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두동 사태를 보며

찬이슬이 내린다는 한로가 지났다. 절기 상으로 완연한 가을이다. 아침 기온이 한 자리 수로 떨어졌고 산간 일부지방에서는 얼음이 얼었다는 소식도 간간이 들려온다. 낮 시간에도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곳은 서늘한 기운이 들 정도이다.

대전시 중구청 앞에서 82일째 노숙을 하고 있는 주민들에게 깊어져 가는 가을과 시간은 초조함으로 다가온다. 두꺼운 담요와 비닐을 머리끝까지 뒤덮고 잠을 청해보지만 잠이 올 리 만무하다. 이런 저런 생각에 몸을 뒤척이다가 설핏 잠이 들었다가도 찬 기운에 다시 소스라치게 깰 따름이다. 지난 7월 18일 시작한 노숙 시위는 계절이 바뀌며 목숨을 담보한 투쟁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임시 및 가수용 시설에 들어가지 않겠다는 주민들의 입장은 확고하다. 2년 가까이 정주권 확보를 위해 투쟁을 벌였기 때문에 이제 와서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이다. 집도 잃은 마당에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이다. ′죽기 아니면 살기′식의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한 주민은 ″누군가 죽기라도 한다면 여론이 주민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돌아올 것이 아니냐″고 서슴없이 말한다. 주민들에게는 그 사람이 누가 될 것인지가 관건이다. 현재 주민 2명은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 돼 언제 불상사가 일어날 지 모르는 상황이다.

주민들은 유일한 시위 수단인 노숙을 중단하게 되면 그 동안의 투쟁은 물거품이 되고 자신들이 그 동안 요구했던 내용들이 무산될 것을 걱정하고 있다. 때문에 지난 달 중구청에서 용두1지구 내에 천막 2개소를 설치했으나 제대로된 시설이 아니라는 이유로 단체 입주 거부 의사를 밝혔고, 최근 같은 지역에 컨테이너 박스 3개를 설치했지만 모든 주민들이 입주할 수 없다며 이 역시 입주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이다.

주민-주공 여전히 평행선 달려

주민들의 요구조건은 변함이 없다. 자신들이 과거에 살았던 평수만큼의 공동주택을 달라는 것이다. 이외에 부수적으로 구속된 주민의 석방, 생업손실금 및 가구피해 손실금 등이 주요 골자이다.

자신들은 원치 않는 사업으로 집을 잃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규모의 주거조건을 마련해 달라는 얘기다. 자신들은 주거환경개선사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별 불편 없이 잘아 왔고 사업도 동의하지도 않았다는 주장이다.

주민들은 최근 난관에 처했다. 대전시가 앞으로 주거환경개선사업 추진 시 주민들의 100% 동의를 얻어내라는 지시를 내렸고 현재 주거환경개선사업 추진 및 계획단계 지역의 주민들은 이번의 조치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시가 내린 조치는 그간 용두동 주민들의 노숙 시위와 무관하지 않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언론에서도 대전시의 이번 조치로 인해 도시 침체 및 슬럼화가 가속화 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을 내 놓고 있다.

계절적 요인 및 최근 대전시의 조치로 인한 여론 악화 등으로 인해 상황은 점점 주민들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여론 갈수록 주민들에게 불리

사업주체인 대한주택공사대전충남지사는 그 동안 주민들에게 제시한 방안 외에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주공은 가장 핵심이 되는 주택공급과 관련 건설 원가에 제공하겠다는 제안과 정부로부터 공유지 무상양여로 얻게 될 8억원 규모의 이익을 용두1지구에 입주하는 용두동 전 주민들에게 배분하겠다는 약속, 사업 후 발생하는 이익을 주민들의 복지를 위해 쓰겠다는 제안도 내놓았지만 같은 규모의 주택 제공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현재 남아 있는 42세대 주민들의 요구조건을 들어주게 되면 보상에 합의하고 용두동을 떠난 770여 세대 주민들 역시 같은 요구를 할 것이 뻔하다. 형평성의 문제가 야기될 것이고 지금보다 더 큰 논란이 될 것이다.

나머지 부분에 있어서는 주민들이 노숙 시위를 접고 가수용 시설에 입주할 경우 문제 해결의 여러 가능성을 열어 놓을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용두동 사태는 현실에 맞지 않는 법에 따른 사업의 시행으로 선의의 피해자가 생겼다는 점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즉 현실에는 문제가 있을지 몰라도 법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 사업주체 역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주민들의 요구를 최대한 들어주겠고 공언하고 있다.

가수용 시설 입주 후 해결 모색을

주민들은 법과 현실의 괴리라는 원론적인 문제를 떠나 가장 효율적이고 해결 가능한 방안들로 접근해야 한다. 주민들은 그 동안의 투쟁을 통해 주공 및 중구청 등 사업주체가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도록 유도했다.
시위 수단으로서 노숙은 대전뿐만 아니라 전국의 이목을 집중시킬 정도로 큰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자신들의 건강과 몸을 걱정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가수용 시설에 입주 한 뒤 주택공급 문제나 8억원 및 사업이익금 배분 등으로 얻는 이익 등을 꼼꼼히 따져가며 현실적인 문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주민들이 히든카드로 내세우고 있는 ′죽음′이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킬지는 미지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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