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리 속도 늦고 엉터리 안내 ′짜증'
이씨가 기차를 타고 대전역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30분경.
약속시간까지는 아직 1시간 가량의 여유가 있어 택시보다는 버스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시내버스 노선을 몰라 주위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물어야 할 것이라 생각했던 이씨는 마침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버스노선 안내 단말기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런 이씨의 기대는 버스노선 안내 단말기를 조작하는 순간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이씨는 10여분간 단말기와 씨름하다 결국은 버스 타기를 포기하고 택시를 잡아야 했다.
대전시가 관광객과 시민들의 교통편의를 돕기 위해 지난 2000년 6월 설치한 시내버스 노선 안내 단말기가 제구실을 못하고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있어 예산만 낭비했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버스노선 단말기는 대전을 찾는 타지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왕래하는 대전역, 서대전역, 고속버스터미널, 서부시외버스터미널, 유성시외버스터미널, 대전시청 등 6곳에 설치되어 있다.
안내 단말기 설치에는 모두 3,000여만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제구실 못해 예산만 낭비한 꼴
하지만 안내내용의 업데이트가 늦어 일부 단말기에서는 버스 노선이 변경된 후에도 예전 노선을 알려주는 등 엉터리 안내를 하고 있으며 작동 속도도 크게 느려 이용자들의 짜증만 유발시키고 있다.
실제로 대전역 앞에 설치된 안내 단말기에서는 둔산동을 갈 경우 이용가능 버스가 없는 것으로 표기되며 2번 이상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는 안내가 나오고 있으나 단말기가 설치된 곳에서 불과 수 십m 중앙로 쪽으로 이동하면 둔산을 운행하는 좌석버스와 입석버스가 즐비한 실정이다.
또 대전시청을 제외하고는 모든 단말기가 실외에 설치되어 있다보니 낮 시간대에는 햇빛 반사로 인해 모니터의 안내문을 식별할 수 없으며 단말기에서 나오는 안내 멘트도 도로를 지나는 차량들의 소음으로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는 실정이다.
안내단말기 메뉴에는 도착지별 이용가능노선 안내, 정류장별 통과노선 안내, 버스노선별 경로 안내, 교통시간표 안내, 관광정보안내, 이용정보 안내 등이 나타나 있지만 대전을 처음 찾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메뉴는 고작 도착지별 이용가능 노선 안내에 불과하다.
노선설명도 대부분 대형 건물이나 공공단체들 위주로 이루어지고 있어 대전지리에 낯선 외지인들은 버스노선 안내를 받은 후에도 대형건물 등을 물어 봐야 하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
지리 낯선 외지인들에겐 무용지물
따라서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있는 노선 안내 단말기에 구체적인 노선버스 안내가 가능하도록 프로그램이나 운영체계를 바꾸고 정류장마다 노선안내도를 설치해야 한다고 이용객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대전에서 처음 버스노선 안내단말기를 사용해본 이영호씨는 ″서울은 버스노선 안내 단말기 같은 첨단장비는 아니지만 각 정류장마다 노선 안내도를 설치해 누구나 쉽게 버스노선을 알아 볼 수 있게 했다″며 ″이용할 수 없는 첨단장비는 있으나 마나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이씨는 ″대전에 대한 방향 감각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가는 곳의 위치확인이 세부지도로만 가능하다″며 ″키보드를 설치해 찾고자 하는 주소를 입력하면 버스노선이나 위치를 안내해 주는 종합적인 서비스가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와 대전관광에 나선 유형남씨(28·대전시 대덕구 대화동)는 ″첨단장비라는 자랑과 함께 단말기를 이용했으나 버스노선을 제대로 안내 받지 못해 오히려 창피만 당했다″며 ″제대로 된 안내를 받을 수 없는 고가의 단말기 설치보다는 대전시 버스안내책자를 만들어 정류장에 비치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전시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실외에 설치한 것이며 단말기의 추가 배치나 프로그램 수정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 뒤 ″지능형교통시스템(ITS)공사가 완료될 경우 좀더 나은 교통정보 서비스를 시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