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방문인가

나지막한 산자락 오목한 곳에 자리잡아 여성의 자궁 속에 있는 듯 아늑해 보이는 ′나눔의 집′. 8명의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는 일부러 찾지 않으면 그곳에 있는 지 알 수 없을 만큼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서도 외진 곳에 떨어져 있었다.

먼저 세상을 등진 할머니들의 추모비와 동상, 작은 꽃밭이 조성된 역사관 옆 작은 공간은 10여명의 사람들이 들어서면 비좁아 발걸음이 조심스러워 질 정도이다.

외딴 장소에 위치하고 있는 8명 할머니들의 조용한 쉼터인 이곳도 3·1절과 광복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평소에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주로 찾지만 기념일이 다가오면 국내 방문객들로 나눔의 집이 가득 찬다. 소위 ′이벤트′를 위해 온 사람들이다.

기자가 한남대학교 행사 동행 취재 차 찾은 지난 13일도 광복절을 이틀 앞두고 자원봉사를 나선 미스코리아들과 이를 따라나선 방송사 취재팀, 취재거리를 찾아 온 신문사 기자들이 할머니들을 겹겹이 에워싸고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전날도 한 무리의 방송사 취재진들이 늦은 시간까지 할머니들을 ′취재′하고 갔다.

서로의 개인 생활 존중을 위해 공동 생활 가정에서 발걸음조차 조심스럽게 떼는 할머니들의 작은 규칙은 온데 간데 없어지고 외부인의 소란 속에서 할머니들의 의사는 철저히 무시됐다.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은 할머니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했다.

위안소에서의 치욕스런 경험은 단체 방문객들에게 ′증언′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얻어 할머니들의 아픈 기억을 들추게 만들었다. 방문객들의 집요한 질문은 기어코 할머니들의 눈물을 보이고야 말았다. 할머니들에게는 눈물 없이는 당시를 회상할 수 없을 만큼 아픈 기억인 것이다.

시종일관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증언′을 통해 할머니들의 눈물을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만족한다는 표정을 보였다. 카메라의 플래시가 정신없이 터졌다. 과거의 힘든 기억을 지고 살아가는 할머니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이벤트이다.

할머니들은 ″어디론가 피하고 싶다″는 반응이었다. 슬며시 자리를 떠 빗속을 선택한 할머니도 눈에 띄었다.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이벤트가 계속되는 며칠간 방안에서 두문불출하는 것은 할머니들의 유일한 자기방어 수단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들의 증언을 통해서만 과거 위안부의 실태를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 비디오 자료들과 기록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나눔의 집 위안부 역사관만 하더라도 2,000여건의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우리가 좀더 생생한 체험을 위해 찾는 곳이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씻지 못할 아픈 과거를 곱씹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할머니들의 감정이 담긴 증언과 눈물이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이 보다 더 큰 희생을 해야만 한다. 60여 년 전의 잊고 싶은 기억을 들춰내고 또 다시 이를 잊기 위해 몇 달간의 가슴앓이를 해야 할 것이다.

진정 누구를 위한 방문이며 취재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매주 이곳을 찾는다는 한 자원봉사자의 말이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기념일마다 이곳을 찾아 하는 이벤트 형식으로 벌이는 할머니들의 증언 듣기 체험이 누구를 위한 행동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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