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마마, 밤이 야심 하였사옵나이다. 침전에 드심이 마땅할 줄 아뢰옵나이다.”삼경이 지난 시각에 내관 조고가 문밖에서 여쭈었다.“아직은 아니 되느니라. 결재해야할 서류가 쌓여있으니 이를 마저 끝내고 침전에 들겠노라.” 진왕은 그날 결재해야 할 서류를 저울 돌로 달아 놓고 그것이 끝나기 전에 편전에서 나오는 일이 없었다. 그가 하루에 처리한 결재 서류가 1석에 달했다. 요즈음 말로 144㎏에 달하는 서류를 하루에 처리했던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종이가 없어 대나무편에 글을 쓴 목간을 사용했지만 그 량이 적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로지 한사람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초란이었다. 그러다 꿈에도 그리는 대왕을 알현했다. 이제야 꿈을 이루었는데. 아쉬운 마음이 기분을 가라 앉혔다. 더욱이 진왕의 사랑을 몸으로 받아보기는 지난밤이 처음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다음부터 만남이 없을 거라니 슬프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진왕과 몸을 뒤섞지 않았을 때는 사내가 왜 필요한지 몰랐다. 많은 궁녀들이 사내 맛이 어떻다느니 할 때마다 그것을 괜한 소리로만 들었다. 하지만 이제 한밤을 지새우고 그 맛을 안 이상 혼자 지루한 밤을 보낸다는 것은 죽음보다 긴 고통이었다. 그렇다고 안
“어쩔 도리가 없는 일.”진왕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혼잣말을 했다.온몸이 땀으로 얼룩졌다. 이마에서 구슬땀이 뚝뚝 떨어져 그녀의 수줍은 가슴살 위를 굴렀다. 그녀도 매한가지였다. 막 목욕을 끝낸 아낙처럼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침상이 눅눅했다. 침전에 군불을 지핀 듯 훅훅 거렸다.진왕은 비지땀으로 얼룩진 초란을 가로타고 앉아 포효를 질렀다.“대제국을 이룩할 것이로다.”그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검을 높이 쳐들어 초란의 몸속에 깊숙이 찔러 넣었다. 그것은 소용돌이였고 휘몰이였으며 바람이었다.거친 바람. 굴욕으로 얼룩졌던 지난날
진왕의 굵은 손이 초란의 가슴을 지나 아래로 아래로 향할 때 그녀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사지가 뒤틀리며 하늘이 노랗게 변해가고 있었다.숨이 거칠 대로 거칠어진 진왕은 그녀의 치마끈을 우악스럽게 찢어버리고 이제까지 그 누구도 근접치 않은 미지의 땅을 향해 굵은 손마디를 휘둘렀다. 애끓는 소리가 침실에서 연신 새어나왔다.특히 어머니가 태후 자리에 오른 된 뒤 여불위를 끌어들이고 그것도 모자라 노애라는 어린 사내를 궁으로 끌어들여 음기를 달랬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그놈과의 사이에 둘씩이나 자식을 두고 그것
거친 호흡 속에 진한 취기가 묻어났다. 초란은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다. 진왕의 말 한마디면 자신의 목숨이 사라져 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떨어뜨린 채 앉아있었다.순간 진왕의 투박한 손이 그녀의 머리채를 휘잡으며 고개를 젖혔고 이어 거부할 수 없는 힘이 그녀의 입술을 뒤덮었다. 수염의 간지러움과 입술의 부드러움이 그녀를 목마르게 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입에는 맑은 샘물이 하나 가득 고여 들었다. 진왕은 그녀의 얇은 입술을 물고 단숨에 목마름을 풀어나갔다. 잘근잘근 깨물기도 하고 문드러지도록 짓이기기도 했다.달
“또 다른 한잔은 이 제국의 완성을 위해 마셔라.”진왕은 연거푸 세잔의 술잔을 따라주었다.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왕이 스스로 삼배를 내리는 경우는 이제껏 없었다.위위는 진왕의 세심한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진왕 만 만 세를 연호했다. 아울러 충성을 다짐하고 침전을 물러났다. 진왕은 또다시 초란과 마주앉게 되었다. 진왕이 취기를 풍기며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이 밤 따라 너의 미색이 유난히 빛나는구나.” 초란은 볼을 붉히며 진왕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이 밤은 너에게 미치고 싶구나. 네가 과인을 미치도록 만들어 보아라.
