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7천 최대 관중 몰려 '월드컵열기' 재현
경기 후 자리 뜨지 않고 '대전시티즌' 연호


잘 싸웠다 대전 시티즌. 200여명의 관중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선수단 버스에 매달려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경기에서 진 대전 시티즌 선수들을 격려했다.

10일 오후 7시 노은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부천 SK와의 K-리그 대전 홈 개막전에 2만7천 여명의 시민들이 관중석을 메웠다. 이날 경기는 0 대 2로 부천 SK에 석패했지만 경기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대전 시티즌′을 연호하며 열심히 뛴 선수들을 격려했다.

2만 7천여 관중 대전 시티즌 경기 찾아

오후 5시 이미 서포터 클럽 ′퍼플 크루′를 중심으로 2천여 명이 관중석을 메우고 응원전을 벌였다. 관중들은 4만여 석의 장대한 규모와 반 개폐식 지붕으로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경기장에 감탄사를 질렀고, 초록색 그라운드가 바로 눈 앞에 펼쳐진 것을 확인하고는 경기장을 찾길 잘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기장 벽에는 ′샤프 김은중′′수호천황 최은성′′스나이퍼(저격수) 이창엽′등 선수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와 퍼플크루의 대형 깃발들이 걸려 있어 선수들에게 힘을 줬다.

오후 6시 30분경 양팀 선수들이 몸을 풀기 위해 그라운드에 나타나자 응원의 목소리는 더 높아졌다. 특히 부천 SK의 서포터 클럽 ′헤르메스′100여명이 남쪽관중석 상단에 나타나 응원전을 벌이자 ′대전 시티즌′을 외치는 소리가 경기장에 메아리쳤다.

같은 시간 경기장 남쪽 출입문은 직장과 학교에서 일과를 마치고 서둘러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장내 방송을 통해 선수들에 대한 소개와 응원 소리가 경기장 밖까지 전해지자 길게 늘어선 관중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오후 7시 경기가 시작됐다. 1층 관중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경기 초반 대전시티즌 선수들은 홈 경기 개막전에 대한 부담감과 SK의 미드필드 압박에 기세가 꺾인 듯 수세에 몰렸다.

전반 - 치열한 공방전, 아쉽게 선취점 허용

대전 시티즌의 골문 쪽으로 부천 SK의 날카로운 공격이 두 어번 이어졌다. 이때마다 시티즌의 골키퍼 최은성 선수는 국가대표 출신답게 SK의 공격을 차분히 막아냈다. 최 선수의 선방으로 다른 선수들은 안정을 되찾았고, 전반 15분을 넘어서며 선수들의 몸놀림이 점차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태호 감독은 벤치에서 선수들의 움직임을 지적하며 독려했고 이관우, 김광선 선수 등 후보 명단에 오르지 못한 선수들은 벤치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본부석 아래에서 경기를 애타게 지켜보고 있었다.

전반 25분부터 전세는 뒤바뀌어 시티즌의 날카로운 공격이 SK의 문전을 수 차례 위협했다. 이때마다 부천 최현 골기퍼의 손끝을 스치며 공은 골대를 벗어났다.
김영근, 장철우 선수로 이어지는 중거리슛 퍼레이드는 2만여 관중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반 개폐식으로 설계된 경기장은 두 선수가 중거리 슛을 날릴 때마다 ′펑 펑′하는 둔탁한 소리가 관중석 상단까지 전달됐다. 관중들은 슛이 터질 때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환호했고 슛이 벗어나면 ′아휴∼′하는 아쉬움의 탄성을 질렀다.

공방전을 거듭하던 끝에 전반 33분 SK 말리 국가대표 출신 용병 다보 선수의 오른발 슛이 시티즌의 골 네트를 갈랐다. 일순 장내는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 졌다. 하지만 2만여 관중들은 다보 선수의 골 세리머니가 채 끝나기도 전에 ′괜찮아′와 함께 ′대전 시티즌′을 소리 높여 외쳤다.

전반 경기가 끝날 때까지 대전의 공격은 계속됐다.
체력과 속도에서 SK 선수들에 절대 뒤지지 않았고, 투지는 그들보다 백배 높았다. 시티즌 선수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태클과 공중 볼 다툼은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을 압도했다. 그러나 골 운은 따르지 않았다. 전반전이 끝날 때까지 서너번의 공격으로 SK의 문전을 위협했지만 골대 옆을 스치거나 번번이 골키퍼 최현 선수의 손 끝을 맞고 골대 바깥으로 향했다. 전반전을 끝마치고 대기실로 향하는 선수들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후반 - 이을용 앞세운 SK에 투지로 싸워

후반전이 시작됐다. 선수들은 개막전을 반드시 승리하겠다는 다짐을 한 듯 몸놀림이 한층 빨라졌다. 뒤늦게 도착한 관중들은 1층을 메우고도 모자라 2층에 군데군데 자리 잡고 선수들을 응원했다. 축구전용구장이기 때문에 관중석 높은 곳에 앉은 사람들도 경기를 관람하는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전반전 선취점을 먼저 뽑기 위해 양팀의 문전을 수 차례 위협했던 것과는 달리 후반전은 미드필드 싸움이 치열했다. 중앙에서 볼 다툼이 치열해 질수록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들의 조바심은 심해졌다. 선수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투지로 SK 선수들을 괴롭혔다.

