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전통음악 등 40여분간 공연

 잔잔한 감동 속에 결혼의미 되새겨


결혼식에 작은 음악회를 곁들이면 어떨까.
누구나 한번쯤 그려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생각은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쉽지 않다.

가을 속에 길일(吉日)이었던 7일.
대전시 서구 가수원동 크레피아 웨딩 홀에서는 생각에만 머물렀던 결혼식이 있었다.
일요일 오후 3시 30분으로 느지막하게 잡힌 예식시간도 번잡함을 피하고 작은 음악회를 염두에 둔 일정이었다. 신랑은 지원석(31)씨· 배필은 오미령양. 지씨는 대전국악관현악단 지휘자, 신부는 대전시립합창단 멤버다. 이탈리아 공연 연습을 하면서 서로를 알게 되었다.

오후 3시부터 한쌍의 부부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몰려든 하객들에게 간단한 리허설로 음악회가 열림을 알려주었다. 약 30분간 목소리를 가다듬은 출연자들은 사회자 없이 음악회를 진행시켰다. 이미 예식장은 기다림과 기대감으로 여느 음악회를 방불케 하는 긴장이 가볍게 흘렀다. 물론 술렁이고 어수선한 광경은 없었다. 차분했다.

맨 먼저 나온 소프라노 박현경양(25)
그녀는 헨델 곡 'Let the Bright seraphim'으로 조용했던 실내를 노래로 채웠다.
성경에 나오는 삼손 이야기를 헨델이 음악으로 표현한 곡이다. 음악회 시작을 알리는 의미보다 주일을 새기는 선곡이었다.
박양은 ″하나님의 사랑이 결혼하는 부부와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충만하길 바란다″는 덕담과 함께 신부와의 관계를 간략하게 설명을 해 하객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다음은 바리톤 이태양씨의 순서.
한양대 후배인 이씨는 역시 '어렸을 때 힘이 되어준 고마운 분'으로 신랑을 묘사하고 두 곡 중 한 곡은 개사(改辭)하여 부르겠다며 정중하게 인사 후 준비된 노래를 남저음 목청으로 불렀다.

작은 음악회에는 우리의 전통 음악이 새로운 분위기를 주었다.
끊어질 듯 이어지면서 애수를 자아내게 하는 대금은 KBS국악관현악단 한충은씨의 차지였다. 5분간의 독주였지만 잔잔함과 애잔함, 그리고 때로는 들먹거림을 하객들에게 전해주었다. 한씨 역시 동문이라는 점과 신랑 지씨가 작곡한 국악을 많이 연주했음을 알리고 '행복하고 맑고 깨끗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프로그램에는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도 준비되었으나 소리꾼의 사정으로 뛰어넘게 되어 아쉬웠다. 서양과 우리 전통과의 균형을 위한 준비였을 터인데 빠진 것이 못내 서운했다. 특히 신랑은 '아피아 길에 서서'라는 제목의 음악회를 이탈리아에서 순회 연주, 호평을 받은 터여서 전통과의 조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선을 보인 어린이들의 재롱과 맑고 고운 목소리는 판소리의 허전함을 메워주고 남음이 있었다.
선용 작사 이나영 곡의 '가을 들판'과 '기분 좋은 날', '자전거를 타고' 등 잇달아 부른 세곡은 식장을 꽉 채운 하객들에게 동심을 전해주었다. 절제하는 몸 동작을 애드립으로 넣어가면서 부르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은 이곳이 결혼식장이라는 것을 순간적으로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가을들판

잠자리 앞세우고 들판을 달려가자.
푸른 하늘 흰 구름 코스모스 웃는 길
커다란 가마솥 가을 들판에는
땀방울 익는 소리, 오곡이 익는 소리.
끝없이 달려가자, 가을 들판을
오곡이 물결치는 황금 들판을

굴렁쇠 굴리면서 들판을 달려가자.
산들바람 시원한, 허수아비 웃는 길
넉넉한 엄마 품, 가을 들판에는
참새들 웃음소리, 아이들 웃음소리.
끝없이 달려가자, 가을 들판을
오곡이 물결치는 황금 들판을

약 40분간 진행된 공연은 하객들에게 음악의 소중함과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이런 형태의 결혼식이 번잡함과 소란함으로 대변되는 예식 문화에 새로운 장을 열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이미 확정된 혼약의 통과의례가 되고 축의금만 던지고 돌아가는 예식과는 분명 다른 하객들과 더불어 즐기는 시간이었다.
이날 작은 음악회는 한푼을 더하면 넘쳐버리고 빼면 부족하게 된다고 어느 평론가가 묘사한 단편소설과 같았다.

음악회에 이은 예식은 대전시립연정국악원 지휘자였던 이상규 한양대 교수의 주례로 예의 결혼식처럼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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