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인동장터 만세운동 재연 2천여명 몰려


3. 1 운동하면 많은 사람들이 유관순 열사의 아우내 장터와 탑골 공원에서의 기미 독립선언서를 떠올리지만 한밭벌에서도 그에 못지 않은 만세운동이 있었다. 바로 대전 동구 인동 장터의 3.16 만세 운동.

당시 1일, 6일 가마니 장터로 유명한 인동에 경성과 아우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30대 청년 양사고, 김노원, 장운심, 권학도 등이 태극기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만세 운동을 주도했다. 하지만 그 날 오후 헌병대와 보병대가 출동, 무차별 총격으로 시민들을 탄압했다. 이 과정에서 15명이 사망하고 수 십명이 부상당했으며 9명이 체포됐다. 인동장터 만세운동은 반나절만에 실패했지만 당시에도 교통의 중심지였던 대전에서의 만세운동은 삽시간에 일대로 퍼지며 전국적인 만세운동을 이끌어 냈다.

민족 예술단 우금치가 주관하고 동구청과 동구 문화원이 주최를 한 이번 인동장터 만세 재연은 올해 3번째 행사로 16일 오후 2시 인동 쌀시장 천변도로에서 펼쳐졌다.

2,000여명의 시민들이 인동장터를 가득 메운 이날 행사는 우금치 소속 배우들이 주축이 되고 풍물패, 기천무예단원, 재즈댄스 단원을 비롯해 일일 체험 배우 113명 등 총 200여명의 출연진이 참여해 대전에서 벌인 마당극으로는 가장 큰 규모였다. 뿐만 아니라 인동 장터 천변도로 150여m를 전부 재연 마당으로 이용하는 등 지난해에 비해 훨씬 규모가 커졌다.

200여명이 출연하는 마당극 펼쳐

오후2시에 시작된 1부 어울림 마당에서는 연극놀이, 풍물난장, 고문체험, 노래공연 등 연극단원과 일반 시민들이 함께 하는 공연을 벌여 본격적인 마당극으로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장터를 찾은 노인구씨는(63·중구 산성동) "신나지 뭐. 이렇게 풍물치고 노인네들이 놀 수 있는 때가 없잖어. 이 친구들 참 풍물 잘 노는구먼"이라며 풍물패가 본 무대에서 맨 끝 5마당까지 진행하는 내내 풍물패에 섞여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지난해까지는 공연장을 주무대 한 군데만 마련했지만 올해는 주무대를 비롯해 1 마당에서는 빼앗긴 산하에서는 한일합방에서 시작된 일제의 침략사를 다뤘고 2 마당에서는 일제의 정신대 운영, 고문체험 등 수탈과 착취를 재연, 3 공연장은 친일파, 매국노등 반역자 꼬리표를 단 배우들이 연기를 펼쳤다. 4 마당에서는 애국지사들의 독립운동을 재연하고 5 마당에서는 손석구 재즈 무용단이 친일파와 우경화되고 있는 일본을 꼬집는 내용을 형상화했다.

특히 각 마당별로 일제의 침략사는 물론 민족 독립 운동, 우리의 현재 삶에 대한 반성의 자리까지 마련하는 등 노인들을 비롯해 어린 학생들까지 모든 계층의 시민들이 참여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다채로운 장을 마련했다. 또 행사장 주변에 100여점의 독립운동 관련 사진과 자료들이 전시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친구들과 함께 왔다는 김현민(충남중 2년)군은 "학교에서는 3. 1 운동밖에 배우지 못했는데 대전에서도 이런 만세 운동이 있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워요"라며 역사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고 제법 어른스러운 대답을 했다.

