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雪)도 지나 본격적인 겨울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전국 50만명의 탈출 청소년들은 갈 곳을 잃고 PC방과 비디오방, 여관 등을 전전하며 이곳저곳을 헤매고 있다. 특히 대전은 전국 교통망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전국 가출 청소년들이 서울이나 부산 등을 목적지 삼아 이동하는 도중 하차하는 곳이다.

대전시는 탈출 청소년들을 위해 현재 남·여 청소년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겨울을 맞아 쉼터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찾아봤다.

대전 쉼터 2곳에 20여명 수용

◈구 정동 파출소에 위치한 대전시 남자 청소년 쉼터.
사나흘간 매몰차게 몰아치던 찬바람이 잦아들고 따스한 햇볕이 내리쬐는 22일 오후 1시 대전시 동구 삼성1동에 위치한 대전광역시 남자 청소년쉼터를 찾았다. 2층 짜리 건물의 아래층은 상담실 겸 아이들의 공부방으로 이용하고 있고 작은 방 3개가 붙어 있는 위층은 이곳 아이들의 보금자리이다. 1년 전까지 만 해도 중동 파출소자리였다.

보금자리라고는 하지만 집만큼의 편안함은 기대할 수 없다. 상담실과 공부방을 겸한 아래층은 1년이 지난 지금도 파출소를 연상케 하는 썰렁함이 가득 차 있었고 14평 정도의 위층은 8명의 아이들과 1명의 상담 교사가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좁았다. 여자 쉼터는 140여 평으로 꽤 넓었지만 남자쉼터는 지난해 9월에 생겨 아직까지 시설면에서 틀이 잡혀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현재 여자쉼터가 있는 선화동으로 이사를 하는 내년 초까지는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대전에는 대전시에서 운영, 관리하고 있는 남·여 2곳의 청소년 쉼터에 약 20명이 수용돼 있으며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한 두 군데의 시설을 포함하면 총 30여명의 청소년들이 보호받고 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떠도는 아이들의 숫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생활비 마련을 이유로 원조교제 등 탈선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 쉼터 윤현영 소장(자료 청소년 쉼터).
대전시청소년 쉼터 윤현영 소장은 ″정확한 통계수치는 없지만 전국적으로 50만의 ′탈출′ 청소년들(윤 소장은 단순히 집을 나간다는 의미가 아니라 극한의 상황에 다다라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상황에서의 마지막 선택이라며 ′탈출′이라고 설명했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고 대전에만 적어도 5천명의 아이들이 집과 학교를 떠나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PC방이나 비디오방, 러브호텔 등에서 생활하면서 원조교제 등으로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다″며 ″간혹 음식점이나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건전하게 돈을 버는 아이들도 있지만 상당수의 아이들은 보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원조교제라는 방법을 이용한다. 남자아이들도 원조교제를 하고 있다. 심지어는 여자아이가 원조교제로 생활비를 벌면서 남자친구와 먹고사는 아이들도 있다″고 보호받지 못하는 탈출 청소년들의 실상을 설명했다.

가정불화·학교 생활 부적응으로 탈출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아이들도 청소년 쉼터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이곳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매우 엄격하지는 않아도 외출규정과 음주, 흡연 등의 금지사항 등 통제가 있는 쉼터에서의 생활을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지레 짐작 때문이다. 자유를 넘어 방종에 가까운 생활을 하던 아이들이기에 작은 통제에도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쉼터를 찾는 아이들은 극한의 상황까지 다다라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스스로 찾는다.

아이들이 거리를 떠돌거나 쉼터를 찾는 이유는 가정불화와 학교 생활 부적응 등 크게 두 가지 경우이다. 가정 불화로 쉼터를 찾는 아이들은 가정의 해체나 혼합가정의 경우로, 변화된 생활로 인한 충격과 부적응으로 집을 떠난다. 이런 경우 가족들의 눈을 피해 학교를 옮기기는 하지만 계속 다니는 경우가 많다.

◈청소년 쉼터에서 보호받고 있는 청소년들은 심리치료를 비롯해 여러 활동을 한다(자료 청소년 쉼터).
집단 따돌림이나 학업 부진 등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은 쉼터에서 다른 방법의 교육을 받는다. 학교에 가지 않고 쉼터 자체프로그램에 맞춰 상담과 사이코드라마 등을 통해 심리치료를 받고 정규교과 과정도 소화한다. 대학입학을 위한 검정고시는 물론 건강검진과 적성 검사, 문화활동, 성·금연·약물 교육, 사회 적응을 위한 자원봉사 활동, 직업 교육까지 청소년에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성인으로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쉼터의 교육 프로그램이다.

