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연배우 박광현 등장하자 사인 공세
 3시간 준비 끝에 10초짜리 장면 ″OK″

 대전서 찍는 영화 ′뚫어야 산다′촬영 현장


대전에서도 인적이 드물기로 소문난 유성구 가정동 공무원 교육원이 시끌벅적하다.

지난달 9일 크랭크인 해 5월 중순 개봉을 목표로 현재 50%의 촬영 진척을 보이고 있는 영화 ′뚫어야 산다′(고은기 감독, 태창엔터테인먼트)의 2차 촬영이 지난 4일부터 14일까지 대전공무원 교육원을 비롯한 대전시내 일원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시에서는 ′문화산업지원센터′ 개관이후 첫 번째 프로젝트인 ′뚫어야 산다′를 위해 교육원을 촬영장소 뿐만 아니라 숙소로 대여하고 대전시청사, 둔산경찰서, 평송 청소년 수련원 등을 촬영 장소로 무상 제공하고 있다.

고은기 감독, 박광현, 박예진 주연의 영화 ′뚫어야 산다′는 도둑집안과 형사집안의 대를 이은 대결을 큰 줄거리로 한 코믹액션물이다.
국내 최초로 컴퓨터 게임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첨단 과학도시 대전의 이미지와도 잘 맞는다는 평가다. 제목 '뚫어야 산다'는 두 주인공이 개발한 컴퓨터 게임의 방어막을 서로 뚫어야 하고, 또 아버지 세대의 앙숙관계를 두 주인공이 시원하게 뚫어야 하기 때문에 붙여졌다는 설명이다.

9일 촬영이 있는 교육원 대강당은 오전 10시부터 촬영준비를 위한 스태프들의 움직임으로 부산했다. 본격적인 촬영은 오후 4시경이나 돼서야 시작되지만 무대와 컴퓨터 장비들을 설치하는 스태프들의 손길이 분주했다.

이날 촬영되는 내용은 남녀 주인공이 컴퓨터 게임대회에 나가 10년만에 재회를 하게 되는 장면.
게임 중계 세트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카메라와 조명, 음향 장치 등 기본적인 것 외에 컴퓨터, 멀티비전, 무대 등 준비할 것이 보통 많은 것이 아니었다.

장비팀의 장동혁씨는 "특히 저희 영화는 세트나 장비가 많아서 촬영 시간에 비해 준비시간이 많은 편입니다. 스태프들의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죠"라며 말하는 동안 크레인을 조립하는 일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 질문하는 것이 일을 방해하는 것 같아 미안스러웠지만 영화일 하는 사람이 다 그렇다는 말을 들으니 조금 마음이 놓였다.

다행히 전날 밤샘 촬영이 없어서 촬영 준비가 여유로운 편이라고 말했지만 스텝들의 손놀림에서는 전혀 여유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영화는 드라마와는 달리 돌발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촬영 도중에도 수없이 세트나 장비들을 재배치해야 했다. 때로는 보조 출연자들이 모자라 스태프들이 긴급 투입되는 경우도 많았다. 이날 촬영에 본 기자도 본의 아니게 게임의 심판역을 맡기도 했다.

텔레비전 드라마가 장기간 방송되기 때문에 지난 줄거리에 이어져야 한다는 부담이 있는 것에 비하면 영화는 감독이나 배우, 스태프들의 요구나 주관에 따라 즉흥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간다. 정해진 시간 동안 좋은 화면을 위해 될 수 있으면 많은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스태프들의 잰 손놀림은 만성이 된 듯 싶다.

권남기 조감독은 "촬영 준비가 늦을수록 영화사뿐만 아니라 스태프들에게 손해가 됩니다. 그날 준비해 놓은 세트에서 찍어야 할 내용은 무슨 일이 있어도 찍어야 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밤샘 작업이 많습니다"라며 때로는 스태프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모두들 별다른 불평없이 일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보조 출연자는 '작은 주인공'

점심을 도시락으로 해결하면서 시간을 아껴 세트를 준비한 이유는 보조 출연자들 때문이었다. 컴퓨터 게임대회 중계 방송 화면이니 만큼 청소년 관객들이 있어야 했다. 인근 대덕전자기계고등학교에 협조를 구해 학생 70여명을 동원했다.

학생들이 도착한 것은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촬영이 오후 늦게 끝난다는 말에 토요일 오후를 희생해야 하는 아이들의 불만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스태프들의 손놀림은 점점 빨라졌고 막내 스태프들은 숨가쁘게 뛰어다녔다. 여기저기서 부르는 소리에 다급함마저 느껴졌다.

몇몇 아이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고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세트 준비가 완료되는 1시간여 동안 아이들을 잡아놓기 위해 자구책은 최소 인력으로 아이들과 축구를 하는 것.

