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판매도 버젓이…당국 단속 뒷짐

건전한 놀이 공간과 오락 문화를 조성한다는 취지로 생겨나기 시작한 노래방이 불·탈법의 온상으로 변하고 있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찾아 정겹게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어 졌다. 술을 파는 것은 물론 접대부 고용도 보편화 됐다. 심지어는 윤락의 온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당국에서는 단속인력 등을 내세워 방치하고 있다. 노래방은 허가받은 불법의 온상인 셈이다.

9일 밤 10시 대전 서구의 S노래방.
취객으로 가장한 기자가 노래방에 들어가서 방을 잡고 맥주를 시키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인이 "도우미 불러드릴까요"라며 물어왔다. 노래와 술시중을 드는 접대부를 노래방에서는 도우미라고 부른다. 주인은 혼자 찾은 기자에게 접대부를 은근히 권유한 것이다.
가져온 캔맥주는 바로 컵에 따른 후 빈 캔은 주인이 직접 가져갔다. 노래방 한켠에 설치된 냉장고에는 캔 맥주가 가득히 쌓여있었다.

10여개의 방중 4-5개의 방에서는 도우미로 보이는 아줌마와 남성들이 질펀한 술판을 벌여 놓고 춤을 추고 있었다. 한 방에서는 술취한 남자가 도우미의 몸에 자신의 몸을 밀착시키는 등 진한 행위를 일삼고 있었다.
마치 유성의 룸살롱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버젓이 노래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우미를 불러놓고 룸에서 10분 정도 기다리자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 들어온다. 35세라고 밝힌 이 여성은 한 아이를 둔 이혼녀라고 소개했다. 지난해부터 도우미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지금은 이혼하고 집을 나와 처지가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 도우미 생활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 나오기 전에는 식당에서 일 했어요.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꼬박 15시간을 일하고 받은 돈이 100만원 이예요. 몸이 안 좋아 며칠 쉬고있는데 친구가 쉽게 돈 벌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해서 처음 나오게 됐어요. 첫날 하루에 5시간 일하고 10만원 벌었어요. 처음엔 어색했죠. 모르는 남자들과 어울려 춤도 추고 노래도 불러야 되니 힘들었죠. 그래도 식당에서 일하는 것보다 벌이가 좋으니 식당은 쳐다 도 안 봐지더군요"
처음 노래방도우미를 시작하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이 여성은 대화 중간에도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기자에게도 술 마시기를 권하며 양주를 시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아마 이들이 일하는 방에서 계산되는 술값의 일정부분이 도우미들의 몫으로 떨어지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나이 많은 아줌마들은 노래방에서 일하기도 힘들어요. 35세가 넘으면 손님들이 싫어해요. 얼굴도 예뻐야 호출을 자주 받아요. 저도 이 분야에서 꽤 인기 있는 편이죠. 일자리는 남아 돌아가는 형편이에요"라며 은근히 자기 자랑을 해본다.

실제로 기자와 함께 있던 1시간 사이에도 그녀를 찾는 전화가 줄기차게 울렸다. 아줌마 도우미가 그만큼 인기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가정 있는 아줌마들도 많이 나오는 편이죠. 남편들이 실직했거나 지방으로 일자리를 얻어 간 경우 자녀 학원비나 본인 화장품 구입비등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경우도 종종 있어요. 하지만 예전에는 이런 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이 일을 한다고 들었는데 요즘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직접 노래방을 찾아다니며 일을 시켜 달라고 주인들에게 부탁할 정도"라며 노래방 도우미의 심각성을 말해 주었다.

