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모럴 헤저드’를 ‘도덕적 해이’라고 번역했는가?
누가 ‘모럴 헤저드’를 ‘도덕적 해이’라고 번역했는가?
  • 승인 2005.09.28 11:31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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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수의 파워칼럼]모럴 헤저드
경제학자나 사회학자들이 즐겨 쓰는 용어 가운데 ‘모럴 헤저드(moral hazard)’라는 것이 있다. 모럴 헤저드란,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의 정보부족으로 정확하게 파악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하여 상대방의 입장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국민들의 민생안정과 복리증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국회의원이 자신에 대한 국민의 정보부족을 악용하여 공익(公益)보다는 사익(私益)을 최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비도덕적인 행위가 모럴 헤저드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한국에서 모럴 헤저드가 ‘도덕적 해이(道德的 解弛)’로 잘못 번역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요 일간지의 논객(論客)들로부터, 사회과목을 가르치는 교사, 대학교수, 일반인, 학생들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국민들이 ‘모럴 헤저드’ 대신에 ‘도덕적 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국내에서 최초로 모럴 헤저드를 도덕적 해이로 번역하여 유포시킨 사람은 S대학교 경제학과의 L교수라고 생각한다. 1989년에 발간된 그분의 ≪미시경제학≫ 책에서 도덕적 해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고, 1990년도에 그와 연관된 문제가 행정고등고시에 출제되면서 고시준비생을 비롯한 세인(世人)들에게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L교수는 아마도 ≪노자≫를 한번도 안 읽어본 것 같다.

모럴 헤저드는 도덕적 위험

필자는 모럴 헤저드가 도덕적 해이로 번역하어 사용되는 현실에 대해 오래전부터 이의를 제기해 온 사람이다. 영어회화에는 젬병이지만, 영어독해와 영문법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일가견을 갖고 있는 ≪정통종합영어≫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모럴 헤저드 = 도덕적 해이’라는 등식을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모럴 헤저드의 정확한 번역은 도덕적 해이가 아니라 ‘도덕적 위험’이다. 왜 미국인들은 모럴(moral)을 해이(relaxation)해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위험(hazard)한 것으로 간주했을까? 만약 그들도 우리처럼 도덕을 해이(또는 느슨)하거나 타이트하게 쪼일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겼다면, 그들은 모럴에다 위험(hazard)이라는 단어를 덧붙이지 않고 ‘moral relaxation(도덕적 해이)’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정보경제학의 주인(principal)과 대리인(agent) 모형에서,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는 대리인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설명하는 도구로서 ‘moral relaxation’이 아닌 ‘moral hazard’를 선택했다. 그것은 미국인들이 ‘도덕’을 해이해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위험한 대상으로 간주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노자(일명, 도덕경)≫의 저자인 노담(老聃)은 자신의 책에서 만물의 근원에 존재하는 보편적 원리를 ‘도(道)’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보편적 원리란, ‘자식은 부모님께 정성을 다해 효도해야 한다.’와 같이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도리쯤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노담 얘기의 정수(精髓)는 도(道)보다는 오히려 ‘덕(德)’에 관한 기막힌 해석에 있다. 그는 “도를 체득함으로써 도가 지니는 뛰어난 작용, 가령 겸손, 유연, 양심, 질박, 무심, 무욕 등을 몸에 익히고 그것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곧 덕이다.”라고 설명했다.

도덕에 관한 그의 설명은, 우리들로 하여금 ‘도덕이라는 잣대야말로 매우 위험한 논리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한다. 그것은 소시민들이 노담이 말한 도덕의 숭고한 가치를 일상에서 실천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헌법 앞에서 국가와 국민을 향한 도덕적 책임을 맹세했던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과 고객의 예금원금과 이자보장의 도덕적 책임을 맹세했던 은행원들이 IMF 금융위기 때 보여준 모럴 헤저드가 그것을 대변해 주고 있지 않은가! 도덕에 관한 한, 필자도 자신이 없다. 인간 자체가 언제 어디서든지 도덕적인 실수를 저지를 개연성이 매우 큰 존재이기 때문이다. 리더라고 해서 우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도덕 강조하는 사회는 일류사회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발전을 위해 도덕을 유난히 강조하는 사회는 결코 일류사회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순자의 성악설에 기초한 시스템적 사고(思考)로, 인간의 마음속에 잠재해 있는 모럴 헤저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치밀하게 설계해 나가는 사회가 일류사회라고 생각한다.

경제학이 제시하는 모럴 헤저드의 해결방안 역시, 도덕적인 측면에서의 재무장이 아니라 인간들이 본질적으로 비도덕적인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하는 시스템의 확립이다. 또 시스템이라고 해서, 그것이 엄청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고객들이 은행에서 볼일을 보려면 객장 안의 여직원 앞에서 일렬로 줄을 선 채,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또한 은행에는 TV-드라마 ≪허준≫에 등장했던 탤런트 임현식씨처럼 “줄을 서시오!”라고 외치면서 비도덕적인 새치기를 감시하는 청원경찰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은행에 가보면, 도덕적인 줄서기를 강요하는 청원경찰도 없고 여직원들 앞에서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의 행렬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모든 고객들이 소파에 앉아서 전광판의 숫자를 주시하거나 친구끼리 담소를 나누거나 잡지를 보면서 편안하게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데도 은행 객장의 질서만큼은 조용한 가운데 확실하게 유지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것은 은행 객장에 ‘순번 번호표 제도’라는 일종의 질서유지시스템이 도입되어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시스템이 지닌 장점이 매우 큰데도 불구하고, 사이비 리더들은 시스템 문제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도덕적 잣대에 기초한 조직개혁을 부르짖기 때문에 조직구성원들은 항상 개혁 피로증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데다 개혁의 성과마저 지지부진한 것이다.

