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문화] 나만의 공간 만들기

부엌에서 사용하던 식탁을 베란다로 옮겨놓았습니다. 하늘풍경이 너무 좋은날 이곳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식탁은 책상으로 나에게 돌아왔습니다.
◈베란다 한 쪽을 차지하고 있는 식탁, 20년을 동고동락한 친구다.

책을 읽다 말고 초가을 맑은 하늘을 언제 다시 볼까 싶어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른편으로 계룡산 방향의 산들이 보입니다. 베란다 창밖으로 찍은 겹겹의 산에는 월평산, 보문산, 식장산, 그리고 서대산도 보입니다. 식탁 유리에 비친 하늘색이 좋습니다.

부엌에서 사용하던 식탁의 자리에는 손님 올 때 접었다 펴는 낮은 상을 놓았더니 부엌의 공간이 엄청나게 넓어 보입니다. 밥은 식탁 의자에 앉아 먹는 것보다 퍼지고 앉아 먹는 것이 역시 좋습니다.

책상으로 내게 다시 돌아온 테이블은 82년경 직장생활 시작하면서 첫 월급 받은 것으로 산 것입니다. 20여년을 나와 동고동락한 셈입니다. 자취방의 1/4을 차지했던 테이블에서 책을 읽고 일기도 쓰고 친구가 오면 함께 밥도 먹고 했습니다.

결혼하면서부터 그 테이블은 단칸방에서 남편의 책상이 되었습니다. 결혼 후 두 번째 옮긴 방은 단칸방이긴 해도 비교적 큰 방이어서 테이블에 앉아 공부하는 남편이 멀찌감치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세 번째로 옮긴 집은 방 두개짜리 전셋집이고 테이블은 독립된 방에서 여전히 남편의 책상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방 세 개짜리 아파트로 옮기면서 테이블은 부엌에서 식탁의 기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가끔 나는 이 식탁에서 아이의 공부를 봐주기도 하고 책읽기도 했습니다.

노트북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테이블은 식탁으로서만 기능하였습니다. 노트북은 앉은뱅이 작은 테이블에서만 사용했으니까요. 그러다 며칠 전 친구가 집에 놀러오면서 식탁을 베란다로 옮겨보자 하여 옮기고 나니 베란다가 작은 휴식공간이 되었습니다. 식탁은 다시 책상으로 그 기능을 옮기어 책도 읽고 차도 마시며 바깥 풍경도 구경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베란다 가까이 가면 마치 내가 노출되는 듯하고 공중에 떠있는 것 같아 감히 무섭기도 하여 창 가까이 하지 않았던 것인데 생각했던 것보다 책 읽기에 집중도 잘되고 괜찮습니다. 그 사이에 방은 여러 개 생겼지만 딱히 나의 공간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었는데 정말 어느 날 갑자기 베란다가 나의 공간이 된 듯 합니다. 화분만 몇 개 있던 곳이 테이블이 오면서 나도 오고 생기 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집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창밖 세상도 내다봅니다.

그때 첫 월급을 받아 왜 이 테이블을 산 것일까, 생각해봅니다. 작든 크든 사람은 자기만의 공간을 갖기 원하는 것 같습니다. 자취방 크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큰 테이블을 놓음으로 해서 나는 공간을 분리하기 원했던 것입니다. 그 곳에서 내 꿈을 만들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쉼의 공간도 다양합니다. 누워서 쉬는 것과는 달리 책상에 앉아 꼼지락거리며 밤 늦도록 무엇인가 하는 것도 일종의 놀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 힘으로 또 다른 세계에서 살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된 저 테이블에 앉아 오랫동안 잊어온 나만의 휴식을 취하고자 합니다.
◈식탁에서 바라본 베란다 바깥 풍경.


이춘아 시민기자(47)는 부산 출생이다. 한밭문화마당(대전시 서구 만년동) 공동대표로써 지역 문화예술 살리기와 청소년과 여성의 역할 찾기에 앞 장 서고 있다. 여성학과 교육학 전공을 살려 여성정책연구소에서도 오랫동안 일해왔으며 현재 대전시 여성정책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최근까지 대전MBC 라디오프로그램에서 '여성문화 찾아가기'코너를 맡아 여성시각으로 바라보는 문화이야기를 다루어 왔다. 연락처 018-432-4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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