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弘補) 이경식(17·계룡공업고등학교 1년), 가향(佳向) 박설희(18·대성여자정보고등학교 2년). 두 젊은이는 20일 성년의 날을 맞아 법적으로 만 20세는 아니지만 전통 성년식을 통해 성년이 됐다.

대전광역시 동구청이 주최하고 대전시지역사회교육협의회에서 주관한 전통성년식이 20일 오전 10시 대전시 동구 가양동 우암사적 공원에서 열렸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이날 행사에는 계룡공고와 대성여자정보고 학생들 200여명이 참석해 대표로 성년식을 재연한 학생들과 함께 성년식 의례를 치렀다.

전통 성년식은 현재 관련법에 의해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만 20세와는 달리 남자는 15∼20세, 여자는 14∼20세가 대상이 된다. 남자는 집안에서 벗어나 사회로 진출할 때, 여자는 결혼을 위한 준비가 됐을 때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통과 의례로 성년식을 치른다.

상투 틀고 갓 쓰는 자리

남자의 성년식은 관례로 불리며 상투를 틀고 관을 씌우는 삼가례와 술을 마시는 초례, 성년이 되면 집안에서 부르는 이름인 자를 지어주는 가자례 등 크게 3가지 의식을 거쳐야 한다.

이날 관례의 주인공인 이경식 군은 성년식을 시작하기 전 "아직 성년도 아닌데 이런 의식을 통해 성년이 된다고 하니 얼떨떨하다"며 "토요일 성년식 과정을 조금 연습하기는 했지만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의식을 치러 많이 떨린다"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첫 번째 과정인 삼가례 역시 초가, 재가, 삼가 등 세번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상투를 틀고 갓과 관모를 쓰는 과정을 거치고 집안, 사회, 관직에서 성인이 되어야 입을 수 원복과 앵삼 등 옷을 세 번 갈아입어야 한다. 이를 거친 뒤에야 허리를 굽혔다 펴는 읍이 아닌 절을 할 수 있다. 어른이 되는 첫 번째 단계를 지난 것이다.

초례는 어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술을 마심으로써 성인으로 인정해줌과 동시에 술을 마시고 흐트러질 수 있는 젊은이들에게 주의를 일깨워 주기 위한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가자례는 '자'를 지어줘 성년식을 치르고 난 후에는 호칭에서도 어른으로 인정해 준다는 의미가 있다. 이날 이 군은 널리 돕는다는 뜻의 '홍보(弘補)'라는 자를 받았다.

시종일관 진지한 태도로 40여분간 성년식을 치른 이군은 긴장이 풀린 듯 길게 숨을 몰아쉬며 "성년식 장난이 아니네요. 왜 성년식을 통과의례라고 말하는지 알 것 같아요. 하지만 여러 사람들이 지켜본 앞에서 성년임을 인정받아서 기분이 좋다"며 "지금까지 어른들 보는 앞에서 술을 마시기는 했지만 성년식을 통해 의식의 한 과정으로 술을 마셨기 때문에 이제는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군의 아버지 이영창씨(45·대전시 동구 삼성동)는 "오늘부터 집에서는 홍보라고 부르며 성인 대우를 해 줘야 할 것 같다. 아들 녀석이 덩치만 큰 줄 알았더니 오늘 성년식을 치르는 모습을 보니 어른이 다 됐다. 한 뼘은 더 자란 것 같다"며 아들 경식군을 대견스러워 했다.

계례는 남자보다 절 두배 많이 해

이어 여자들의 성년식인 계례가 이어졌다.
성년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곱게 한복을 차려 입은 단아한 자태로 취재진들과 행사 관계자들의 카메라 세례를 받던 박양은 "학교의 추천이 있어 참여를 결정하기는 했는데 막상 의식을 치르려고 하니 많이 떨린다"고 말했다.

계례는 남자의 관례와는 조금 다르다.
첫 번째 의식은 가례라 하여 상투와 갓, 관모를 씌우는 대신 비녀를 꽂아주고 초례에서는 술 대신 차를 마시게 된다. 하지만 성인으로서의 이름을 받는 가자례는 남자와 같은 과정을 거친다. 박양이 받은 자는 아름다움을 구한다는 의미의 '가향(佳向).

또 다른 점은 남자는 절을 두 번 하는 것과 달리 여자는 네 번의 절을 해야 한다는 점.
여학생들은 여자만 네 번의 절을 한다는 것에 대해 궁금증 섞인 야유를 보냈지만 행사 진행자의 "남자는 양을 의미해 두 번을, 여자는 음을 의미해 네 번의 절을 하는 것으로 절대 불평등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라는 설명을 들은 뒤에야 고개를 끄덕였다.

긴장한 듯 서너번 실수를 하며 실수할 때마다 혀를 빼물기도 하고 친구들과 눈짓을 주고 받기도 하는 등 신세대다운 모습을 보여준 박양은 "재미있고 의미 있는 행사를 직접 경험하게 돼 기쁘다"며 "앞으로 성인으로서 모든 행동에 책임감이 뒤따를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행사를 주관한 대전지역교육사회협의회 심병일 회장은 "성년식을 통해 상투를 틀고 비녀를 꼽는 등 외형적인 모습을 바꾸는 의식은 가족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 등 활동 범위의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성인으로 인정받음과 동시에 책임감도 지워주는 의미가 있다. 성년식을 거쳐야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다"라고 성년식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날 행사장에는 일본인 여행객 8명이 재연 광경을 지켜봐 눈길을 끌었다. 시종일관 진지한 눈으로 지켜보던 일본인 나카다씨(84)는 "한복의 고운 선과 색이 인상적이었다. 이렇게 한국 혼을 밑바탕으로 한 전통이 살아있기 때문에 예절 국가로서 한국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두배나 많은 약 160만명의 젊은이들이 법적으로 만 20세를 맞아 성년이 된다.
하지만 통과의례로 불리며 어른으로 인정받음과 책임감을 부여받는 두 가지 의미의 성인식은 단순한 기념일의 홍수 속에서 또 하나의 '데이'로 치부되며 장미꽃과 향수 등 철저히 상업적인 물품들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다.
전통 재연이라는 이름을 얻어 행해지는 성인식에서 왠지 씁쓸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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