일례로, 구청직원의 세금착복사건이 발생하면 구청장은 TV기자나 신문기자들을 불러놓고 전 직원이 모여 “다시는 세금비리를 저지르지 않겠습니다!”라는 대(對)국민 홍보용 양심선언대회부터 개최한다. 그런데 구청직원이 세금을 착복할 수 있는 것은, 세금고지서의 발부로부터 납부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무언가 허술한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납세 시스템 상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도 시스템은 고치지 않은 채, 구청직원들의 도덕심 함양만 부르짖으니까 세금착복사건이 근절되지 않고 되풀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필자는 이 모든 원인이 한국인들의 뇌리 속에 뿌리박혀 있는 ‘모럴 헤저드 = 도덕적 해이’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도덕은 근본적으로 위험한 것이다.’는 사고(思考)에 입각해서 각종 사회적 문제를 시스템으로 풀려는 진지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도해야 한다.

시스템에는 학연, 지연, 혈연, 종교연 같은 것이 약발을 받을 수도 없고, ‘끼리끼리의 횡포’도 존재하지 않는다.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낸 히딩크 감독 또한 선수들의 도덕을 강조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선수들이 자발적으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되겠금 하는데 탁월했던 시스템 감독이었다. 필자가 모럴 헤저드를 도덕적 위험으로 번역해야만 한다고 역설하는 이유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끝으로 노담이 지적한 ‘도덕’의 동양적 가치와 그 한계점에 해박해야 할 우리들이 그것에 대해 눈감고 있을 때, 팍스-아메리카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인들이 ≪노자≫의 모럴(moral)에 내재된 문제점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그 대안으로 시스템을 창안해서 운용하는 것이 그저 놀랍고 두려울 뿐이다.

혹시 우리나라에는 앨빈 토플러나 래스터 서로우, 톰 피터스와 같은 뛰어난 미래학자들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닌지? 시스템에 문외한인 사이비 리더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한국의 미래와 우리 아이들의 장래가 여간 걱정스러운 게 아니다.

김덕수 : 충북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석사, 박사과정 졸업(경제학박사), KAIST 경제분석연구실 선임연구원, 일본 과학기술정책연구소 객원연구원, 공주대학교 기획연구부처장, KBS 라디오 '상쾌한 아침' 프로에서 '알기쉬운 생활경제 강의', 현재 공주대학교 사범대학 사회교육과 교수, 자유민주연합 혁신위원장, 저서: 김덕수 교수의 통쾌한 경제학(한국경제신문), 김덕수 교수의 경제 EQ 높이기(한국경제신문), 맨주먹의 CEO 이순신에게 배워라!(밀리언 하우스) 외 다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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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웅 2019-07-18 16:37:38
플라톤부터 존롤스, 로버트 달, 존 센델 등이 쓰는 moral, morality라는 말을 도덕이라는 말로 번역하는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말은 철학을 하기에 아직도 부족합니다. moral, morality는 우리가 착하게 살자는 뜻으로 쓰는 도덕이 아니라, 어떤 개인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나 의식을 의미합니다. moral hazard는 어떤 개인이 자기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자기 행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태도를 갖추지 않으므로서 발생하는 위험을 말하는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것을 도덕적해이라고 번역하니 원래의 context는 안드로메다로 가버린것이고, 마치 어떤 부정이나 범죄를 도덕적해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jei 2019-07-04 18:53:33
좋은 생각이네요.

최호철 2019-06-09 09:06:52
정말 훌륭한 글입니다.
그간 벌어진 대한민국 엘리트들의 모럴헤저드를 완벽하게 간파하고 경고 예언한 문장입니다.
설령 미국인들이 어떻게 쓰고 있던, 이제 우리사회에서 그것이 사용되기에
사용자인 우리가 참되게 사용할 방향과 의미를 짚어보는 것이 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각 영역의 전문가들이 그들만의 용어와 질서로
성역을 구축해 무형의 계급성을 공고히 유지하면서
정당하지 않는 이득을 취하고 있는 행태는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죄를 똑바로 보지 못하기에
처벌 역시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눈뜬 장님이 된 사회.

다중이 선명한 눈을 뜨기 위해서는
언어의 올바른 사용과 공유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
그것이 양비론의 함정에 빠지지않고
우리 사회의 적들을 분명히 인식하게 한다는 점을
일깨우는 칼럼입니다.

임유진 2019-06-08 01:28:39
도덕적 위험으로 번역한다고 할 지라도 "도덕을 근본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위험한 대상으로 간주했음을 시사한다."라고까지는 동의하긴 어렵네요. 그랬다면 아마 '위험한 도덕'이라고 표현했을 겁니다. 미국 학자들이 어떻게 사용했는지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ㅠㅠ

임유진 2019-06-08 01:27:18
도덕적 위험으로 번역한다고 할 지라도 "도덕을 근본적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위험한 대상으로 간주했음을 시사한다."라고까지는 동의하긴 어렵네요. 그랬다면 아마 '위험한 도덕'이라고 표현했을 겁니다. 미국 학자들이 어떻게 사용했는지 한번도 본 적이 없어서..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