일이 끝나는 새벽 2-3시에는 손님과 2차도 나간다는 설명을 했다.
"서너군데 돌다보면 술도 꽤 마시고 혼자 살다 보니 외로울 때가 많아요. 그럴 때 손님과 적당한 가격이 흥정되면 2차도 나가죠. 어차피 이렇게 벌든 저렇게 벌든 똑같은 돈 아니겠어요"라며 죄의식 같은 건 느끼지 못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1시간이 다되었다. 아줌마 도우미는 시간을 연장 할 것인지 묻고는 그만하겠다고 하자 급하게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노래방의 불법 행위가 이처럼 기승을 부리는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90년대 초반 지방을 중심으로 하나둘씩 생겨나던 노래방은 처음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는 장소로 인식됐었다. 함께 소리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는 고통 해소의 장이 되기도 했다.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온 노래방은 점점 전국적으로 번져 나갔고 지금은 한 건물에 하나씩 자리잡을 정도로 확산됐다.
노래방의 확산에 따라 영업 행태도 변해갔다.
처음 음료수를 판매하던 노래방은 술과 안주는 물론 접대부까지 버젓이 고용하고 있다. '건전한 가족놀이공간’이 변태영업의 현장으로 변모한 것이다.

특히 도우미로 불리는 여성 접대부들은 대도시를 비롯해 동네 주택가까지 침투한 상태다.
도우미들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중반까지의 주부들이 주류. 간혹 아르바이트를 나온 대학생들도 있다지만 찾기에는 쉽지 않다.
이들 도우미들은 대부분 경제적인 측면 때문에 이곳을 찾고 있다. IMF이후 남편의 실직 등으로 어려워진 살림에 보탬을 주고자 나선 길이 도우미다. 하지만 지금은 어엿한 직업군으로 분류될 만큼 인기가 높다.

도우미는 각급 기관이 몰려 있어 이른바 물이 좋다고 소문 난 대전시 서구 둔산동에만 300여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대전지역 전체로는 700-800명 정도가 움직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이 받는 사례금은 시간당 2만원.
하루에 3-4군데를 돌면 6만-8만원을 챙길 수 있다. 한달로 계산하면 180만-240만원정도가 수입이 되는 셈이다. 여성 직업치고는 짭짤한 편이다.
또 대전지역 전체로 보면 하루 평균 6천여만원, 연간 2백여억원이 이들 도우미 사례금으로 풀려나가고 있다.

이같이 노래방에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중소기업이나 일반음식점에서는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둔산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윤정씨(48)는 "아줌마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예요. 홀 서빙은 물론 주방보조도 구하기 힘든 상황이죠.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해도 오랜 시간 육체노동을 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서인지 옛날보다 찾는 사람이 적은 편이죠. 노래방 도우민가 하는 게 생겨서 아줌마들이 그쪽을 많이 찾는 것으로 알고있어요. 우리식당에서도 일하던 아줌마 한명이 노래방 도우미로 일한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노래방의 불·탈법 영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도 당국의 단속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99년 5월 노래방 관련 단속조항이 풍속영업의 규제에 관한 법률에서 음반, 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로 넘어가면서 변태영업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을 모두 삭제했기 때문이다.

이전 법령에는 주류판매, 접대부 고용 등의 변태영업 행위가 적발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었던 데 반해 지금은 행정처분 조항만 둬 변태영업에 대한 처벌강도가 낮아졌다. 당시 정부의 단속규제 완화 방침의 결과였다. 이에 노래방 업주들이 그다지 큰 위협을 느끼지 않고 변태영업을 강행하고 있다.

지도 단속권이 경찰에서 기초자치단체로 넘어간 것도 문제이다. 경찰에서는 형사처벌 대상을 우선으로 단속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노래방 단속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단속권을 가진 자치단체들은 인력부족과 비용문제를 내세워 거의 단속을 벌이지 못하고 있다.

대전시 서구청 문화공보실 담당자는 "한달에 4-5차례 단속을 나간다. 나갈 때마다 적게는 3개에서 많게는 6개 업소까지 적발되는 경우가 있다. 행정처분이 3개월 영업정지에 불과 하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도 계속해서 불법 영업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며 "최근 접대부 고용의 행정처분이 영업정지 1개월에 형사처벌을 가능하도록 법개정이 되었으니 좀더 단속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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