주연 배우 박광현씨도 나섰다. 이제 40줄에 들어선 제작사 태창엔터테인먼트의 부사장도 바지춤을 걷어 올렸다.
(주)태창엔터테인먼트 사장 김남희씨는 "연기자들은 어차피 정식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영화에 충실해야 하죠. 또 직업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보조 출연자들은 그렇지 않아요. 특히 학생들 같은 경우는 공부를 해야 하는 본분이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고요"라며 연신 학생들과 아이들의 언어로 능숙하게 농담을 건넨다.

오후 2시30분이 가까워서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됐다.
고은기 감독이 직접 메가폰을 어깨춤에 둘러메고 관객석 앞에 섰다. 짧게 깎은 머리, 세상에서 가장 편해 보이는 옷차림, 부담스럽지 않은 평범한 얼굴, 35세라고 보기에는 순진함이 얼굴에 묻어 있었다. "내가 감독이야"라는 말에 몇몇 아이들은 실망한 듯 "진짜요"라며 돼 묻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의구심은 촬영이 시작되자 바로 사라져 버렸다. 고은기 감독에게서는 '귀여운 카리스마'가 풍겼다. 순진한 외모, 다소 여성스러운 말투, 아이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젊음. 이런 것이 아이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불만은 금새 사라지고 감독의 연기 지도에 반응을 보였다.
"저희들은 지금 게임을 구경하러 온 거야. 두 주인공의 팬이기도 하지. 그러니까 게임의 향방에 따라 너희들의 표정이 변해야 해. 표정연기를 잘 해야 돼"라며 상황 설명과 함께 자신이 직접 시범을 보였다.

영화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10초 정도에 불과하지만 없어서는 안될 장면이다. 고감독은 "너희들이 없으면 영화를 만들 수가 없어. 너희들도 영화의 작은 주인공인거야"라며 아이들을 독려한다.

"레디∼액션". 고감독의 사인이 떨어졌다.
두 주인공 무대 등장, 관객석 관중들 환호, 손을 들어 환호에 답하는 주인공들. 환호 사그러 들면서 두 주인공 컴퓨터 앞에 앉는다.
"컷".
불과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촬영은 3시간이 넘은 오후 6시가 다 돼서 끝났다.

촬영을 마치고 촬영장을 나서는 아이들의 기분은 처음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촬영 내내 가장 불만이 많던 송치현(대덕전자기계 고등학교 2학년)군은 "저 오늘 아르바이트해야 하는데 못 갔어요. 분명 혼나겠죠. 월급도 깎이고. 하지만 광현이 형이랑, 예진이 누나 직접보고, 사인도 받고 영화에도 출연하고. 더 좋은 경험이었어요"라며 사인을 받은 종이를 들어 보였다.

이날 아이들이 출연료로 받은 5천원은 하루 종일 일하고 4만원 정도를 받는 다른 보조 출연자들에 비해서 적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는 5천원이라는 돈보다는 새로운 경험, 영화에 '작은 주인공'으로 출연했다는 의미가 더욱 컸다.

영상문화도시로의 첫 걸음

영화 스태프들은 아니지만 '뚫어야 산다'의 가족이 된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공무원 명찰을 가슴에 달고 짙푸른 작업복을 입은 사람 하나가 촬영장을 연신 바쁘게 오갔다. 대전시 과학기술부의 윤정식 주사.

"여기 사람들 아무것도 몰라요. 제가 따라 붙지 않으면 꼼짝 못 합니다. 특히 공무원 교육원 근처는 상가도 없고, 식당도 없어서 제가 직접 소개하지 않으면 안돼요"라며 다친 스태프를 위해 반창고를 구하려 바쁜 걸음을 옮겼다. 이날 보조 출연한 학생들도 학교에 직접 공문을 보내 섭외했다.

윤주사는 촬영팀이 대강당을 모두 비운 밤 11시 30분까지 촬영장을 지켰다.
"오늘은 그나마 다행이네요. 밤새는 일이 태반인데..."라며 촬영장 주변을 다시 돌아본다.

대전시는 첨단과학도시라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영화제작에 매우 적극적이다. 특히 이 영화는 컴퓨터 게임을 주 소재로 다루고 있고 극중 지문인식, 홍체인식, 모션캡쳐 등 첨단과학을 응용한 기술이 많이 등장한다. 첨단과학도시 대전과 가장 맞아떨어지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전은 영화문화산업도시로의 발걸음을 이제야 막 떼기 시작했다.
영화하면 떠오르는 도시는 부산이다. 부산은 지난 수년간 국제 영화제를 치러왔고 '친구' 흥행 이후 최고의 촬영 장소로 각광 받고 있다. 시의 체계적인 지원도 한 몫 한다.
하지만 부산은 도시가 전체적으로 지저분하고 낙후돼 있기 때문에 70-80년대 시대극이나 뒷골목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나 적합하다는 것이 영화인들의 지적이다.

