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대통령 꿈꾸는 박근혜 전 대표의 ‘과제’

 97년 군대를 제대하고 이듬해 대학에 복학해서 느꼈던 가장 황당한 경험은 여학생들이 잔디밭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목격한 때였다. 처음에는 무척 충격적이었으나 군생활 26개월이라는 시간이 만들어낸 문화적 충격쯤으로 받아드리기 시작했다.

 남녀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다. 남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여겨졌던 직업군에도 여성의 진출이 일상화 된지 오래다. 거리에는 여성 운전자가 넘쳐난다. 여성스런 외모의 남성들이 인기를 얻는 것도 이제는 별스럽지 않은 일이 돼 버렸다. 그러나 인식의 저 밑바닥에는 여전히 남성과 여성에 대한 변하지 않는 관념이 자리 잡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명박 전 시장은 'MB'…박근혜 전 대표는?

 대선정국이 본격화 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는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덧 여성 대권 주자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다. 물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남녀에 대한 가치관이 변모했다는 증거임이 분명하다. 여성 최초의 국무총리가 있기도 했지만 대통령과 국무총리를 견주어 보기엔 좀 뭣한 측면이 있다.

 한나라당 양대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누가 뭐래도 각각 남성과 여성이라는 점일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분명치 않지만 우리는 정치인의 이니셜을 자주 부르게 된다. 현대 한국정치사의 또 다른 이름인 ‘3김 시대’ 이후부터 아니었나 싶다. ‘YS’, ‘DJ’, ‘JP’ 등은 이미 우리에게 친숙해 진 지 오래다. 물론 당시에는 높으신 분들의 실명을 함부로 거론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데 무슨 연유에서인지 이명박 전 시장은 언론 등에 의해 ‘MB’로 불리는 반면 박근혜 전 대표는 그 누구도 ‘GH’라고 하지 않는다. 박 전 대표보다 지지율면에서 훨씬 뒤쳐지고 있는 정동영, 김근태 의원도 ‘DY’, ‘GT'로 부르고 있는데 말이다. 왜일까?

 열린우리당 초선의원 “박 전 대표에겐 매몰차게 못할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기자는 그가 여성이기 때문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리고 기자가 만난 여러 명의 정계 인사들도 이에 대해 비슷한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열린우리당 한 초선의원은 얼마 전 기자에게 “박 전 대표보다는 이 전 시장이 우리에겐 유리할 것 같다”며 “그 이유는 상대방 후보에 대한 온갖 비난전이 있을 텐데 박 전 대표에게는 매몰차게 못할 것 같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언뜻 듣기에는 별스럽지 않은 말일수도 있지만 곱씹어 보면 무서운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당 내부 인사들에게서도 종종 눈에 띈다. 며칠 전 박 전 대표가 천안을 방문했을 때에도 먼저 단상위에 오른 인사들은 “여성은 나약하다고 생각하지만 박 전 대표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박 전 대표를 대처 영국 수상에 종종 비유하기도 한다.

 물론 박 전 대표를 위한 말이겠지만 기자는 가끔 고개를 갸우뚱 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미 박 전 대표는 나약한 여성이라고 보이진 않기 때문이다. 굳이 확인해 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들 조차도 박 전 대표가 여성이라는 점을 늘 명심하고 있다는 뜻임이 틀림없다.

 박 전 대표를 ‘GH'라 부르기 위해선…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로 취임했을 당시 일각에서는 ‘얼굴마담’의 역할에서 끝날 거란 관측도 나왔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그가 지금 말하고 있는 대로 천막당사에서 당을 구해냈고, 천안 연수원을 국민에게 헌납하는 등 오늘의 한나라당을 재건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명박 전 시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대선후보로 당당히 서 있다.

 그런 의미에서 기자는 박 전 대표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 주고 싶다. 더 이상 ‘여성 박근혜’에 머물러 있지 말라는 것이다. 앞으로 있을 각종 행사장에서 박 전 대표를 “결코 나약하지 않은 여성”으로 누군가에게 소개받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이다. 그리고 ‘MB’와 마찬가지로 당당히 ‘GH’라 불러달라고 요구하라는 뜻이다.

 물론 여성으로서의 ‘그 무엇’(?)을 버리라는 말은 아니다. 박 전 대표를 끊임없이 여성으로만 규정하려는 ‘그 무엇’과 당당히 맞서라는 뜻이다. 그럴 때야 비로소 우리는 박 전 대표를 'GH'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꿈꾸는 박근혜 전 대표가 극복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도 어려운 과제일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