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대통령 꿈꾸는 박근혜 전 대표의 ‘과제’
남녀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다.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겨졌던 직업군에도 여성의 진출이 일상화 된지 오래다. 거리에는 여성 운전자가 넘쳐난다. 여성스런 외모의 남성들이 인기를 얻는 것도 이제는 별스럽지 않은 일이 돼 버렸다. 그러나 인식의 저 밑바닥에는 여전히 남성과 여성에 대한 변하지 않는 관념이 자리 잡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명박 전 시장은 'MB'…박근혜 전 대표는?
대선정국이 본격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덧 여성 대권 주자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남녀에 대한 가치관이 변모했다는 증거임이 분명하다. 여성 최초의 국무총리가 있기도 했지만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견주어 보기엔 좀 뭣한 측면이 있다.
한나라당 양대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누가 뭐래도 각각 남성과 여성이라는 점일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분명치 않지만 우리는 정치인의 이니셜을 자주 부르게 된다. 현대 한국정치사의 또 다른 이름인 ‘3김 시대’ 이후부터 아니었나 싶다. ‘YS’, ‘DJ’, ‘JP’ 등은 이미 우리에게 친숙해 진 지 오래다. 물론 당시에는 높으신 분들의 실명을 함부로 거론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이명박 전 시장은 언론 등에 의해 ‘MB’로 불리는 반면 박근혜 전 대표는 그 누구도 ‘GH’라고 하지 않는다. 박 전 대표보다 지지율면에서 훨씬 뒤쳐지고 있는 정동영, 김근태 의원도 ‘DY’, ‘GT'로 부르고 있는데 말이다. 왜일까?
열린우리당 초선의원 “박 전 대표에겐 매몰차게 못할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자는 그가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리고 기자가 만난 여러 명의 정계 인사들도 이에 대해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열린우리당 한 초선의원은 얼마 전 기자에게 “박 전 대표보다는 이 전 시장이 우리에겐 유리할 것 같다”며 “그 이유는 상대방 후보에 대한 온갖 비난전이 있을 텐데 박 전 대표에게는 매몰차게 못할 것 같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언뜻 듣기에는 별스럽지 않은 말일수도 있지만 곱씹어 보면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당 내부 인사들에게서도 종종 눈에 띈다. 며칠 전 박 전 대표가 천안을 방문했을 때에도 먼저 단상위에 오른 인사들은 “여성은 나약하다고 생각하지만 박 전 대표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박 전 대표를 대처 영국 수상에 종종 비유하기도 한다.
물론 박 전 대표를 위한 말이겠지만 기자는 가끔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미 박 전 대표는 나약한 여성이라고 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굳이 확인해 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들 조차도 박 전 대표가 여성이라는 점을 늘 명심하고 있다는 뜻임이 틀림없다.
박 전 대표를 ‘GH'라 부르기 위해선…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로 취임했을 당시 일각에서는 ‘얼굴마담’의 역할에서 끝날 거란 관측도 나왔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그가 지금 말하고 있는 대로 천막당사에서 당을 구해냈고, 천안 연수원을 국민에게 헌납하는 등 오늘의 한나라당을 재건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명박 전 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대선후보로 당당히 서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자는 박 전 대표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 주고 싶다. 더 이상 ‘여성 박근혜’에 머물러 있지 말라는 것이다. 앞으로 있을 각종 행사장에서 박 전 대표를 “결코 나약하지 않은 여성”으로 누군가에게 소개받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MB’와 마찬가지로 당당히 ‘GH’라 불러달라고 요구하라는 뜻이다.
어쩌면 이것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박근혜 전 대표가 극복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도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