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암동 지하철터널 걷기대회
"오메! 땅속에 이런게 있었구만. 이거 만들라구 도로 막어놓고 맨날 시끄럽게 했구만"
지하철터널 걷기대회에 참여한 김순옥(64·대전시 서구 가장동)할머니는 땅속을 걷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30일 오후 2시 30분 동구 판암동 차량기지에서 시민 1,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1-4공구의 지하터널 관통을 기념하고 시민들에게 건설현장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하여 동구 판암차량기지에서 대전역(4.6Km)구간에 걷기 대회를 가졌다.
지하철건설본부에서 제공한 안전모를 쓴 김 할머니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였다.
간단한 기념식이 끝나고 참가자들과 터널에 진입한 할머니는 "이렇게 깜깜한데로 기차가 댕기는겨. 어두워서 운전하는 사람 힘들것네"라며 걱정도 해본다.
입구부터 터널 1Km 구간까지는 참가자 모두가 터널을 구경하느라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이 구간은 폭 6m, 높이 6m로 바닥 등에 콘크리트 작업과 조명 설치를 해 놓아 참가자들이 각종 토목공사 추진상황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1Km를 지나면서부터 갑자기 선두그룹이 뛰기 시작했다. 뒤에 따르던 참가자들도 덩달아 뛰기 시작하면서 터널이 순식간에 먼지가 가득 찼다. 이 할머니는 뛰기가 힘든지 계속해서 빠른 걸음으로 걷기만 했다. 어둠고 막힌 공간을 걸어서 인지 평지를 걷는 것 보다 힘들었다. 연신 땀을 닦아내는 할머니의 모습이 안스럽기까지 하다.
머리에 쓰고 있던 안전모가 거추장스러운지 구간구간 길을 안내하는 행사관계자에게 "나 이 모자 벗으면 안돼나. 모자 벗으면 좀 시원할 것 같은디"라며 애원해 보지만 관계자의 대답은 "안전을 위해서 꼭 써야 돼요. 위에서 뭐가 떨어질지도 모르니까 벗으면 안돼요"라며 매몰차다.
터널을 진행해 나갈 수록 김 할머니는 많이 힘들어 보였다.
입구부분의 깔끔한 마무리와는 달리 대전역이 가까워질수록 바닥이 엉망이었다. 곳곳에 물이 고여있고, 콘크리트 작업이 되어있지 않아 먼지도 상당했다. 바닥 평탄작업도 하지 않아 나이든 참가자들이 걷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힘들어하는 할머니를 보다 못한 아주머니 한분이 할머니에게 중간 지점에서 나가시는게 어떻겠냐고 묻자 "무슨 소리여, 기차 댕기기전에 이렇게 걸어보는게 얼마나 영광인디, 이걸 중간에 포기혀. 집에가서 우리 손주놈한테도 얘기해줘야 되는데 끝까지 가야지. 나 신경 쓰지말고 어여가"라며 역정을 내신다.
처음 시작할때 선두그룹이던 김 할머니는 터널 중간쯤을 지날 때는 중간그룹으로 밀려 있었다. 하지만 힘은 들어 보이나 표정은 소풍 나온 어린아이처럼 즐거워 보였다.
터널구간 마지막부분에 오자 갑자기 할머니의 걸음걸이 속도가 빨라졌다. "인제 얼마 안 남았다는디 젊은 사람 몇사람 따라야 될 거 아녀"라며 이번 행사가 순위를 매기는 기록행사로 착각하는 듯 했다.
김 할머니는 1시간 20분만인 오후 3시 50분 4.6km의 행사구간을 완주했다.
"아이구 이제야 살것 같네. 어둡구 숨막혀서 죽는줄 알았어. 뭔놈의 먼지가 그렇게 나는지 가슴이 답답하네"라며 완주소감을 대신했다.
몸은 지쳐 보였으나 젊은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했다는 성취감이 할머니의 얼굴에 가득했다.
대전광역시 지하철본부 신만섭 본부장은 "그동안 지하철 공사로 인해 불편을 겪은 인근주민과 지역단체장을 초청해 공사 추진내용을 현장에서 직접 보여주고 남은 기간 협조를 당부하기 위해 지하철건설 착공일(96년 10월 30일)에 맞춰 행사를 준비했다"고 행사 취지를 설명했다.
1-2공구 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두산건설 천동건(37)과장은 이번 행사가 "지하철 공사로 인해 불편을 겪었던 시민들에게 이해를 구하는 기회인 것 같다"며 "앞으로도 구간 개통 될때 마다 이런 행사를 자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행사구간에는 곳곳에 위험요인들이 그대로 방치되어 참가자들의 안전을 위협했다.
이현지(34·대전시 동구 판암동)씨는 "터널 걸어오는데 자갈길도 있고 진흙길도 있어 옷을 버렸다. 일부 공사구간을 통과할 때는 위에서 물건이 떨어질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며 "지하철건설 착공일에 맞춰 행사를 진행하려고 무리하게 행사를 추진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번 행사는 4시 20분경 모든 참가자들이 구간을 통과해 무사히 끝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