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문화]피카소와 오노요코 전시회에 다녀와서

◈피카소

라는 제목의 논문을 읽었습니다. 삼성미술관의 직원이 쓴 글입니다. 여성들의 문화자원봉사 활동사례를 조사하기 위해 찾아갔던 저에게 그 직원은 참조하라며 자신이 쓴 글이 있는 두 권의 논문집과 전시초대권 10장을 주었습니다. 호암갤러리에서 전시중인 피카소 展과 로댕갤러리에서 전시중인 오노 요코 展을 볼 수 있는 초대권이었습니다. 버스 타고 내려오면서 초대권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떠올렸습니다.

문화자원봉사자 교육 후속프로그램으로 ‘서양미술사’와 ‘전시장 자원봉사자’에 관한 강의를 받고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이번 기회에 실제로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에서 전시 설명을 직접 듣는 기회를 마련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대전발 8시 1분 기차로 서울가서 11시 피카소전 설명을 듣고 점심 먹은 후 오노 요코전 설명을 듣고 4시 15분 기차를 타고 내려오는 일정이었습니다. 모두 14명이 참가하고 돌아왔습니다. 미술관의 직원은 기꺼이 우리 모두 초대해주었습니다. 그 직원의 직명은 에듀케이터(educator)입니다. 미술관의 큐레이터(curator)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에듀케이터라는 직명은 아직 생소할 것입니다. 미술관의 전시설명, 자료정리 등을 도와주는 문화자원봉사자를 관리하고 교육시키는 직책입니다.
◈오노 요코

전직 삼성미술관 에듀케이터로 근무했던 분이 현재 대전에 거주하고 있기에 그 분으로부터 전시장의 자원봉사자인 도슨트(docent)에 대한 강의를 듣고 갔습니다만 실제로 전시장에서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번 서울행은 단순히 미술전시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서서 도슨트가 어떻게 설명을 하지는지에 초점을 두었던 것입니다만 님도 보고 뽕도 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대중과 문화의 중간매개자 '스토리텔러'

오랜만에 단체로 기차를 타고 가는 설레임으로 시작되어 비를 뚫고 찾아간 전시장에서 도슨트는 피카소의 판화전을 차분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 일행과는 달랐지만 대전에서 올라오신 분도 만났습니다.

전시 설명을 들으며 ‘도슨트, 전시의 스토리 텔러’라는 제목이 다시금 도드라집니다. 어디선가 읽었습니다. 문화관련 직종으로 앞으로 스토리 텔러story teller가 부상할 것이라고 합니다. 문화유산해설사도 일종의 스토리 텔러이고, 미술관, 박물관의 해설자도 스토리 텔러에 해당합니다. 물론 이들은 여전히 자원봉사자에 해당합니다만 앞으로의 시대는 문화유산과 유물, 미술품을 대중과 좀더 친숙하게 접근시켜주는 중간매개자로서 스토리 텔러가 좀더 많이 요구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피카소와 갑자기 친숙해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누군가 했습니다. 아마 서양화가들 가운데 대표적인 이름이 피카소인데 이번만큼 제대로 피카소를 알게 된 적은 처음입니다.
◈로댕갤러리에서 문화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한가운데 안경 쓴 분이 필자.

피카소의 판화만 200여점이 전시되어 있었고 한시간 이상을 도슨트가 설명해주었는데 설명을 들어가면서 다음 다음 그림을 만날때마다 점점 피카소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괴팍한 노인네라는 인상만 있었는데 그림속의 늙어가는 피카소의 분신들을 보면서 서글픈 인간적 동정까지 느꼈습니다. 판화의 대부분이 거의 포르노물에 가까운 형태였지만 그림에 빠져든 우리들은 예술적 형상으로까지 이해했으며, 결론은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거리낌없이 보여주어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피카소가 그리면 예술이라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았습니다. 우리집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어느 전시장에서 그림을 보는데 아이는 지겨운지 자꾸 나가자고 보챘습니다. 그런 와중에 누드화가 나오니 아이는 "저질"이라고 합니다. 아이를 붙들고 계속 전시를 보기 위해 누드화가 나오면 아이 재미있으라고 내가 먼저 "저질"이라 말했고, 전시장을 나오면서 왜 그렇게 서양화에는 '저질이 많은가'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피카소를 인간적으로 보게 해준 '도슨트'의 설명

피카소 판화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저질이라 말했어야 마땅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피카소전은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음 기회에 피카소전을 다시 보게되면 그 때는 훨씬 친숙한 느낌으로 다가가게 될것입니다.

도슨트의 설명을 듣지 않았더라면 피카소는 왜 저렇게 “저질”만 그리는 것일까 여길 뻔 했습니다. 피카소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정신분석 하듯이 자신을 객관화하면서 그렸습니다.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분석하여 소설 쓰듯이 말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피카소가 이야기하고자 하였던 것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림이 내게 이야기를 걸어오고 내가 작가에게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건네는 단계가 오면 혼자서 오랫동안 조용히 그림을 보며 대화를 하게 될 것입니다.
◈피카소

오노 요코전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도슨트의 설명없이 혼자서 관람하는 것은 무의미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7월달에 이미 혼자 보았었지만 이번에는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보니 오노 요코의 개념예술을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일상과 삶, 예술에 구분이 없어지는 것이 어떠한 것이라는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플럭서스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석양빛은 시점에 따라 다르게 보여질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심히 보았을 뿐인 석양빛에도 그녀의 지시문에 따르면 작품이 됩니다. 살고 있는 자체를 이벤트화함으로써 삶은 늘 새롭고 흥미로운 것임을 시사합니다. 그러면서도 오노요코는 "이것은 여기에 없다"라고 말함으로써 전 단계를 전복시켜 버리기도 합니다.

피카소와 오노 요코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의 결혼 대상은 끊임없는 예술적 영감을 준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피카소는 몇 번인지는 모르지만 여러번, 오노 요코는 세 번 결혼했다고 합니다. 예술적 영감, 다시 생각해 볼 일입니다. 재작년 새해 꼭두새벽에 일어나 제가 쓴 글의 제목이 '내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내용인즉 새해에도 내게 영감을 주는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었습니다.

이춘아 시민기자(47)는 부산 출생이다. 한밭문화마당(대전시 서구 만년동) 공동대표로써 지역 문화예술 살리기와 청소년과 여성의 역할 찾기에 앞 장 서고 있다. 여성학과 교육학 전공을 살려 여성정책연구소에서도 오랫동안 일해왔으며 현재 대전시 여성정책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까지 대전MBC 라디오프로그램에서 '여성문화 찾아가기'코너를 맡아 여성시각으로 바라보는 문화이야기를 다루어 왔다. 연락처 018-432-4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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