝난 후 40여분만에 본 모습을 되찾았다. 일부 사람들은 식당을 찾아 허기를 채우는가 하면 일부 사람들은 피로를 풀려는 듯 모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량 홍수로 북새통을 이뤘던 도로들도 평소대로 소통됐다.
대전의 신흥 특구 '월평동의 전쟁'은 이렇게 끝났다. 하지만 경마장 주변에는 다음날 '대박'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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