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나팔수 역할만을 강요하는 심각한 횡포"

정부기관에 설치된 기자실은 기자들과 취재원의 이해가 서로 맞아떨어지는 공간으로 시작됐다. 기자는 쉽게 기사거리를 제공받을 수 있고, 취재원인 정부는 한 장소에서 홍보활동을 펼 수 있다. 기자실마다 자율의 형식을 빌어 운영해온 '기자단' 또한 상호간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다. 특히, 언론통제가 극심했던 과거 군사정권 때, '기자단'은 허가된 언론사의 허락된 소수 기자들만이 누려온 '나팔수 언론'의 특권조직이었다.

그런데 요즘, 기자실 폐쇄가 유행이다. 일선 시·군을 중심으로 기자실이 차례로 폐문을 선언하고 있다. 공무원들이건 출입기자들이건 "이런 저런 말 듣기 싫으니, 아예 문 닫아버리자"는 심사가 퍼지고 있는 모양이다. 무슨 억하심정인지는 몰라도 참 섣부르고 고약한 결론이다. 기자단 해체를 실천하고, 기자실을 개방하라는 시대적 요구에 대해 어떻게 대뜸 문에다가 쾅쾅 못질을 하는 쪽으로 결말을 물구나무 세우고 있는가 말이다.

정해진 사람끼리 똘똘 뭉쳐 폐쇄적으로 운영해온 '기자실' 운영의 관행을 고쳐야 한다는 것이 기자실 개혁의 중요한 설계도다. 그런데, '기자'를 칭하고 나타나는 낯선 취재진들의 이 꼴 저 꼴이 보기 싫으니, 또는 '기자실'과 관련된 갖가지 풍설이 불쾌하기 짝이 없으니 아예 공간을 없애버리자며 팔 걷어 부치고 나선 요상한 발상은 참으로 어이가 없다. 험한 말 들으며 일을 하느니, 차라리 책상을 엎어버리겠다?

기자실 폐쇄만이 능사 아니다.

물론, 언론이라고 인정하기에는 너무나 빈약한 군소 언론사의 기자들과, 기자도 아닌 것이 찾아와서 기자연 하는 사이비에 이르기까지 자유언론이 일으키는 방종과 무책임의 폐해를 모르는 바 아니다. 그것은 언제 생각해도 골칫거리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폐쇄적인 기자실이 안고있는, 취재원과의 유착과 잠재적 비리의 위험은 기자실이 없으면 없어질수록 오히려 더욱 증대될 가능성이 높다.

기자실이 없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결국 다방에서 만나고, 식당에서 만나야 한다. 이른 바, 정보의 밀 교환이 이루어지고 은밀한 거래가 성행할 개연성이 높아진다. 그렇지 않아도, 안면이 빤한 일선 시·군 지역의 언론환경은 그런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공무원직장 협의회가 나서서 못질을 했다고? 그것은 제구실을 못 하는 기자실에 대한 일방의 분노행위로 그 해석이 끝나야 한다.

취재일선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저런 잡음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이상한 바람을 부채질한 정부의 언론정책은 최근 슬슬 샛길로 빠지고 있는 느낌이다. 26일 정부기관 공보관회의는 청와대와 문화부에서 시작된 정부의 홍보개혁 시책을 전 부처로 확대 실시키로 결정했다. 브리핑 룸을 설치하고, 기자실을 기사송고실로 바꾸고, 특정사가 전세 낸 것처럼 붙여놓고 살던 팻말을 떼는 것, 거기까지는 좋다.

언론학자, 현직 언론인 지혜도 구해야

문화부에서 당초에 시험삼아 내놓았던 공무원 사후보고, 취재원 실명제 도입, 전화취재 대응, 근무시간 외 공무원 접촉 등도 강제가 아니라 자율로 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문제는 기자의 부처 사무실 방문취재를 금지하기로 한 대목이다. 하기사,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기자들이 정부기관을 찾아가 업무방해를 해가며 취재편의를 위해 공무원들을 귀찮게 굴어왔던가. 당하는 공무원들의 입장에서야 할 말이 많을 것이다.

정부의 지금 정책은 '알아서 알릴 테니까, 물어보지 마라'는 기능주의적 사고의 언저리에 머물고 있어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딱하다는 느낌이다. 기자의 취재행위란 난해한 '숨은 그림 찾기' 또는 '퍼즐 맞추기'와 같다. 아무리 취재원을 상대로 꾀를 부려도 좀처럼 정답을 찾아내기가 어려운 고단한 작업이다. 기자는 브리핑 룸에서 불러주는 내용만 받아 적어야 한다는 것이 이 정권의 언론정책이라면 이는 심각한 횡포가 아닐 수 없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이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로서 유용해진 것은 부패하기 쉬운 권력이란 놈의 특성 때문이다. 일을 못할 정도로 취재기자가 공무원을 괴롭히는 일은 어디까지나 정도(正道)를 넘어선 해당기자의 허물이다. 언론윤리의 차원에서 다루어지고, 기자사회의 자율적인 규범에 의해서 제어되어야 할 사안이다. 그럴 때마다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필요이상으로 업무에 훼방을 놓지 않도록 요구하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는가.

'기자실 개방' '기자단 해체' 급선무

정부의 홍보정책이 언론개혁 목표의 어디에 닿아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건 아니다. 최소한 샛길로 빠지고 있거나, 너무 나가고 있다. 아직은 국민들 위에서 상전노릇으로 권력을 쥐락 펴락하는 존재인 공무원들의 말만 계속 들을 것인가. 최소한 언론과 관련된 정책만큼은 언론운동을 해온 인사들, 언론학자들, 현직 언론인들의 지혜를 함께 구할 수는 없는가.

'기자실'의 오랜 폐쇄적 운영을 종식시켜 개방하고, '기자단'을 해체하여 취재원과의 관계에서의 담합구조를 분해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그런 과정은 어디까지나 기자들의 자율적인 판단과 선택이 존중되는 범위 안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정부가, 기자들의 취재활동을 제한하고 위축시키고자 하는 저의를 의심받을 때, 대한민국의 언론자유는 심각한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밀실에서 나눈 꿍꿍이가 정녕 없다면, 보수정당과 보수언론들에게 더 이상 빌미를 주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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