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우공이산(愚公移山), 현민이관(賢民移慣)

벌써 두달이 지나고 있다. 지난 10월 21일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관습헌법’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신행정수도 건설이 좌초된 그날, 충청도민이라면 아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때의 좌절과 절망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위헌판결의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필자는 ‘기자질 하기 정말 편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뚱맞은 생각을 떠올리기도 했다.

언제였는지 명확하진 않지만 외국의 한 기자가 특종을 취재하기 위해 고의적로 사건을 발생시켜서 논란이됐던 적도 있었다.

그런 시대에 비하면 같이 ‘기자질’을 하는 상황에서 이 얼마나 편한 시대에 살고 있는가? 일부러 무슨 일을 만들어내지 않더라도 탄핵, 위헌판결, 수능부정사태 등 예상치 못했던 상황들이 저절로 만들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위헌판결 이후 두 달,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 후로 지금까지 40여차례의 크고 작은 집회가 열렸고, 그 열기를 담아 내기 위해 현장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어떨땐 필자 스스로도 울분을 참지 못해 ‘차라리 단상에 올라가서 목청껏 연설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 한편으론 ‘저런 발언들은 오히려 충청민을 고립시킬 수 있을텐데’라는 걱정도 하면서 마음을 조리기도 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신행정수도 위헌판결을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위한 호기로 삼고자 심하게 ‘오버’ 하는 기회주의적인 사람들을 보기도 했고, ‘과연 이들이 충청민의 민심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우려스럽기도 했다.

필자의 마음을 가장 뜨겁게 만들었던 것은 매 집회마다 자리를 차지한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눈빛이었다.

주최측 관계자들에게 이번 집회에 대해 한 말씀 해 주길 여러번 요청했기에 ‘이번엔 어떤 말을 들을 수 있을까?’보다는 ‘별 다른 말이 있겠어?’라고 생각될 때가 많았지만, 추운 날씨 속에서 묵묵히 함께하고 계신 어르신들을 보면 왠지 마음이 서글퍼지기까지 했다.

지난 두달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비상시국회의가 꾸려지고 각자의 목소리를 위한 서로 다른 조직들이 구성되면서 오히려 혼란스러움을 주기도 하는 등 부작용이 많았다.

일부 언론에서는 ‘내분’이라는 용어까지 사용하면서 우려를 나타냈고, ‘내분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이라는 논리로 이를 반박하는 기사를 썼던 필자도 단일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신행정수도 재추진’이라는 단일 명제와 ‘지방분권’이라는 대의에 뜻을 같이하더라도 진보와 보수라는 지나치게 컸던 입장차를 하루 아침에 좁힌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모습도 종종 있었다. 소위 ‘보수단체’라고 불려온 단체들이 조선-동아일보 절독운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은 그야말로 ‘신선한 충격’이었고, 이제는 뭔가 제대로 되 가고 있다는 청신호 이기도 했다.

충청민, 우공(愚公)의 마음으로 현민(賢民)이 되길...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고사는 원래 ‘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열자](列子) 에 나오는 얘기이다.

태형(太形) ·왕옥(王屋) 두 산은 둘레가 700리나 되는데 원래 기주(冀州) 남쪽과 하양(河陽) 북쪽에 있었다. 북산(北山)의 우공(愚公)이란 사람은 나이가 이미 90에 가까운데 이 두 산이 가로막혀 돌아다녀야 하는 불편을 덜고자 자식들과 의논하여 산을 옮기기로 결정했다.

흙을 발해만(渤海灣)까지 운반하는 데 한 번 왕복에 1년이 걸렸고 이것을 본 친구가 웃으며 만류하자 그는 정색을 하고 “나는 늙었지만 나에게는 자식도 있고 손자도 있다. 그 손자는 또 자식을 낳아 자자손손 한없이 대를 잇겠지만 산은 더 불어나는 일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언젠가는 평평하게 될 날이 오겠지”하고 대답했다.

친구는 말문이 막혔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산신령이 산을 허무는 인간의 노력이 끝없이 계속될까 겁이 나서 옥황상제에게 이 일을 말려 주도록 호소하였다. 그러나 옥황상제는 우공의 정성에 감동하여 가장 힘이 센 과아씨의 아들을 시켜 두 산을 들어 옮겨, 하나는 삭동(朔東)에 두고 하나는 옹남(雍南)에 두게 했다고 전해진다.(네이버 지식검색)

이 고사는 미련한 늙은이를 조소하는 내용이 결코 아니다. 한 인간의 대를 잇는 끊질긴 노력이 산을 옮긴다는 무서운 진리가 담겨 있다.

신행정수도 사수를 위한 집회에 참석한 연설자들은 “충청민의 진면목은 은근과 끊기에 있다”는 말을 빼 놓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면 과연 충청민에게 은근과 끊기라는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위헌판결 직후 보여줬던 충청민의 관심과 열기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지난 17일 오전, 총 418개 단체들로 구성된 ‘신행정수도 지속추진 범충청권협의회’가 결성기자회견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범충협’ 관계자의 말처럼 “역사상 이렇게 거대한 조직체가 만들어진 것은 처음”이며 그 자체가 새로운 시대를 요구하는 충청민의 단결된 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이제 관건은 신행정수도 재추진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에 있다.

그리고 그 전제는 충청민의 총단결과 결집일 것이고 이것은 동시에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헌재가 위헌판결의 근거로 내린 ‘관습’이라는 말은 정말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마치 “산을 옮길순 없다.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우공의 친구와 같은 경우일 것이다.

또한 “수도는 서울이어야 한다. 서울은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 절대 옮길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들이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을 옮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우공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게 하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관습을 옮기고 타파해야할 때다. 서울만이 수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웃음을 우공의 마음으로 이겨내야 한다.

그것은 어떤 단체나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범충협이 아무리 418개의 단체가 모였다 하더라도, 그 단체 모든 회원들이 같은 마음이어야 하며 나아가서 충청민 모두가, 아니 충청민의 자손 모두가 신행정수도 건설이라는 대의명분에 힘을 모아줄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물론 우공의 고사처럼 옥황상제가 산을 대신 옮겨주지는 않는 다는 것이 자명한 상황이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얼마나 어려운 도전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충청인의 은근과 끊기’가 무엇인지 이번 일을 통해 제대로 보여주든지 아니면 그런 말을 다시는 하지 않길 바란다.


‘범충협’ 한 관계자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구심점은 전라도 광주였다면 21세기 지방분권시대의 중심은 충청도가 되자”는 말을 남겼다.

이제 충청민은 한 배를 탔다. 각오를 새롭게 하고 우공의 마음으로 현민이 되어 ‘관습의 수도’를 옮길 행동에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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