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도 화로 2시간만에 한 줌 재로

태어나면 죽는 법. 자연의 이치를 누가 거스를 수 있는가.
유행가 가사 중에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라는 말도 있지만 최근 화장 문화가 정착하면서 유행가 가사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지난달 토지행정학회의 장묘문화 국민의식 조사에 따르면 52.3%의 사람들이 자신이 죽은 뒤에 화장을 해 줄 것을 원한다고 말하고 있듯이 화장은 새로운 장례 문화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 급속하게 유행처럼 번져나가는 화장문화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화장장의 하루를 르뽀 형태로 취재했다. 화장장이라는 특성 때문에 근무자와 유족들을 고려, 사진 촬영이나 유족들 인터뷰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예상과 달리 시신 타는 냄새 등 거의 없어

대전시 화장장은 다른 혐오시설과 마찬가지로 시내를 멀찌감치 벗어난 찾기 어려운 장소에 숨어 있었다. 정림동서 가수원 방향 정림교 바로 앞에서 우회전을 하면 갑천의 상류 지류인 도안천을 따라 자동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좁은 비포장 길이 나온다. 길가에 늘어서 있는 납골당 전문 석재사들은 화장장 이정표를 대신하고 있고, 고무 제품을 만드는 구식 공장들이 도심서 쫓겨나 자리를 잡고 있다.

이 길을 따라 약 1.5Km를 들어간 산 중턱에 대전시 시설관리공단 장묘사업소 화장장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 76년 세워진 건물은 최근 도색을 다시 해 20여년의 세월에 비하면 겉보기는 비교적 깨끗한 모습이었다. 일반인들이 시신을 태우는 냄새가 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산 속의 상쾌함 이외에는 전혀 다른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오전 9시. 이른 시간인데도 이미 넉대의 영구차량이 사무실 앞에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30여대 수용이 가능한 주차장에는 검은 띠를 앞 유리에 길게 드리운 차량들이 가득했다.

화장장의 업무 시간은 일반 기업이나 관공서보다 1시간 이른 오전 8시에 시작된다.
최근 화장이 크게 늘면서 아침 일찍부터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화장장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출근 시간을 앞당겨 오전 7시30분부터 접수를 받고 있다. 형평성을 이유로 예약을 받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항상 아침 일찍부터 차례를 기다리는 유족들로 사업소는 북적인다.

여종수 장묘사업소장은 "다음달부터는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접수를 받을 예정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밀려드는 민원인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특히 대전 장묘사업소는 지역을 제한하는 다른 곳과는 달리 전국 모든 지역의 화장을 받고 있는 데다 국립 현충원이 인근에 있어 수요가 많다는 설명이다. 이용 요금도 수도권을 제외한 충주 등 타 지역이 15만원을 넘는 것에 비해 15세 이상 시신 화장비용이 4만4천원으로 비교적 저렴한 이유도 한 몫 한다.

관련서류는 자연사의 경우 병원에서 발행하는 사망진단서와 일반 가정에서 사망한 경우는 동·면사무소에서 발행하는 시체 화장 신고서 만을 갖추면 된다. 사고사의 경우는 관할 경찰서에서 발행하는 검사지휘 확인서를 첨부해야 한다.

수요 많아 이른 아침부터 줄지어

모든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숙연해지듯이 화장장을 들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얼굴은 숙연함과 슬픔으로 가득했다. 이미 이틀 이상 뜬눈으로 밤을 세운 유족들이기에 세수도 제대로 못하고 머리도 감지 못한 모습은 슬픔과 초췌함을 더 했다. 하지만 유족들은 자신의 외모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맨 앞에 서 있는 영구차에서 관이 내려지자 유족들은 이승에서의 마지막을 맞는 고인의 관에 일제히 달라붙어 오열했다. 목놓아 부르면 고인이 다시 살아날까 울음소리는 점점 커진다. 동병상련이랄까. 오열하는 유족들에게 다른 유족들이 다가가 몸을 부축하며 위로의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은 화장장에서 볼 수 있는 따뜻한 모습이다.

영구차에서 내려진 관은 화장로가 있는 기계실 현관으로 곧장 들어갔다.
위생상의 문제로 공기에의 노출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유족들에게 될 수 있으면 짧은 시간 동안 보이는 것이 유족의 슬픔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근무자들의 설명이었다.
유족들은 관에 매달려 고인을 부르며 따라 들어가지만 기계실 안에는 출입이 금지돼 바로 앞 대기실에서 이승에서의 고인과의 마지막을 마쳐야만 했다.

시신을 화장하는데는 신장이나 몸무게에 따라 다르지만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가 걸린다. 한줌 재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많은 분량이다. 또 재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덩어리로 나오기 때문에 분쇄 과정을 거친 후에야 납골함에 모셔진다.

이 시간 동안 유족들은 기계실 바로 앞 대기실에서 슬픔을 달래며 기다리기도 하고 사무실 옆 30여석의 대기실이나 자신들이 타고 온 차안에서 짧은 잠을 취하기도 한다.

