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열린당의 아산지역 민생투어가 남긴 것들

“‘민생투어’는 뭔 민생투어? 차라리 ‘민폐투어’라고 바꿔라...!”

열린당이 지난 9~10일 아산지역에서 실시한 ‘신 빈곤층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구하기 위한’ 민생투어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열린당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그 주된 배경에는 ‘민생투어’라는 말이 전혀 무색할 정도의 행동을 열린당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좀 더 깊이 살펴보면 상대방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조변석개’식 일정변경과 민생은 없고 정치만 있었던 투어였다는 점도 열린당이 지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데 한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기자가 파악한 바로는 열린당은 민생투어의 일정을 총 3번 변경했다. 그곳도 일정이 이뤄지기 이틀 전 또는 당일 변경된 것이어서 이들의 활동을 지원했던 아산시청 사회복지과 직원들은 물론, 지역 취재 기자들까지도 골탕 먹기 일쑤였다.

민생투어 일정 ‘조변석개’, 공무원ㆍ취재기자들만 ‘골탕’

애초의 일정대로라면 열린당 정세균 원내대표는 10일 아산에서 사회복지 관련 공무원 및 시설 종사자들과 간담회를 갖게 돼 있었다. 이를 위해 아산시청 사회복지과 직원들은 지역 사회복지계 인사들에게 공문을 통해 행사에 참석해 줄 것을 알렸다. 또한 일일이 전화로 참석 여부를 확인하는 수고도 감당해야 했다.

그러나 정 대표와의 일정은 8일 오후 변경됐다. 열린당 충남도당은 9일 일정도 오후 6시쯤 되서야 확정하는 등 해당 공무원들을 속 타게 했다. 결국 사회복지과 직원들은 또 다시 전화를 걸어 간담회가 취소됐음을 알려야 했다. 일부 관계자들은 “이런 무례가 어디있냐?”며 속상해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열린당의 급한 일정 변경으로 이로 인해 몇몇 기자들은 ‘오보’를 낼 수밖에 없었다. 정 대표의 아산방문을 미리 보도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였다면 아예 언급도 안했을 것이다. 열린당 충남도당은 정 대표의 아산방문을 취소하는 대신 9일 오전 천안 중앙시장에서의 민생투어를 약 30분간 계획했다고 전했다. 또한 정 대표 대신 문희상 당의장이 간담회에 참석하기로 했다고 알렸다.

그러나 정 대표의 중앙시장 방문은 당일 오전 취소됐다. 열린당 충남도당 관계자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시장을 방문하면 괜히 원성만 들을 것 같아서였다”고 전했다. 게다가 문 의장의 아산 방문도 다른 일정 때문에 취소됐다.

비록 정치인들은 자신의 일정에 따라 미리 계획된 행사를 쉽게 취소하겠지만 행사를 준비했던 담당 공무원들은 그야 말로 죽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한 공무원은 “정말 이 정도일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해서 예산이 관련돼 있어서 뭐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민생’은 없고 ‘정치’만 있었다

민생투어의 내용도 문제였다. 신 빈곤층 확대에 따른 문제를 알아보기 위한 투어에서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 아산으로의 민생투어를 추진했던 열린당 모 전문위원은 몸이 안좋다는 이유로 연락이 두절되는 등 애초부터 투어 자체에 대한 차질이 예고 됐다.

첫날 아산시청을 방문한 의원들은 모두 재경위나 문광이 소속이 전부였다. 열린당 충남도당 관계자는 이를 문제삼은 기자에게 “팀을 구성하다보니 이렇게 됐다. 그래도 유시민 의원은 지난번에 보건복지위 소속 이었다”고 해명했다. 언론의 비난을 인식해서인지 다음날 민생투어에는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이 민생투어에 합류했다.

9일 천안에서 진행됐던 ‘중앙당확대간부회의’와 ‘민생과 지역주의 해소를 위한 간담회’에서도 ‘민생’은 오간데 없었다. 정세균 원내대표, 문희상 당의장, 장영달 상임중앙위원 등 당 지도부는 오로지 도청 문제로 불거지고 있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갈등설을 무마시키기 위해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특히 문 의장은 간담회 자리에서 노 대통령의 연정 제안 배경을 설명하며 이를 무마시킨 한나라당 등에 대해 “역사의식이 없는 사람들”이라며 비난을 쏟아냈다. 민생하고는 전혀 상관 없는 내용들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 자리에서 민생에 대해 얘기하기를 기대했던 기자가 이상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왕조시대의 어진 임금들은 민생을 직접 살피기 위해 미복잠행을 자주 했다고 한다. 때로는 다리 밑이나 객주를 들러 가며 그들의 어려움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 민생투어 간다!”하면서 떠벌리고, 생색내고, 그것도 모자라 자기들 편한 데로 일정을 변경하고 내용도 별 상관없는 얘기들만 할 것 같으면 뭣 하러 이 더위에 공무원들 휴가도 못 가게 만드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행동들이 열린당에 대해 조금이나마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국민들마저도 등을 돌리게 하지는 않을지 괜한 걱정이 든다. 이런 것을 두고 ‘안하느니만 못하다’는 말이 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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