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 칼럼-변평섭 (중도일보 주필·전무이사)



올 겨울 벌써 몇 차례 눈이 내렸다. 많은 눈은 아니지만 그래도 밟으면 발자국이 남을 정도로 땅을 덮는다.
산에 오르면 눈은 더 많이 쌓여 무척 아름답고 정갈스럽다. 한해를 보내는 연말 - 이처럼 눈이 자주 내리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먼지에 쌓인 마음을 하얗게 씻으라는 뜻일까? 뜨거웠던 가슴을 차갑게 식히면서 돌아온 길을 바라보라는 것일까?

우리나라에는 내가 40년 가까이 걸어온 언론을 포함해 1만2천여종의 직업이 있고 1년에 약 100개의 직업이 새로 생겨난다고 한다. 미국은 1만7천개, 일본은 2만개가 넘는 직업이 있다. 직업이 많아지는 것은 그만큼 사회가 빠르게 다양화되고 전문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양화, 전문화, 국제화시대에 살아 남는 길은 철저한 프로가 되는 것이 아닐까? 프로가 되는 것은 아마추어가 가질 수 없는 프로정신일 것이다.

외눈 골잡이의 프로정신 ′감동′

최근 한 잡지에서 가수 나훈아의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 한마디로 그의 장수비결은 조그만 공연무대라도 자신이 노래를 하게 되면 다른 가수와는 달리 악단과 함께 여러번 연습을 한다는 것이다. 30여년 노래를 했는데 무슨 연습이냐고 물으니까 "나는 프로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가수 나훈아뿐 아니다.
지난 달 대전 시티즌 프로축구팀이 창단후 처음으로 FA우승컵을 차지했다.
시티즌을 우승으로 이끈 선수의 이야기는 한 해를 보내는 나의 마음에 깊이 와 닿는다. 김은중(22)선수. 그는 지난달 25일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FA컵 결승에서 후반 8분 공오균의 대각선 스루패스를 받아 페널티 에어리어 오른쪽에서 오른발 대각선 슛으로 천금같은 결승골을 터뜨린 것이다. 그런데 나를 더욱 감동시킨 것은 김은중 선수가 한쪽 눈을 잃은 '외눈 골잡이'라는 것이다.
두 눈을 가지고도 초점이 잘 맞지 않아 공을 정확히 차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한쪽 눈으로야 얼마나 힘이 들겠는가. 그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뼈를 깎는 훈련을 했고 그래서 동물적 골 감각을 익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눈 하나가 실명이라면 축구를 못하게 할까봐 10년 가까이 자신의 약점을 숨겼다니 놀라운 일이다. 결국 그는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전개해 프로의 정신을 철저히 발휘한 사람이다.

고통 사랑하며 파수꾼으로 살 것

나는 과연 김은중 선수 같은 프로정신을 2001년 발휘했는가? 내가 무슨 최고인양 자만에 빠져 훈련에 소홀하지는 않았는가? 몇 권이나 책을 읽고, 생각하고, 고민했던가? 내가 쓴 글 가운데 몇 편이나 사심없는 정론직필(正論直筆)로 나라와 사회에 기여했으며 진실과 정의를 위해 노력했는가? 오히려 나의 부족한 프로정신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은 없는가? 나의 편견과 이기심이 내 이웃에게 고통을 주지는 않았는가?
아무래도 나는 한쪽 눈으로 공을 차며 온 몸을 던졌던 김은중 선수의 프로 정신 앞에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새벽에도 눈 덮인 도솔산을 오르며 내가 걸어온 길이 하느님께 감사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아직도 어둠 속에 가로등만 별빛처럼 반짝이는 대전시내를 내려다보며 더욱 열심히 뛰는 언론인의 길, 그 철저한 프로정신을 다짐해 본다.
어느 해보다 지방 언론이 힘들었던 2001년, 정말 정신없이 살아온 1년이었다. 앞으로도 결코 순탄한 실크로드는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나는 그 고통을 사랑하며 프로답게 살아갈 각오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불을 끄지 못해도 '불이야!'하고 외침으로써 모든 사람을 깨우는 파수꾼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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