술을 따르는 그녀의 손이 잔잔하게 떨리고 있었다.“오늘은 천둥 번개가 치지만 내일은 날이 맑을 것이로다.”진왕은 혼잣말처럼 취설을 내뱉었다.“지난세월 동안 과인은 오늘을 위해 숱한 밤을 와신상담했노라. 그 아픔을 누가 알겠느냐? 암 아무도 모르지.”“대왕마마, 미천한 계집이 대왕마마의 깊은 심중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나이까.” “그럴 테지. 아무도 모를 것이로다. 오직 과인만이 그 아픔을 알고 있도다.”진왕은 다시 연거푸 술잔을 들이켰다.밤이 깊어 벌써 삼경이 지나고 있었지만 진왕의 취기는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흑용포에 술잔
진왕은 이들의 청을 빌미로 여불위의 목숨만은 살려두기로 했던 것이다. 노애 사건으로 궁내부가 아수라장이 되는 동안 진왕은 침전을 지키고 있었다.혼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지난날들의 굴욕을 그제야 씻고 있었다. 한편 통쾌했고 다른 한편 마음이 우울했다.죄인으로 거명되어 죽어간 이들 가운데는 자신이 아끼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그들 중 일부는 살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상국 여불위와 태후를 내치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진왕은 그 점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술잔에 술이 넘치도록 따른 다음 길게 들이켰다. 술을 마셔도
그들은 하나같이 억울하다며 살려줄 것을 애원했다.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빌며 질질 끌려가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일부 중신들은 꼿꼿하게 걸어가며 진왕의 정책을 고래고래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예외 없이 중문 밖에서 몸이 반으로 찢어지는 거열형에 처해지거나 철퇴를 맞았다.거개의 중신들은 여불위의 잔당으로 몰려 목이 배이거나 내몰렸다. 진왕은 그동안 눈 밖에 났던 이들을 일거에 청소하는 계기로 삼았다. 노애가 그것을 도와준 것이다. 또 궁녀 가운데도 여불위가 들여보낸 여인들이 많았으므로 이들 역시 단호하게 내쳤다. 물론
며칠 동안 영문도 모른 채 궁 출입이 금지된 뒤 갑작스레 달려 들어온 중신들은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는 호위 병사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서로 눈치만 살피며 숨을 죽였다. 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웅성거렸다. 숨 막히는 불안감만 조정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진왕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조당에 들어와 용상에 앉자 그를 경호했던 위위가 두루마리를 가지고 진왕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진왕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위위는 진왕의 뜻을 대신하여 노애 사건의 전모를 조목조목 읽어 내려갔다.“그동안 장신후 노애
여불위가 노애를 태후에게 소개했다는 사실도 실토했다.특히 노애가 진왕과 태후의 옥새를 거짓으로 만들어 수도의 군사는 물론 근위병, 융적족 수령 그리고 자신의 가신들로 하여금 진왕이 기년궁에 머물고 있을 때 그곳을 공격하도록 했다는 사실조차 털어놓았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분명한 역모였다. 더욱이 이런 소문이 궁내에 자자하게 퍼져있었음에도 그제야 알게 된 진왕은 신하들에 대한 배신감에 몸서리쳤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진왕은 격노한 목소리로 겨우 숨을 내쉬고 있던 노애에게 물었다.“반란을 일으켜 과인이 머물고 있던 기년궁을
건장한 청년의 몸에서만 나는 향긋한 냄새가 군침을 감돌게 했다.사내의 온몸을 구석구석 만져본 태후는 그제야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더욱 가까이 다가올 것을 일렀다. 천성적으로 음기를 즐기던 태후인 터라 젊은 사내를 가까이 앉혀두고 있자니 몸이 스멀거렸다.“날씨가 구진하여 온몸이 편치 않구나. 좀 주물러다오.”태후는 알몸이 내비치는 비단옷을 걸치고 사내 앞에 누워 눈을 지그시 감았다. 노애는 정성을 다해 태후의 온몸을 구석구석 주물렀다. 거친 사내의 손이 예민한 부분을 스쳐 지날 때마다 태후는 이를 앙다물고 자지러지는 소리를 속으로 삭
무거운 걸음으로 태후궁을 나선 여불위는 그길로 사가를 향했다. 나름 생각이 있어서였다. 사가에 당도한 그는 아랫사람을 시켜 노애를 불러들였다. 그는 일찌감치 눈여겨 둔 사내였다. 자신의 문전에서 천대받고 자란 아이였다. 그럼에도 어릴 때부터 미색이 수려한 미소년이었다. 직분과 달리 귀티가 나는 뽀얀 얼굴에 윤기가 흐르는 입술은 가솔들의 군침을 돌게 했다. 때문에 그는 자라면서 남몰래 손을 많이 탔다.때로는 기방에서 때로는 여비들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심지어 내당의 마님들조차 그를 예사롭게 보지 않았다. 심심찮게 불러 그를 놀이게