화장 건수 4년 새 3배 증가

5기의 화장로를 관리하는 기계실 직원은 모두 6명.
최근 화장 문화의 확산으로 화장로를 오전 8시부터 저녁 7시 30분까지 가동하기 때문에 이들의 출·퇴근 시간도 자연히 길어졌다. 휴일은 1년에 신정, 설날, 추석 단 3일간이다. 죽음에 휴일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화장로에 무리가 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연 평균 화장로 1기당 보수·수리 비용으로 2,000여만원이 소요된다. 최근에는 3개월마다 하던 정기 검사를 2개월로 단축했다. 화장로 1기당 하루 2회 정도 가동이 적당하나 최근에는 1기당 평균 4번을 가동할 정도로 화장이 늘었기 때문에 검사기간도 단축됐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곳 대전 화장장에서 행해진 화장의 총 회수는 지난 97년 2,782회에 비해 지난해 7,891회를 보여 4년간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올해 3월 한달 동안에만 이미 780건을 넘어서 화장문화 확산을 실감할 수 있었다.

혐오 시설이라는 이유와 연장 근무까지 겹쳐 직원들의 근무 여건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악했다.

화장로를 8시부터 가동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7시까지는 출근을 해야 한다. 또 오후 4시까지 화장 접수를 받기 때문에 오후 7시까지는 화장로를 가동해야 한다. 가동이 끝난 후 장비를 정리하면 8시나 돼야 퇴근할 수 있다. 하루 12시간 이상을 근무하게 되는 셈이다.

기계실 근무자 유모씨는 "사람이 사람의 몸을 태운다는 것이 정상적인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섭씨 1000도가 넘는 화장로 앞에서 두 시간 동안 시신이 타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라며 "시신을 완전히 소각하기 위해서는 수시로 뒤집어 주어야 한다"고 근무 여건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루 12시간 근무 직원들 파김치

하루에도 몇 번씩 유족들과의 마찰을 감수하는 일 또한 견디기 힘든 일이다.

직원 김모씨는 "여기에서 근무하기 위해서는 유족을 대할 때 표정에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합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과 며칠 밤을 세운 유족들의 신경이 보통 날카로운 것이 아닙니다. 또 고인의 마지막에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고요. 하지만 가끔 이성을 잃은 유족들과 마찰이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희들은 웃음을 잃은 지 오랩니다"라고 말하며 항상 그늘진 표정을 짓는 것이 더 힘들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이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주변의 시선이다.
취재를 하는 도중에도 나이나 이름 등을 밝히기를 꺼려했고 기사화 되는 내용에 자신들의 실명을 표시하지 말아 줄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박모씨는 "인간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이 일에 대해서 저희 나름대로 가장 고귀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희 직업을 듣고 몸을 움츠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닌가 봅니다"라고 말하며 대인 기피증까지 생겼다고 했다.

화장은 대부분 오전 시간에 집중된다. 매장 장례에서 주로 오전에 발인하는 것과 같이 화장도 오전 중에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또 장례식장이나 병원 영안실에서 더 많은 장례를 위해 아침 일찍 시신과 유족을 화장장으로 내 모는 것도 오전에 집중되는 이유이다.

오후 들어 장례 차량의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화장장이 아니라면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싶을 만큼 평화로운 분위기다. 일부 유족들은 나무 그늘에 앉아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도 하고, 피로 회복제를 마시며 화장장과는 어울리지 않은 한가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화장 문화 확산…확장이전 필요

이날 5기의 화장로 중 1기가 정기 수리를 하고 있어 가동된 4기가 총 14회의 화장을 했다. 1기당 평균 3.5회인 셈이다. 섭씨 1000도를 넘나드는 화장로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자연풍에 화장로를 식히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하루 2회가 가장 적당하지만 1기당 평균 4회, 최고 5회까지 가동되는 실정이다.

장묘사업소에서는 화장로의 정상적인 운영과 화장 수요를 맞추기 위해 하반기에 2기의 화장로를 늘릴 예정이다. 하지만 증축 없이 유족 대기실 공간을 줄이고 그 자리에 증설할 예정이어서 앞으로의 수요를 감안하면 미봉책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화장장을 옮기는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의 부지는 공원지역으로 묶여 있어 더 이상의 증축이 불가능하고 인근 지역에 아파트 단지가 생겨나 주거지역과 가깝다는 이유로 잦은 민원이 제기돼 이전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여종수 소장은 "화장장에서 냄새가 난다거나 위생상의 문제가 있다는 일반인들의 지적은 옳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12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바로 옆 관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 하지만 현재 수요를 맞추지 못하고 도심의 장례식장도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이 확장 이전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전시에서는 화장장 이전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계획이 없다.
대전시 여성정책과 관계자는 "올해 2기의 화장로를 증설하면 향후 4∼5년간은 수요를 맞추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또 근처에 주거지역이 없기 때문에 별다른 민원이 제기되고 있지 않는 이상 이전에 대한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혐오시설이라는 이름을 얻고 우리의 생활권 밖에 밀려난 화장장.
하지만 하루동안 체험한 화장장은 땅 속에서 몇 년 동안 썩는 냄새를 풍기며 생에 미련을 둘 인간의 몸뚱이를 단 한순간에 깨끗이 산화 시켜주는 시설이었다. 하루동안 망자의 혼을 느끼면서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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