고감독은 "부산에서 영화 찍기는 참 편해요. 시의 적극적인 영화지원 정책덕분에 영화에만 전념하면 돼요. 시민들의 관심도 상당하고요. 하지만 대전이 부산보다 장점이 더 많습니다. 우선 서울에서 2시간이 안되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출연진 스케줄 조절이나 이동 촬영이 수월하죠. 또 신생도시이기 때문에 깨끗해서 현대물을 찍기에 적합합니다. 특히 이번 영화 같은 경우는 컴퓨터 게임이나 생체 인식 등이 소재로 등장하기도 해 대전의 첨단 과학도시라는 이미지와도 맞아 떨어지죠"라며 대전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한다.

아직 영화기반 갖추지 못해

하지만 대전 시민들의 관심이 적은 것이나 제작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영화 촬영장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잡음이 들어가거나 사인 공세로 촬영이 매우 어려운데 대전 시민은 너무 관심이 없어요. 촬영해도 그냥 지나쳐가고 아까 아이들도 여배우에 대해서 그렇게 짖궂게 굴지도 않더라고요"라며 양반의 도시라고 농담을 한다.

촬영팀은 제작기반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토로했다.
지난 1월 대전문화산업센터가 개관했지만 아직 활성화되지 못했고, 35mm 필름을 현상하는 곳이 없어 서울로 직접 가야 하는 불편이 감수해야 했다. 그날 찍은 내용을 확인해야 하는 촬영팀에게는 보통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 영화를 찍기 위한 인적자원도 전무한 상태여서 현재 이 영화도 모든 촬영 스태프들을 서울에서 공수해 온 상태다.

대전시 측은 5월중 영화인, 각급 행정기관장, 엑스포과학공원 사장, 시민 등 약 40명 규모의 '영화위원회'를 발족해 체계적인 영화지원사업을 펼칠 계획이다.
또 엑스포과학공원에 10만평 규모의 '첨단문화산업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현재 대전시내 5개 대학에 용역을 맡겨 놓고 있다. 3월 26일까지 개발계획안을 확정하고 선발된 대학을 중심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4월중 공사를 시작, 2006년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촬영은 주인공들의 개별 촬영과 인서트(인물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 촬영을 마치고 밤 11시 30분이 되어서야 끝났다.
고감독은 "오늘 촬영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습니다. 보조 출연한 대덕전자기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많이 도와줬죠. 보통 한 컷 찍으려면 7∼8번 NG내는 것이 보통인데, 녀석들이 너무 재밌어 하더라고요. 그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네요"라며 아이들에게 공을 돌린다. 고 감독은 숙소로 돌아가 오늘 찍은 내용을 정리하고 내일 촬영 준비를 해야 한다며 교육원 3층에 마련된 숙소로 향했다.

영화산업 인프라 구축 시급

이튿날 저녁 어스름이 깔릴 무렵 이들은 평송 청소년 수련원에 다시 모였다. 촬영팀은 겨울을 만난 듯 두꺼운 겉옷을 하나씩 더 입었다. 야간 촬영이 있기 때문에 중무장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이날 촬영은 폭력배의 소굴로 남자 주인공을 찾아 나선 여자 주인공 박예진씨의 액션 신이었다.
'매트릭스'형 액션을 선보이기 위해 대형 크레인과 스턴트맨들이 동원됐다. 주인공과 불량배들과의 박진감 넘치는 액션장면의 촬영에 들어가며 연신 NG가 났다. 위험한 장면을 찍을 때는 여지없이 스턴트맨이 대역을 맡았다.
이날 촬영은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아침 7시부터 촬영이 있다며 잠깐 눈을 붙이러 숙소로 돌아간다는 이들의 뒷모습을 뒤로하고 평송 수련원을 나섰다.

흔히 대전을 문화의 불모지라고 부른다. 실제로 시민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대전은 이제 막 첨단영상문화도시로의 발걸음을 뗐다. 대전에서는 그동안 '봉자' '스물넷' 두 편의 영화가 촬영됐다. 영화를 통해 대전의 여러 모습들이 국민들에게 비쳐졌다.
'공동경비구역'의 서천 갈대밭이나 '친구'에서의 부산이 그랬듯이 흥행에 성공하게 되면 그 촬영장소는 관광명소로 변해버린다. 또한 물밀 듯이 촬영 요청도 쇄도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대전이 영화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대전에 영화산업에 대한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영화제작에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춰 한 치의 불편함도 없도록 대전시가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상업영화를 지향하는 '뚫어야 산다'가 뜨면 대전의 문화·관광산업도 뜨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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