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만인 앞에 평등할 수 있는 직업″

 대전찾은 소설가 박완서씨


6일 과학의 메카인 카이스트에 30년동안 소설가로 활동해 온 박완서(70)씨가 찾아왔다.
KAIST 대학 1호관 시청각실에서 만난 박완서씨의 첫인상은 편안한 할머니였다. 강연을 하는 동안에도 미소를 잃지 않고 학생들의 질문 하나에도 성의껏 대답해 주는 정성을 보였다.

- 이번 강연이 처음인가요. 또 강연을 할 때마다 주제를 정하고 응하는지.

"아니요. 몇 군데 다녔죠. 매번 그런 건 아니고 과학이라는 부분도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체험과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정했습니다."

- 작가가 되고자 했던 이유는.

"오빠가 좌익운동을 했었어요. 보도연맹이라는 단체였는데 그것 때문에 좌익집안이라고 박해를 많이 받았죠. 한번은 반공청년단체에서 두다리에 총상을 입히고 집에 던져놓고 가더라고요. 그 때문에 1.4후퇴 때 피난도 못 가고 폐허가 돼버린 서울에 남아있었죠. 내려온 인민군들이 배고프니까 굴뚝에 연기나는 집을 찾아온 게 저희 집이었는데 방에 총상을 입은 오빠를 보고 국군으로 싸우다 총상을 입은 것 아니냐고 물었죠. 살아남으려면 또 좌익이라고 해야 했어요. 그래서 좌익집안이라고 우기니까 인민군들이 그럼 엄마하고 오빠만 남겨놓고 자기네들하고 같이 가자고 하더군요. 나중에 통일이 되면 금방 돌아올 수 있다면서... 그래서 오빠 형수하고 애들하고 같이 올라갔는데 중간에 탈출해서 임진강 근처에 숨어 지냈죠.
사람들이 서울을 떠날 때는 서울에 있고 다시 내려올 때는 저희는 북으로 올라가고. 그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남들이 겪지 못한 반대의 상황들을 언젠가는 증언을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복수심에 글을 쓰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복수심으로 글을 쓸 수는 없죠.
정작 글을 쓰기 시작한 때는 제가 결혼생활 20년째 되던 해였어요. 해방이 되고 집안에 가장이 제가 됐죠. 오빠는 전쟁 중에 죽고 가족 부양할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거예요. 서울대 문리대를 나왔는데 폐허가 된 서울에서는 취직할 곳이 없었어요. 운 좋게도 미군 피엑스에 취직이 됐죠. 그곳에서는 미군 초상화 그려주는데 배치됐는데, 하루는 어떤 화가가 화보집을 갖고 오더라고요. 이게 자기 그림이라면서 부끄럽게 내놓는데, 그 사람이 지금 박수근 화백입니다. 제가 결혼생활 20년째 박수근 전시회를 갔는데 그 사람 그림이 그렇게 비싼 줄 몰랐어요. 그 때 전시회를 갔다오고 나서 이 사람을 증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쓰게 된 작품이 박수근 화백을 모델로 한 입니다. 그걸로 작가 데뷔를 한 거죠."

- 그 이후에도 수많은 작품들을 내놓았는데 그 많은 소재는 어떻게 구했는지.

"다 체험이에요. 체험에다 그럴듯한 거짓말을 보탠거죠. 을 쓰기 전에는 소설에 대해서 생각도 해보지 않았어요. 다만 박수근 화백을 증언하기 위해 전기를 쓰려고 했는데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거짓말을 보태서 쓰는 날은 글이 훨씬 잘 써지더군요. 또 거짓말을 보태어 쓸 때 묘한 쾌감도 느끼게 하고요. 그럼, 허가받은 거짓말은 무언가 생각해보니 바로 소설이었죠. 또 내 얘기도 넣을 수 있고...
요즘의 환상소설은 아무리 봐도 이해를 못하겠어요. 특히 지명·익명이 너무 복잡하고, 오직 머리로만 글을 쓰려고 하니까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환상소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아요."

- 그러면 나이가 들면서 작품세계관은 바뀌셨는지.

"그냥 살면서 그때마다 글을 쓰는 거지, 뚜렷한 작품세계관 같은 거 없어요."

- 글을 잘 써지게 하기 위한 특별한 버릇이나 남다른 노력이 있었는지.

"젊을 때는 하루에 약10장을 썼다고 가정한다면 지금은 적은 분량을 써도 기운이 빠져요. 글이라는 게 줄거리는 다 비슷한데 어떤 적합한 단어와 문장을 넣느냐 하는 거지요. 그게 참 힘듭니다. 2∼3장 짜리를 써도 주위에 원고지를 다 깔아놓고 작업했을 정도니까요. 지금은 컴퓨터가 있어서 편해지기는 했죠.
젊었을 때 글을 써달라고 독촉한 사람이 있었어요. 어찌나 심하게 독촉을 하던지 글이 더 안 써졌죠. 글을 끝낸 후 집에서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소리를 엄청 질러댔죠. 그만큼 스트레스 받는 작업입니다. 그래도 그 일이 끝난 다음에는 쾌감을 느끼지요. 그럴 듯한 작품 하나 만들어 내면 보람을 느낍니다.
그리고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책을 많이 읽는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수많은 책들을 읽어왔고 지금도 읽고 있습니다. 만약 글과 독서 둘 중에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책 읽는 거를 택하겠어요. 글 쓰는데 있어 특별히 교육받은 건 없어요. 이 당선된 다음에 5편의 단편을 습작한 거 밖에는..."

-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 작가는 어떤 사람 앞에서도 평등해질 수 있는 직업입니다. 최고의 권력자를 만나도 그 사람보다 높고, 아주 보잘 것 없는 사람 앞에서는 더 낮추어지는 그런 직업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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