독립운동 관련 자료 전시도

이어 3시에 2부 거리극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은 당시 인동장터 만세운동을 재연한 우금치 단원과 일일마당극 배우 113명, 일반 시민들이 거리의 군중으로 참여하는 체험극으로 시민들의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일본 헌병대가 일반시민들을 장터 5마당 쪽으로 강제적으로 몰아 한일합방을 선언하고 대형 제국기를 앞세운 일본 헌병과 키다리 일본인들이 나타나 조선인들을 착취하고 폭행한다. 탄압에 분노한 민중들은 국권을 되찾자는 결의를 다지며 만세운동을 벌이고, 시민 자유발언, 태극기 춤, 만세 춤을 추며 본 무대 앞까지 행진하며 한다.
시민들은 군중에 섞여 태극기를 흔들고 목이 터져라 만세를 외치며 마당극에 몰입했다.

일일 배우로 일본 헌병 역할을 했던 박노민(22·동구 가양동)씨는 "비록 화약이지만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는데 시민들의 분노에 찬 시선과 미안함 때문에 눈을 못 뜨겠더라고요"라며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총 연출을 맡은 류기형 우금치 대표는 "일일 배우들과 시민이 열린 공간에서 함께 참여를 해서인지 쉽게 거리극에 몰두하더군요"라며 이날 성공적인 공연의 성과를 시민들의 몫으로 돌렸다.

일본인 사죄 눈물 보이기도

2부 행사 마지막에는 일본 전 수상의 기마대장의 아내 사토 히사애씨(69)를 비롯한 6명의 동경 한일문화교류협의회 회원 6명이 본무대에 올라 일본의 과거 침략사와 현재의 역사 왜곡, 우경화에 대해 머리 숙여 사죄했다.

히사애씨는 "일본의 과오를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분단에는 일본의 잘못이 가장 큽니다. 저희들은 남북 통일을 위해 남은 여생을 바치기로 했습니다. 다시 한번 머리 숙여 사과 드립니다"라며 눈물을 보였다. 시민들은 아유 한마디 없이 박수를 보내는 등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본무대에서 진행된 3부 '통곡의 미륵바위'는 친일, 친미, 반공주의로 교묘하게 살아남은 친일파를 꼬집어 아직도 사회에 뿌리박고 있는 친일파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일제의 역사왜곡, 군사 대국화를 꼬집어 다시 한번 주위를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했다.
창작극 진행동안 무대 앞에는 눈물을 글썽이며 정신대 할머니가 침묵시위를 벌여 관람하던 시민들을 더욱 숙연하게 했다.

시민들은 오후 5시가 넘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질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우금치 단원, 일일 배우들과 함께 인동 장터 일대를 돌며 만세를 부르는 후에야 행사장을 떠났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많은 시민들은 마당극이 열렸던 자리를 정리하는 것을 돕는 등 참여 마당극의 힘을 보여줬다.

지역 축제 승화 등 확대 기대

한편 인동 장터 만세 재연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재연극에는 대전·충남의 10여개 문화·예술 단체가 참여 모니터링을 했다.
우금치 대표 류기형씨는 "내년에는 지역의 문화단체와 합동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모니터링을 한 이유도 내년에 더 나은 공연을 위해서다"라며 하루 행사가 아니라 2∼3일 정도 지속적인 놀이마당을 마련하고 싶은 바램을 밝혔다.

신효철 동구문화원장도 "인동 장터 만세운동은 동구만의 자랑이 아니라 대전의 자랑이다. 지역민의 축제로 자리잡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해 내년 행사를 확대할 뜻을 비쳤다.

행사 내내 인동 장터는 축제 분위기였다. 2000여명의 시민들은 각 마당 앞에 맨바닥에 앉거나 인도에 걸터앉아 풍물 장단에 어깨를 들썩이기도 하고 일어나 소리쳐 만세를 불렀다. 부모들과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들은 일본 헌병의 강압적인 행동에 발길질을 하며 점점 마당극에 빠져들었다.

일본인들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자신들의 침략을 정당화시키려는 노력을 한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정작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우리 민족에 대한 일제의 침탈과 압박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한다.
인동장터 만세재연 운동에 많은 학생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일본의 과오에 대해 사죄하는 일본인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헌병 역할을 했던 연기자들에게 발길질을 하는 교육이 체험교육으로서의 참된 교육이 아닐런지.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