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안맞춘 설명 등으로 의미 퇴색

 오지분교 어린이들 도청나들이 표정


"여기가 충남의 청와대인가요?" "건물이 왜 일본식이예요?" "TV에서 보니까 국회의원들이 막 싸우던데 그곳이 여긴가요?"

10월의 마지막날인 31일 오전 처음으로 충남도청을 찾아온 서산지역 오지초등학교 학생들은 사뭇 상기된 표정으로 궁금한 이것저것들을 물어보기에 바빴다.

충남도의 초청으로 충남도청을 방문한 학생들은 부석초등학교 간월도분교 17명, 대산초등학교 웅도분교 학생 7명, 팔봉초등학교 고파도분교 학생 7명과 인솔 교사 등 모두 39명.

충남도에서 제공한 버스로 오전 10시 30분 도청에 도착한 오지분교 어린이들은 처음 발을 들인 도청이 생소한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여기저기를 둘러보며 긴장한 모습이었다.

"여기가 대통령이 사는 곳인가요?" "어? 도청 건물이 우리나라식이 아닌 것 같아요. 무척 오래된 것 같은데 일본식 냄새가 나네요."
버스에서 내린 한 어린이가 던진 첫 물음은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선생님의 인솔에 따라 도청 현관을 들어선 어린이들은 2층 중회의실로 발길을 옮겼다. 2층으로 이동하는 도중에도 연신 사방을 둘러보거나 기웃거리며 신기해했다.

잔뜩 긴장한 어린이들은 이명수 행정부지사의 환영의 말에 이어 축구공과 크레파스 등의 기념품을 선물로 받자 이내 얼굴이 펴지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옆 친구들과 장난을 시작했다.

곧이어 도청 관계자가 충남도청이 어떤 곳인가에 대한 소개를 들은 어린이들은 잘은 모르지만 어렴풋하게 행정기관이 무엇을 하는 곳인가 이해하는 눈치였다.

소개를 들은 후 "도청이 뭐 하는 곳인지 알겠어?"라고 살짝 물어보았다.
"도청은요. 엄마가 집안 일을 하듯이 내가 사는 서산을 포함해 충청남도 전 살림을 꾸려나가는 곳 이예요."
웅도분교 6학년 한승우군의 입에서 나온 도청에 관한 설명은 뜻밖이었다.

20분간의 도청소개를 들은 어린이들은 충남도의회 본회의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본회의장에 들어서자 몇몇 아이들은 "야, 여기 재판하는 곳 아냐. TV에서 봤잖아"라며 본회의장을 재판장으로 착각했다.

어린이들이 입장한 잠시 후 충청남도의회 제155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가 개회됐다.
웅성거리던 아이들도 "여기선 떠들면 안돼. 조용히 있어야 해요"라고 말하는 선생님들의 주의에 이내 얌전해졌다. 아마 선생님들의 주의보다도 본회의가 시작되어 중엄한 분위기에 눌린 것은 아닐까 싶다.

본회의가 10분이 지나 20분을 넘어서자 아이들은 몹시 지루해 했다. 자기네들끼리 쑥덕거리고 옆자리에 앉은 선생님들은 주의를 주느라 정신이 없다. 어른들의 알지 못하는 말, 아이들에겐 관심 밖의 일이다.
고파도분교 3학년 김은나래와 1학년 김은지아 자매는 선생님이 알려주신 '심대평 도지사, 이명부 부지사, 이복구 도의회 의원'의 이름과 직함을 열심히 적고 있었다. 김은지아 양이 메모장에 '도지사'라고만 적자 김계순 교사는 이름과 직함을 정확하게 고쳐주었다.
은나래 자매 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졸린지 눈을 비비거나 몸을 비틀고 아니면 옆에 동무와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30여분간의 지루했던 도의회 본회의 방청을 끝내고 나온 어린이들은 엄숙한 분위기에서의 해방감이 몰려와서 인지 마냥 떠들고 재잘댄다.
기지개를 펴던 한 어린이는 "TV에서 보니 어른들이 막싸우고, 고함치고, 멱살도 잡던데 여기는 조용하네"라며 중얼댔다.
아마도 TV뉴스에 비쳐진 국회의원들의 추태를 기억하는 듯 싶었다.



의회방청을 끝낸 어린이들은 충남도청 뒤쪽에 있는 구내식당 금강홀에서 즐거운 점심식사를 했다. 역시 먹는다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즐거운 일인가 보다.
식단은 어린이들을 위해 배려한 듯, 아이들이 좋아하는 햄, 돈가스, 만두, 스파게티 등으로 이루어졌다. 아이들에게 환영받는 식단과는 달리 선생님들은 "아이들만 좋아하게 식단을 꾸몄네"라며 다소 불만스런 표정이었다.

맛있는 점심식사가 끝나고 "자 다음은 꿈돌이동산으로 출발하는 거예요"하는 말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2시간여 동안 도청을 방문한 어린이들은 공무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꿈돌이동산으로 떠났다.
어린이들에게는 이번 도청 나들이가 앞으로 어른들의 세계나 행정 등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소중한 경험으로 간직하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2시간여 동안 어린이들과 함께 한 도청나들이 취재에서 왠지 개운치 않은 마음이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충남도가 어린이들을 초청해 도청을 방문토록 한 것은 분명 어린이들에게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안내하는 공무원들의 눈높이는 어린이에게 맞춰 있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어른들에게 맞춰져 있어 아쉬움을 금할 수 없었다.
도의회 본회의 내용은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도청소개와 인사에 있어 쉬운 용어와 재미있는 설명을 곁들였다면 아이들이 더 빨리 많은 이해를 했을 것이다. 또한 본회의장에선 설명은 없이 아이들에게 '충남도의회 안내'라는 어른들이나 이해할 수 있는 팜플렛만을 나눠져 도청견학에 대한 의미가 흐려지는 듯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은 도청을 왜 방문했는지, 도청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의회본회의장은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2시간여 동안을 돌아본 후에도 "도의회는 어른들이 의논하는 곳"(웅도분교 6학년 한승우군) "도청에서 뭐하는 곳인지 잘 모르겠어요"(고파도분교 3학년 김은나래양)라고 말하는 어린이들을 보며 도청방문을 초청한 뜻이 무언인지를 공무원들은 다시 한번 새겨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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