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 공동체 순례...'오래된 새길을 찾아'

‘인도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긴 여정이었다. 새벽 4시부터 서두르기 시작한 일정은 만 하루가 지난 다음날 새벽 3시, 우리 시간으로는 6시가 넘는 시각에야 비로소 ‘세계 어디에도 내 집이 있다’는 어느 책 제목처럼 비록 단 며칠 동안이지만 내 집이 될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더위와 매연 속의 순례-햇볕과 무더위에는 모자보다는 스카프가 훨씬 효과적이었다. 덕분에 집시여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첸나이, 우리에게는 마드라스(인도에서는 근래 들어 영국 식민지 시대의 지명대신 옛 지명을 다시 사용하고 있다)로 더 잘 알려진 남인도 최대의 도시인 첸나이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어느 새 시계바늘은 밤 10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아, 이제 드디어 인도에 도착하기는 했구나 하는 가벼운 설레임이 가슴 한 가운데를 싸하게 훑고 지나갔다.

그러나 이러한 기분도 잠깐, 청사 밖으로 나오자 인도의 여름은 마치 사우나탕 같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끈끈하며 후끈한 열기가 얼굴과 온 몸에 훅 끼쳐온다. 불쾌감을 느낄 겨를도 없이, 공항을 빠져 나오자 이번에는 예의 그 악명 높은 매쾌한 매연냄새가 또 한 번 숨을 막히게 한다. 그리고 한 밤 중임에도 버글거리는 사람과 차의 홍수...

'인도 생태공동체 순례’

비로소 인도가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필자에게는 두 번째인 이번 인도여행은 기존에 경험했던 공식적인 출장 아니면 문화탐방과는 전혀 패턴이 다른 여행이었다.
◈남인도의 첸나이에서 중부 데칸 고원의 낙푸르를 거쳐 서부의 뭄바이에 이르는 16박17일간의 순례의 여정.

대전의 사회복지 시설인 평화의 마을과 서울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오래된 새 길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공동 주최한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탐방을 넘어 순례자의 마음으로 인도를 체험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요구하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니 여행준비부터 모든 것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대신 ‘고생하는 것 만큼 몸으로 깨닫는다’는 인도순례는 그렇게 시작됐다. 만 하루를 꼬박 비행기와 자동차에 시달리고도 숙소에 도착하지 못하고 또다시 길을 재촉해야 하는 긴긴 여정. 게다가 어느 정도 예상과 각오는 했지만 순식간에 사람을 지치게 하는 무더위, 그러나 사실 인도의 혹서기는 4-6월로 현지인들은 우기인 지금은 살만하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인도에서 연일 40도가 넘는 불볕더위로 1천명 이상이 사망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창문 닫으면 찜질방, 열면 매연세례 '에어컨 버스'

참가자들은 첫 도착부터 약간은 얼이 빠진듯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에어컨디셔너(A/C)라고 쓰여진 버스를 타면 후덥지근한 무더위에서 일단은 탈출할 줄 알았는데 버스는 기대를 여지없이 깨버렸다. A/C는 일종의 호객행위였던 셈이다. 창문을 닫으면 찜질방, 열면 매연 세례.

그것만으로 부족해 인도에 도착하고도 대전에서 부산 정도의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먼 길. 내 집에서 또 다른 내 집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멀고도 멀었다. 첫 번째 기착지인 생명누리 공동체가 있는 카삼은 첸나이 공항에서 거의 4시간 가까이나 걸렸다.

그러나 순례(필자 개인적으로는 준비와 마음가짐이 덜 되어있어 감히 이런 표현을 쓰기가 멋쩍기는 하지만 공식 명칭인 만큼 그대로 쓰기로 한다.)의 첫 날 충격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목적지에 다 도착했다고 하는데 몇몇 인도인이 호롱불을 들고 웅성웅성 서 있을 뿐, 깜깜절벽이다. 거기다 카삼으로 오는 도중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는 여전히 사그라들 줄 모른다. 지척을 구분하기 힘든 어둠 속에서 비를 맞아가며 겨우 겨우 짐을 옮겨놓고 나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가볍게 꾸려야 된다는 생각과는 달리 이것저것 집어넣은 힘에 부치는 짐은 꾸릴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기는 하나 여행 내내 그야말로 ‘짐’이었다.
◈오래된 새 길을 찾아서 - 평화의 마을과 크리스챤 아카데미가 공동으로 주최한 인도 생태공동체 순례 참가자들. 순례는 7월 29일부터 8월 14일까지 17일간 진행됐다.

호텔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만큼 가방을 들어다 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숙소로 옮기거나 차에 실을 때마다 한 바탕씩 씨름을 벌여야만 했다. 2층이나 3층인 숙소를 만나면 그야말로 악몽이 따로 없었다. 차라리 몰랐다고 하면 변명이나 될 것을, 하기야 충분히 예측하면서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이함과 갖가지 미련 때문에 끊지 못하고, 버리지 못해 고생을 자처한 어리석음이 어디 이뿐이랴.

비 때문에 전기가 나갔다는 설명이다. 끊어진 것은 전기만이 아니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물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 대단한 환영인사다. 서른 시간 정도를 달려와 전기도 물도 없이 입은 채로 잠자리에 든 인도의 첫 날 밤은 앞으로의 간단치 않은 여정을 예고하는 서막인 셈이었다.

이름만으로도 가슴 벅찬 간디가 마지막을 보낸 세바그람 아쉬람, 국내에서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비노바 바베 아쉬람, 최근 매스컴에 소개돼 관심을 모은바 있는 오로빌, 크리스찬 아카데미가 추진하고 있는 씨알 아쉬람 등등. 남인도의 첸나이에서 중부 데칸 고원의 낙푸르를 거쳐 서부의 뭄바이에 이르는 7월 29일부터 8월 14일까지 16박17일간의 순례의 여정을 차례로 연재한다.
◈길에서 만난 인도의 아이들- 남루한 옷차림에 신발도 신지 못한 맨발이지만 해맑은 미소와 따뜻하게 흔들었다.

◈샬롬 하우스-인도에서의 첫 내 집이었던 생명누리 공동체 안에 있는 샬롬 하우스(평화의 집). 도착 첫 날 전기도 물도 없어 당혹스럽게 했지만 떠날 때는 가장 아쉬웠던 곳이다.

◈짐과의 전쟁-가방을 꾸릴 때부터 예견했던 일이기는 하나 힘에 부치는 짐은 여행 내내 그야말로 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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