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원혼들 어떻게 달래주나…″
″억울한 원혼들 어떻게 달래주나…″
  • 우종윤
  • 승인 2002.07.08 1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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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내 학살 만행′ 희생자 위령제 열려
◈8일 대전 낭월동 골령골에서 200여명의 희생자 유족들이 참여한 가운데 산내 학살 위령제가 열렸다.
8일 오전 대전 낭월동 골령골 골짜기에서는 구슬픈 울음소리가 끝이지 않았다.

1950년 7월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다 군경에 의해 학살당한 정치범 및 민간인 수천명의 넋을 기리기 위한 위령제가 8일 오전 10시 200여명의 희생자 유가족이 참석한 가운데 대전 낭월동 골령골에서 열렸다.

제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4.3폭동'의 누명을 쓰고 끌려온 할아버지, 여수 순천에서 배고파 찾아온 군인에게 감자 몇 알 건넸다는 이유로 좌익으로 몰린 아저씨, 고향으로 피난 가다 머리 짧다는 이유로 끌려온 젊은이 등 골령골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사연들은 애절하기 그지없다.

억울한 사연을 안고 차가운 땅속에 묻혀버린 희생자들의 유가족은 그래서 더욱 서럽고 원통하다. 유족들은 위령제가 진행되는 동안 하염없는 눈물로 원혼들을 달랬다.

이런 가운데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심규상 실장은 유가족들 보다 더 안타까운 심정으로 위령제를 지켜보고 있었다.
심 실장은 지난 99년 처음으로 산내학살 문제를 사회 공론화한 장본인이다.

심규상씨, 오마이뉴스 통해 수차례 보도 공론화

◈심규상 참여자치연대 실장이 유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처음 산내학살에 대해 안 것은 92년도였습니다. 당시 시민운동을 하다 안동교도소에 수감된 적이 있는데 거기에 같이 복역한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산내학살에 대해 들었습니다. 95년 출감을 해서 개인적으로 조사를 해봤습니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민간인 희생자가 훨씬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낭월동에는 정치범들이 묻혀 있었다는 왜곡된 사실만 전해지더군요″

심 실장은 이런 사실을 알고 많은 갈등을 했다. 본인이 속해있던 민주주의 민족통일 전국연합이라는 단체가 재야 단체이다 보니 조사한 자료를 근거로 사실을 발표할 경우 친북 단체로 오인 받을 수 있다는 내부회의 방침 때문에 진실을 잠시 묻어 두어야 했다.

″99년 2월 미 국립 문서보관소에 있던 산내 학살장면이 담긴 사진이 비밀해제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AP통신을 비롯한 각종 언론을 통해 산내 학살의 진상이 서서히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영동의 노근리 사건과 맞물려 산내 학살도 공론화하고 진상을 조사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과거 조사했던 자료를 바탕으로 진실규명에 들어갔습니다″

심 실장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산내학살 만행을 알리기 시작했다.
2000년 2월에는 월간 '말'지의 기고를 통해 산내학살이 민간인 학살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를 통해 수 차례에 걸쳐 처참했던 학살현장을 생생히 전달해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져줬다.

◈산내학살 현장에 건물이 들어서 유족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이런 그의 노력으로 2000년에는 산내학살 희생자 유가족 모임이 결성됐고 7월 8일 첫 위령제가 낭월동 골령골에서 열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위령제가 한참 진행되고 있는 도중 한 노인이 심 실장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아니 도대체 여기가 어떤 곳이데 이 자리에 건물이 들어서. 시민단체들이 그동안 뭘 했기에 저렇게 버젓이 건물이 들어오도록 가만히 둬″

정부 소극적 태도·언론 무관심 아쉬움

제주 4.3 유족회 이중흥 부회장(56)도 학살현장에 들어선 건물을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제주야 벌써 유족회가 결성 된지 10년이 넘고 사회단체들이 진상규명에 적극 나서고 있어 대전보단 형편이 좋은 편입니다. 심규상 실장만 다그쳐서 미안한데 그래도 저 사람이 이쪽 일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열심히 하니까 자꾸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된다″며 학살현장에 들어선 건물을 보고 서운함을 표시했다.

이 부회장은 ″제주에서 위령제를 가지면 언론들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데 대전은 참석자들이 너무 적다″며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진실규명을 위해 지속적인 취재보도가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부탁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심규상 실장은 ″현재 산내 골령골 학살문제가 공론화 되면서 수많은 자료가 나오고 있지만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방치되고 있는 학살현장을 보존하고 지난해 국회에 제출된 통합 특별법 제정을 서둘러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위령제는 식전행사로 벌어진 영령천도대제에 이어 추념사, 추모시, 살풀이춤 등이 이어졌으며 추모제 이후 학살지 주변에서 추모 행진도 가졌다.

산내학살 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7월초 대전형무소 재소자 1,800여명을 한국 군경이 산내로 끌고 가 집단 학살한 사건으로 지난해 12월 미국 기밀문서 해제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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