국토의 중심지라는 특성 때문에 대전은 전국 탈출 청소년들의 집결지가 되고 있다. 남자 쉼터의 경우 8명의 아이들 중 4명은 전라남북도, 1명은 경남, 2명은 충남이 집이고 1명만이 대전에 살고 있었다. 여자 쉼터도 타지역 아이들이 많기는 마찬가지이다.

연령도 초등학교 3학년에서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다양하지만 대부분 사춘기가 시작되는 14∼17세의 아이들이 가장 많다. 9세부터 24세까지 쉼터에 입소할 수 있지만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

남자 쉼터 강민수 상담교사는 ″가출하게 되면 집이나 학교에서 멀리 떨어지려고 하지만 한계에 부딪치게 돼 부산이나 광주로 내려가거나 서울로 올라가는 도중 돈이 떨어지거나 호기심에 대전에 도착한 경우가 많다 ″며 대전에 타지 아이들이 많은 이유를 설명했다.

국비지원·인력 부족으로 어려움 겪어

◈8명이 생활하기에는 비좁기만한 남자 청소년 쉼터.
이런 이유로 타 시도의 경우는 국비와 시비를 50 : 50으로 부담하지만 대전시는 국비 3천만원에 시비 1억7천여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국토의 중심지로 전국에서 탈출 청소년들이 모여들고 있지만 국가지원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다른 문제는 상담교사 및 생활지도교사 등 쉼터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 쉼터를 찾는 아이들의 숫자에 비해 공간이 남음에도 불구하고 인력부족으로 아이들을 받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남·여 쉼터의 정식 근무자들은 소장을 포함해 6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자원봉사자들이 담당하고 있지만 전문 인력이 부족해 아이들의 수용 숫자를 제한해야 한다.

윤 소장은 ″쉼터 공간 부족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쉼터에 들어오겠다는 데 말릴 수는 없는 일이다. 문제는 아이들의 생활을 도와주고 치료학습을 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데 있다. 자원봉사자들이 많은 도움을 주고 있지만 상시인력이 부족해 아이들의 수용숫자를 제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쉼터에서는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위해 매주 토요일 오후 은행동 일대에서 거리상담과 함께 PC방과 여관 등을 찾아다니며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쉼터 입소를 유도한다. 직접 아이들을 찾아 보호받고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이다.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는 게 중요

◈청소년들에게는 따뜻한 관심이 필요하다(자료 청소년 쉼터).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거나 길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보는 주변의 시선은 여전히 가정과 학교를 버린 ′가출 청소년′ ′불량 청소년′이다. 하지만 쉼터 관계자들은 이렇게 시민들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비딱한 시선 때문에 또 다른 탈선을 일으키게 된다는 설명이다. 아이들을 도와주려는 손길이 조금씩 늘어나고는 있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중요하다.

강 교사는 ″여기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더 착하고 순박하다고 말하면 거짓말 일 것이다. 모두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10대 청소년들일 뿐이다. 길거리를 떠돌고 있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환경이 문제가 될 뿐″이라며 ″다른 아이들에게 보내는 눈길처럼 똑같이 대해 줘야 한다. 잘못한 일이 있으면 혼내고 안타까운 일에 처해 있으면 따뜻하게 감싸 줘야한다″고 호소했다.

취재를 마치고 쉼터 상담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기자가 일어나며 아이들에게 가볍게 목례를 보내자 책을 읽고 있던 4명의 아이들은 벌떡 일어나 밝게 웃으며 ″안녕히 가세요″라며 인사를 건넸다. 상담실 밖 좁은 공간에서는 서너명의 아이들이 야구놀이를 하며 즐겁게 웃고 있었다. 아이들의 얼굴에서 고민의 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열 여섯살 아이들의 표정 바로 그것이었다.

△ 대전시광역시 청소년 쉼터
홈페이지 : http://www.shimter.or.kr
여자쉼터 : 대전시 중구 선화동 137-9 대훈빌딩 3층
남자쉼터 : 대전시 중구 삼성 1동 구 정동 파출소
무료상담전화 : 256-7942, 256-1388, 1388(청소년긴급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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