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온 휴대폰 문자메시지, 그 주인공께

엊그제 쉬는 날 아침이었다. 모처럼 느긋하게 일어나 인터넷 신문을 열어 보고 있는데, 대학생 아들이 다가와 말없이 쳐다본다.

"아버지가 인터넷 하는 거 처음 봤냐? 왜 물끄러미 쳐다보냐?"고 했더니,
"간밤에 걸려 온 휴대폰 문자 메시지 확인하셨느냐?"고 묻는다.

"문자 메시지라니?"
"신호음이 울리기에 제가 열어 보았지요. 아버진 깊이 잠이 드신 것 같아서…"

누가 이런 를 보냈을까?
◈수필가 윤승원씨.

다 큰 아들이 아버지의 휴대폰을 무단으로 열어 본 이유를 굳이 밝히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은 무례가 아니라, 자식으로서 아버지에 대한 격의 없는 친밀감의 표현으로 이따금 있는 일이니까.

다만 온종일 전화의 사슬에 묶여 긴장 속에 살아가는 직업을 가진 아버지가 간밤에 걸려온 휴대폰을 확인하는 것도 잊은 채, 인터넷 검색부터 하는 걸 보고 자식으로서 내심 걱정이 발동한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아들의 표정은 그게 아니었다.
제 볼일도 바쁜데 아비 곁에서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는 녀석을 볼 때, 아버지의 무언가 다른 표정을 살피려는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었다.



중얼거리면서 휴대폰을 열어 보니 이런 문자가 뜬다.

자기야 엄마 땜에 잠깐 일어났어 잘 하고 있지 일찍 들어가 쉬어 사랑해
1:10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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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오해?

내가 놀라는 표정을 지으니, 아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한다.

"저한테까지 굳이 숨길 것 없어요. 사실대로 고백하세요. 숨겨 둔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요?"

아들의 뜻하지 않은 추궁이 재미있다. 웃는 표정도 아니다. 그렇다면 녀석은 벌써 문자를 읽어보고 이런 질문을 던지리라 준비하였으리라.

"녀석아, 웃기지 마라. 잘못 걸려 온 문자다."

그래도 아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비의 말을 좀처럼 못 믿겠다는 눈치다.

"너 코메디 하면 잘하겠다. 너무 웃기니까"

그러자 녀석은 한 술 더 뜬다.

"남자끼린데 뭘 그래요? 좀더 정직하게 말씀해 보세요!"

아니, 이 눔이?

농담을 받아주었더니, 이제 슬슬 공격조로 나오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아비의 문자 사서함에 저장된 익명의 메시지를 분석해 보자.

'괜한 오해'일지라도 진솔하게 풀어야

라는 간지러운 말을 인생 오십 줄에 접어 든 이 아비에게 거침없이 던질 대상이 이 세상에 대체 어디 있겠니?

그런 귀여운 사람이 정말 내게 있다면 좋겠다.
늬 엄마에게 매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고 이 말은 또 무슨 뜻이냐?
잠을 자는데 엄마가 방해했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문자 보낸 이의 신분은 무엇이며 어떤 환경에서 사는 사람인지, 그런 것까지 시시콜콜하게 내가 알 바 아니다. 도 마찬가지다. 제법 다정한 사이에 걱정해 주는 말 같지만, 무얼 잘하고 있느냐는 소린지, 내게는 마치 암호와 같아서 추정도, 해석도 불가능하다.

라든지, 라는 말은 이 아비에게도 적용해도 좋은 말이다.
아니 이 세상 남자라면 누구에게 붙여도 해당되는 말이지.

그리고 라는 말은 얼마나 따뜻한 말이냐.
남달리 걱정해 주는 다정함이 스며있잖니?
그렇게 따뜻한 말은 늬 할머니 생시에 들어보고는 아직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으니, 이 아비로서는 참으로 부럽기도 하고, 간절히 그리워지는 말이다.

라는 말 역시 늬 엄마와 결혼하여 20년 넘게 살아오는 동안 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다.
그러니 그런 다정다감한 말 한 번 누구에게라도 들어보았으면 원이 없겠다.

자, 이제 됐냐? 이 아비에 대한 오해가 풀렸느냐 말이다.
그러자 아들은 빙그레 웃으며

"그래도 아버지의 휴대폰 번호를 누군가 알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닌가요?"

"넌 왜 똑똑한 녀석이 말귀를 못 알아듣니? 답답하게스리!
누군가 실수로 잘못 찍은 번호라니까..."

"그게 실수라면 휴대폰에 찍혀있는 그쪽 번호로 전화 한번 걸어 보세요."

"뭐라고 말하게?"

"이런 문자가 잘못 왔는데, 댁에서 번호를 잘못 찍었으니 다시 확인하고 보내라구요."

"이 애비가 그렇게 할 일이 없는 사람이냐?"

"할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친절이지요, 실수로 문자 보낸 사람에 대한 작은 배려 같은 거죠."

"자상한 배려도 좋지만, 이런 때는 무 대응이 상책이다. 아무 대꾸하지 말고 그냥 웃고 마는 게 차라리 낫다. 친절을 베푼다고 그런 구구한 말을 해주면 오히려 그쪽에서 민망해 할 테니까."

문자 잘못 발송한 분께 오히려 미안한 마음

"그래도 뭔가 아쉽네요. 그 쪽에서 심야에 그런 정도의 문자를 찍으려면 적잖은 시간
공을 들였을 텐데…"

"신경 그만 쓰고, 네 할 일이나 해라."

"알았어요. 아버지! 저도 문자 메시지 보낼 때는 보다 신중을 기해야겠네요."

쉬는 날 아침 부자간의 뜻하지 않은 대화는 여기서 일단락 되었다.
잔잔한 호수처럼 그저 늘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살고자 하는 평범한 한 가장의 가슴에 난데없는 돌이 날아 든 기분이었다.

만약에 입장을 바꾸어, 여성의 휴대폰에 이런 난데없는 문자 메시지가 날아든다면? 그래서 그의 남편이 보게 된다면 어떤 오해로 발전할지? 거기까지 생각하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

아무튼 아들의 궁금증이 아비의 정직한 해석으로 웬만큼 해소된 듯 하여 다행이다 싶었다. 오히려 무미건조한 한 집안의 분위기에 작은 얘깃거리를 만들어 준 낯모르는 분께 고마워해야 일인지도 모른다.

어느 분인지 모르지만 혹여 그런 문자 메시지를 이 사람에게 실수로 잘못 보낸 주인공께서 이 글을 읽게된다면, 뒤늦게나마 미안한 마음 전하고 싶습니다.

귀하께서 애써 조립한 문자를 수신하고도 나의 입장 해명(?)에만 급급한 나머지 잘못 배달된 사실을 미처 전해 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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