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 끌려나오며 피맺힌 절규
 일부 포크레인 앞에 누워 맨몸 저지도

 대전용두동 강제철거 현장 르뽀



21일 새벽 6시.
새벽녘까지 세차게 내리던 비가 그친 대전시 중구 용두동 일대는 침울하기 그지없다. 황사로 인해 모래를 잔뜩 머금은 노란 하늘은 금방이라도 덮쳐올 것 같은 분위기다. 주민들의 마음도 날씨와 같았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건만 주민들은 일찌감치 아침밥을 해먹고 일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이 바로 대한주택공사대전지부에서 강제대집행을 실시하겠다고 공고한 날짜이기 때문이다.

언제 주택공사 측에서 작업을 시작할지 모르기 때문에 주민들은 초조한 발걸음으로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골목 입구에 부서진 가구를 끌어 모아 불을 놓는 등 장애물을 만들기도 했다. 주민들의 보호를 위해 서대전초등학교 앞에는 이미 200여명의 충청남도경찰청 기동대원들이 대기 중이었다.

주민들은 밤새 눈을 제대로 붙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날이 용두동에서의 마지막 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였다.
골목을 청소하고 있던 주민 권병덕(72)씨는 "오늘 집 부수러 온다는디 잠이 오겄어? 이제 어디가서 살아야 하는겨. 부서질 집이지만 그래도 내 집인디 청소는 해야지"라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철거반원 200여명 동원

어스름이 어둠이 걷힌 7시30분경.
50여명의 주택공사 직원들이 동네 어귀로 들어왔다. 이어 주택공사 측에서 고용한 일용직 철거반원들을 태운 경기 번호판의 관광 버스 6대가 도착했다. 어림잡아 200명은 넘어 보인다. 약 10여분간 업무분담과 작전회의를 한 이들은 대형 포크레인이 대기하고 있는 용두시장과 호수돈 여고 쪽 공터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철거반원들이 진입하는 두 방향으로 나뉘어 앞을 막아서는 60여명의 주민들. 이 중 2-3명이 포크레인 무한궤도 밑에 드러누웠다. 포크레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에서 였을 것이다. 포크레인이 서자 서너명의 주민들이 포크레인 위로 오르기 시작했다. 올가미를 만들어 목에 걸고 포크레인에 단단히 맸다. 포크레인이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불상사를 볼 것은 뻔했다.

일부 주민들은 지붕에 올라 목이 쉬어라 소리를 질렀다.
"어디 가서 살란 말이여. 여기서 30년을 넘게 살았는디. 여기 보상금 가지고는 어디 가서도 못 살어. 나 죽이고 우리 집 부숴" 결사적이었다. 7∼9평에 불과한 집에 살고 있는 이들에게 평당 80만원 내외의 보상금으로는 대전 시내 어디에서도 번듯한 전셋집하나 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보상금 현실화를 주장하며 강경히 맞서고 있다.

하지만 주택공사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2004년 12월까지 환경개선사업을 마무리하기 위해 더 이상 공사를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법원에서 미 이주 주민들의 집과 땅을 공탁 받아 소유권을 이전 받았기 때문에 언제든지 강제대집행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주택공사 관계자는 "지금까지 주민들과 충분한 대화와 협상을 했다"며 "주민들이 제시하는 터무니없는 보상액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도 바뀌지 않았다고 밝혔다.

주택공사-주민들 마찰 빚어

주택공사 측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에 주민 한 사람 당 네 다섯명의 철거반원들을 붙여 끌어내기 시작했다. 필사적으로 버텼다. 옷을 벗고 드러눕기도 하고 철거반원들의 팔뚝을 물어뜯기도 했다. 준비한 오물을 끼얹어 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젊은이들의 힘을 어떻게 당하랴. 하나 둘씩 도로 쪽으로 들려 나왔다. 일부 주민들은 그 자리에서 실신을 해 응급차에 실려가기도 했다.

약 40여분만에 모든 주민들이 도로 쪽으로 끌려나갔다. 자리에 주저앉아 쉰 목소리로 악을 써보지만 앞으로 가로막고 있는 철거반원들에 막혀 자신의 살림살이가 들려나오고 집이 부서지는 장면을 바라 볼 수밖에 없다.

첫 번째 집에 강제대집행 허가서를 붙이자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날 주택공사 측은 19가구에 대한 강제대집행을 실시했다.
주택공사 관계자는 "이주 거부를 주도하고 있는 주민들이 이번 대집행 대상입니다. 오늘 이후 15일에서 20일 동안 자진 이주를 독려하고 이후에도 이주를 하지 않는 주민들에게 대해서는 전면적으로 대집행을 할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좁은 골목길을 가득 메운 철거반원들은 약 10여 조로 나뉘어 일사분란하게 가재도구를 끌어냈다. 대여섯명의 철거반원들이 7평 남짓한 규모의 살림살이를 처리하는데 20분이면 족했다.

19가구 강제 대집행 실시

뒤늦게 도착한 주인 할머니는 약을 찾으러 들어가다 철거반원들의 제지를 받고 "부서지지 않게 싸주기나 혀. 얼마 안 되는 살림인디. 이것마저 못 쓰게 되면 또 사야 되잖어"라며 살림 하나라도 못쓰게 될까봐 안절부절 못하고 집 앞을 서성였다.

살림살이들이 들려져 나오면 대형 포크레인의 큰 덩치가 집을 덥쳤다. 낡고 오래된 집들이라서 너무 쉽게 주저앉았다. 30여년을 살았던 집이 부서지는 데는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약 20여분만에 집 한 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107세대 주민들은 아직도 보상금 현실화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법 앞에는 어쩔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한 반 이상의 주민들은 이미 체념 한 상태였다. 일부 주민들은 이미 자진 이주를 했거나 짐만 놔두고 다른 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동안 주민들의 이전거부로 용두1지구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차질을 빚어왔다.
70%이상의 주민들이 주거환경개선사업에 동의를 하고 그 만큼의 주민들은 이미 보상금을 받고 이주를 했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사람들은 용두동에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쉽게 떠날 수가 없는 실정이다.
2004년이면 용두동은 깨끗한 '용두1지구'로 거듭나겠지만 지금 포크레인을 막고 서 있는 주민들은 그때도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돌아서는 발길을 무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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