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브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이라는 뜻을 가진 순 우리말이다. 그 이름처럼 조금씩 보이지 않게 노력한 결실을 몸으로 확인한 이들은 그저 기쁘기만 하다.
◈ 전국대학연극제에서 받은 상장과 트로피들.

지난 11월 초에 있었던 제 25회 전국대학연극제에서 충남대학교 연극동아리 '시나브로'는 전태일의 인간적인 모습을 조명한 창작극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로 7팀 중 당당히 대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교육부장관상, 희곡상, 연기상 등을 휩쓸어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린 것.

충남대학교 학생회관 3층에 위치한 동아리방에는 트로피와 상장, 기사가 실린 학내신문이 출입문 앞 탁상에 포부도 당당히 놓여져 있다. 한쪽에서는 탁구를 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열띤 토론을 벌이는, 시끌벅적하고 자유로운 그들만의 공간에서 이번 작품을 직접 쓰고 연출한 송성현(건축학과 4학년)군과 연기상을 수상한 신창호(중문과 3학년)군을 만났다.

- 수상소감은

"사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꼭 상을 타겠다는 마음보다는 예전부터 가졌던 막연한 희망을 직접 무대 위에 펼치고 이를 위해서 함께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한 과정이 그저 좋았어요. 저희 시나브로 식구들 모두가 함께 노력한 결과인 만큼 정말 뜻깊은 상이라 생각하고 개인적으로는 얼마 남지 않은 대학 졸업 전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네요."

- 연습과정은 어땠는지
◈연출을 맡은 송성현군.

"올 6월부터 대본작업에 들어가 본격적인 연습시작은 지난 8월5일부터 했어요. 그런데 연습을 할수록 작품이 마음에 안들어 연기자들과 많은 대화 후 반 이상 수정했죠. 전태일의 입을 직접 빌어 표현하던 부분을 친구라든지 주변인물들을 통해 나타내는 식으로 고쳤죠. 또 기획과 조명, 음향, 의상 등 모든 부분을 저희들이 맡았기 때문에 스무명 남짓한 회원들이 연습기간 내내 주말까지 반납해가며 동고동락했죠."

- '전태일'을 소재로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대학 새내기 때 전태일 평전을 감명 깊게 읽고 그저 막연하게 언젠가 한번쯤 연극작품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나 책을 보면 전태일의 '죽음' 그 자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 '인간 전태일'을 조명해 보고 싶었습니다."

- 작품 안의 전태일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보면 주인공이 아니라 약간 조연급으로 밀려나있다고 할까요. 오히려 평화시장 내 함께 일하던 여직공들의 모습이 많이 비춰집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분신을 통한 죽음을 각오했을 때 과연 영웅 전태일이 아닌 하나의 평범한 젊은이로서 그의 진실한 내면에 대해 추측하는 거죠. 그런 부분이 전태일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그 상황에 함께 있었던 여직공들의 입과 행동을 거쳐 나타나죠."

- 전태일을 연기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전태일을 연기한 신창호군.

"죽기 전날 전태일과 어머니가 말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소리지르며 심하게 싸워대지만 마음 속으로는 죽음을 각오한 복잡한 심정과 인간적인 고뇌 등을 비추는 미묘한 심리상태를 세심하게 잡아내야 했어요. 가장 힘들어서 아쉬움이 남지만 그만큼 가장 매력적인 장면이었죠. 그밖에 다른 출연자들과의 호흡은 늘상 같이 지내며 연습한 덕분인지 잘 맞았습니다."

-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라는 제목은 무슨 의미인가요

"실제 전태일이 죽기 전 기록한 일기 내용 중 발췌한 부분입니다. 원래대로 하면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기고 나는 잠시 쉬러간다'고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시장에서 함께 일했던 가족과 같은 어린 여직공들에게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결코 인간답게 살기 위한 그들만의 부르짖음을 멈추지 말라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어 제목으로 정했습니다."

- 가장 큰 상을 받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있을텐데

"물론이죠. 제가 직접 작품을 쓰다보니 제 생각의 틀 안에서 끌려 다닌 면이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 창작극이 3팀에 각색 1팀, 기성극 2팀이 출전한 본선공연에서 예선 때 보다도 흡족하지 못했던 것도 아쉽고요(웃음)"

- 평소 지역 연극계와의 교류는 이루어지나

"인터넷 까페 등에서 지역 내 공연 소식을 접하고 함께 관람한다든지 하는 수준이고 직접 연계가 되어 연습을 한다든지 하지는 않습니다."

- 졸업 후에도 연극계로 나가겠다는 생각들을 갖고 있는지
◈시나브로 회원들의 가족적인 모습.

"대학 연극동아리 활동은 순수하게 '취미'인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선배 중 연극인으로서 활발히 활동을 하는 분들도 계시고 다른 학교의 연극영화과로 전공을 바꾸는 학생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지역 연극계가 대부분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열악한 환경에 처한데다 극단에 들어가도 1-2년 넘게 무료봉사하면서 다시 배워야 하는 등 제대로 된 교육기관이 없는 것도 대학 연극동아리원들이 연극에 대한 열정을 '한때의 추억'으로만 남기게 되는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면에서 많이 아쉽죠."

- 상금은 어떻게 쓰실 계획인가요

"해마다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쫑'여행을 가는데 올해에는 사상 최대의 예산을 들여가려고요(웃음) 부상으로 받은 300만원 중 100만원은 여행경비로 쓰고 나머지는 행사비용에 보탤 생각입니다. 올해가 시나브로 창립 30주년이 되는 해라서 이번 달 말에 시나브로 1기 72학번 선배님부터 02학번 막내까지 한자리에 모이는 기념행사가 열리거든요. 30주년 기념에 수상소식까지 겹쳐 다들 경사났다고들 하고요(웃음) 선배님들께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사진을 찍는다는 말에 동아리 방 한 켠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이들의 모습은 어느새 닮아 있다. 두꺼운 앨범 안에 차곡차곡 모아둔 공연 당시 사진들에서는 풋풋하지만 뜨거운 열정이 묻어나는 듯 했다.

한편, 연극영화과를 제외한 전국의 순수 연극동아리들이 참가한 이번 전국대학연극제에는 고려대, 아주대, 성신여대 등 총 7개 팀이 참가해 지난달 28일부터 하루 한편씩 동국대 예술극장에서 공연을 가졌으며 대전충남지역에서는 20개 팀 중 예선을 통과한 충남대 시나브로와 한밭대 현암극회가 출전해 열띤 경쟁을 벌였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