후반 8분. SK 문전에서 김은중 선수가 장철우 선수에게 헤딩 패스를 했다. 장철우 선수는 앞을 가로막는 2명의 선수를 피해 공을 뒷걸음질치며 달래는 동시에 몸을 180도 돌려 슛을 시도했다. 그러나 공은 발등에 정확히 맞지 않았고 SK의 골키퍼의 가슴에 안겼다. 관중들은 결정적인 기회가 무산된 것에 아쉬움의 탄성을 지르며 좀처럼 자리에 앉지 못했다.

후반 10분이 넘어서자 SK는 미드필드진 강화를 위해 월드컵 전사 이을용 선수를 투입했다. 대전 홈 관중들은 이을용 선수가 그라운드에 들어서자 큰 함성과 함께 약간의 야유도 보냈다. 야유를 보낸 것은 기량이 뛰어난 선수 투입에 따른 걱정이 앞서서였다.

이을용 선수의 투입으로 미드필드진이 보강된 SK의 우세가 계속됐다. 후반 13분. SK의 수비진영에서 높게 날아온 공을 전반전에 골을 기록했던 다보 선수가 잡았다. 그러나 시티즌 선수들은 오프사이드로 착각을 했고 손을 번쩍 들며 다보 선수와 부심을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다. 다보 선수는 침착하게 골키퍼 최은성 선수를 제치고 추가골을 기록했다. 관중들은 어이없이 추가 골을 허용하자 허탈함에 할 말을 잃었다.

최선 다한 선수들에게 엄지손가락 꼽아 격려

경기가 지속될수록 미드필드 진영의 공방전은 더욱 치열해 졌다. 시티즌 선수들은 몸을 사리지 않고, 사력을 다해 경기장을 누볐다. 관중들은 시티즌 선수들이 공을 잡을 때마다 ′골, 골′을 외치며 선수들을 독려했고, 열심히 뛰는 선수들에게 파도타기 응원으로 힘을 불어 넣어 줬다. 하지만 경기종반으로 접어들며 체력은 급속히 떨어졌고 계속되는 공세에도 불구하고 결국 한 골도 만회하지 못하고 경기를 마쳤다.

경기가 끝났지만 관중석을 떠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끝까지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환호와 함께 격려의 박수를 보내줬다. 답례하는 선수들에게 ′대전 시티즌′을 연호하며 격려하고, 다음 경기에서 잘 싸우라는 의미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다음 대전 시티즌의 홈 경기는 14일 오후 7시 지난해 정규리그 우승팀인 성남 일화와맞붙는다.


오후 6시 40분. 경기 시작 시간이 임박했지만 이세열씨(39, 대전시 유성구 송강동)는 가족들을 경기장에 먼저 들여보낸 뒤 정문 입구에 마련된 대전시티즌 서포터클럽 ′퍼플크루′부스로 향했다. 가족 전부를 퍼플크루 회원으로 등록하기 위해서였다.

대덕전문연구단지 관리본부에서 조경 업무를 맡고 있는 이씨는 대전 시티즌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이씨가 관리하고 있는 대덕연구단지 운동장에서 월드컵 열기가 무르익던 지난 5월 시티즌 선수들이 매주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선수들이 땀을 흘리며 연습하는 모습을 보고 애정이 싹튼 것이다.

또, 지난 6월 한달 간 계속된 2002 한·일 월드컵도 이씨 가족을 축구 가족으로 만들었다. 한국전 경기는 단 한 경기도 빼 놓지 않고 거리 응원전을 나섰다. 독일과의 경기는 충남 천안 독립기념관에서 응원했고, 10만여명이 모였던 중앙로 응원전과 월드컵 경기장에서 응원전을 펼쳤던 스페인전도 빠지지 않았다.

이씨는 ″가족들과 함께 한 이번 월드컵을 통해 아이들에게 건전한 스포츠에 접근할 기회를 줄 수 있었다. 우리 지역에 대전 시티즌이라는 프로축구 팀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특히 지난 5월에는 선수들이 열심히 땀 흘리는 모습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선수들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씨의 두 자녀 윤지(12, 송강초 5), 성민(8, 송강초1)도 월드컵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지켜보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는 듯 ″가슴이 떨린다″는 말로 소감을 대신했다.

이씨는 ″오늘 경기를 보고 아이들이 다시 경기장을 찾자고 조를 것 같다. 대전 시민으로서 대전 시티즌의 홈 경기는 반드시 찾아 선수들을 격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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