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자 발길 끊겨 끼니 걱정

 노숙자·독거노인의 한가위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오랜만에 만날 가족, 친지들 생각에 마음은 벌써 고향에 가 있다.
풍요와 설레임, 만남이 있는 추석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까?
노숙자, 독거노인, 고아원 원아들....이들은 추석이 싫다.
명절이 서럽다. 후원자 발길도 끊기고 썰렁하다. 그보다 더 견디기 힘든 것은 외로움이다.

대전의 한 무료급식소에서 저녁식사 중에 만난 한종익씨(62).
고향 경북 김천에는 가족이 없다. 외아들이었던 한씨는 6.25때 폭격으로 부모를 모두 잃었다. 10살의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었다. 떠돌이 생활을 하며 몸 뉘일 곳이면 자고 농촌을 전전하며 잡일을 했다.

한때 고아원에 들어간 적도 있었으나 한 달도 못 버티고 나왔다. 보모의 잦은 구타 때문이었다. 어린 나이에 세상과 맞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춥고 배고플 때가 가장 힘들다는 한씨는 "3일 정도 굶으면 동냥을 했습니다. 식당 가서 구걸하면 손님들 먹던 밥도 주고 팔다 남은 음식도 주긴 했지요. 하지만 일그러진 주인 얼굴은 지금도 생생해요"라며 지난 일들을 회상한다.

추석에 어떻게 지내느냐는 말에 "하루 6,000원 정도 하는 쪽 방에서 홀로 지냅니다. 가족이 없는 나에게 추석은 더 외롭습니다. 모두들 가족 만난다고 고향에 내려가고 하는데... 고향엔 아무도 없습니다"라며 어렸을 적에 그랬던 것처럼 어른인 지금도 명절은 반갑지도 않다고 말했다.

다른 한쪽에서 조용히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한 아주머니는 망설임 끝에 "추석날도 밥을 주나요"라고 묻는다. 쉰 살이 넘은 그녀는 대전역 앞이 집이다.

몇 군데 노숙자 쉼터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자원봉사자들이 꾸려 나가는 무료급식소의 경우, 명절에 무료급식은 힘들다. 자원봉사자나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각자의 명절음식 장만과 가족과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곳 역시 명절엔 운영을 안 한다.
그러니 추석에도 문을 열 것인가는 이들에게 굉장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다.

외롭게 살고 있는 노인들의 추석맞이는 어떨까.
문창동에서 중학생 손자와 함께 살고 계신 최홍례(83)할머니. 아들은 죽고 가출한 며느리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고 있다. 아들, 며느리 얘기가 나오자 금새 얼굴을 붉히신다. 괜히 얼굴 뵙기가 죄송스럽다. 몸이 불편하신 최할머니는 자신이 죽으면 손자는 어떻게 하냐며 걱정이 태산이다. 급식소가 대부분 추석에는 운영을 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한 몸으로 식사를 준비해야 한다. 물론 찾아오는 이도 없다.

또 다른 곳. 보문산 밑, 전세 300만원에 허름한 곳에서 홀로 생활하고 계신 김아지(88) 할머니.
조심스럽게 자식 얘기를 꺼냈다. 아들 둘에 딸 둘이 있었는데 아들하나 딸 하나는 죽었다. 현재는 서울에 있는 큰아들과 강원도에 딸이 있다고 한다. 강원도는 너무 멀어 3년에 한번 볼까 말까 라고 말한다. 교통이 발달되었는데 멀어서 못 온다는 건 설득력이 없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왜 자식들하고 살지 혼자사시냐는 말에 "다들 살기가 힘들어요. 큰아들은 나이가 70살 가까이 됐고 암에 걸려서 고생을 하고 있어요. 몸이 불편하니까 명절에 오지도 못하죠. 내가 오지 말라고 했어요"라며 행여 자식에게 누가 될까 조심조심한다.

"내가 불편해서 못 살아요"라고 덧붙인다. 자식이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비를 받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살림은 어떻게 꾸려 나가냐고 물었다.
"우리 막내가 회사에서 일하다 서른중반에 죽었는데 그 회사에서 자식 죽어 어떻하냐며 매월 10만원씩 보내 줍니다"
죽은 자식의 사진을 연신 바라보면서 병으로 죽었다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보인다.

대부분 조그만 쪽방, 단칸방에서 홀로 살고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
자식이 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홀로 살거나 아니면 시집을 와서 남편 잃고 평생을 홀로 지내는 분들이다.

이들에게 후원금도 중요하다. 그것보다도 저 소중한 것은 가끔씩 찾아가 말벗도 하고 어깨도 주물러 드리는 인간적인 정이다. 이런 것들을 더 바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호산나 공동체 이종구 사무국장은 "노숙자나 독거노인들에게 살집을 마련해 주는게 앞으로의 목표입니다. 한끼식사로는 그분들을 보살펴 드릴수가 없죠. 농장도 운영하여 노숙자들에게 재활의지와 목돈을 벌게 해드리고 싶어요. 희망을 드리고 싶은 거죠" 라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추석연휴.
어느 때보다 가족의 소중함이 느껴지는 시기이다. 풍요와 설레임이 있는 추석의 이면에는 명절이 더 서러운 계층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소외된 사람들은 지금도 오지 않는 가족을 그리며 쓸쓸한 명절을 보내야 한다. 즐거움 속에 소외됨은 서글픔이 배가된다. 추석날 한번만이라도 소외된 이웃을 생각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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