선왕 자초가 태후 조희를 처음 만난 것은 여불위의 집에서였다. 조나라 수도 한단에 자초가 볼모로 잡혀있었고 여불위가 화양부인에게 후계자로 삼아줄 것을 당부하기 직전이었다.여불위는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자초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융숭하게 대접 했다. 여불위는 한 참 술자리가 무르익을 즈음에 자신의 애첩 조희를 불러 인사를 시켰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자초는 조희를 보는 순간 한눈에 반해 여불위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곁눈질로 조희를 보느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조희의 백옥 같은 얼굴과 사내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짙은 눈
다음날은 붉게 달군 인두가 대령됐다.“사실을 대왕마마께 고하렷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니라.”경호대장인 위위가 친국을 돕고 있었다.뼈가 나올 만큼 인두질은 계속됐다. 노애의 고통소리가 궁 안이 떠나갈 듯 크게 퍼져갔다.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국문은 멈추지 않았다.심지어 예리한 칼로 살을 도려내는 등 갖은 고문이 이루어졌다.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는 모든 고문방법이 동원되었다. 하지만 진왕의 노기는 풀리지 않았다. 어머니 태후에 대한 분노가 고문 속에 묻어나고 있었다.인간적으로 태후의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하
진왕은 장성처럼 우두커니 서서 노기를 곱씹었다.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뒤늦게 자신의 뒤에 서있는 왕을 발견한 태후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허겁지겁 침실보로 몸을 가렸다. 얼굴을 묻었다. 한 마리 까투리였다. 알몸의 엉덩이를 쳐들고 얼굴만을 겨우 숨기고 있었다.“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인고.” 진왕은 벽력같은 고함을 지르며 선혈로 물든 장검을 높이 쳐들어 침상 난간을 내리쳤다. 그렇다고 어머니를 죽일 수는 없었다.“저놈을 당장 밖으로 끌어내렸다.”진왕의 노기에 찬 목소리가 태후궁을 뒤흔들었다.그러자 위위는 즉시 침실에서 발가벗은 사내를 끌
태후 궁에 한 무리의 행렬이 도착하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병사가 그것이 진왕의 행렬이라고는 상상치도 못한 채 길을 가로막았다. “누구 간데 감히 태후 궁에…….”하지만 노기에 찬 진왕은 병사의 말을 끝까지 들어줄 여유가 없었다.그는 말에서 내려서기가 무섭게 병사의 목을 단칼에 날려버렸다. 그러자 수급이 날아가 문간에 뒹굴었다. 붉은 피가 솟구쳤다. 곧이어 다른 병사가 그가 진왕이란 사실을 알아채고 즉시 땅바닥에 엎드려 사죄를 청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내려진 것은 큰 칼날뿐이었다.피비린내가 태후 궁으로 번져갔다. 진왕의 칼에서는 연신
그러자 진왕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눈을 부릅떴다. 감돌던 취기가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머리끝으로 날카로운 비수가 스친 기분이었다. “지금 한 말이 사실이렷다.”다급하게 되물었다.“누구의 안전이라고 감히 거짓을 고하겠나이까?”조고는 당황한 모습으로 말을 이었다. 연신 주변을 둘러보았다. 장중한 분위기가 대전을 엄습했다.진왕은 잠시 머뭇거렸다. 자리에서 몸을 흔들며 오갔다. 무슨 깊은 생각이 스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큰소리로 위위를 불렀다.“밖에 위위가 있느냐. 즉시 대령 하렸다.”대전 앞을 지키고 있던 위위를 불러들였다.
아버지 장앙왕이 왕위에 오른 것도 여불위의 도움이었다. 군신들이 진왕 자신의 왕위 계승에 문제를 제기할 때 그것을 막아주고 옹립시킨 사람도 여불위였다. 또 숱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것을 가로 막으며 모든 것을 해결해준 사람도 그였다. 그로 말미암아 진왕이란 자신의 위치가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때문에 그를 숙청하는 일은 괴로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모든 것을 맡겨놓고 기다리기만 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진나라 사직에 고한 왕으로서 이대로 산다면 죽어 선왕들을 뵐 면목이 없었다. 탄식이 절로 나왔다
분노의 한해가 지났다. 진왕 영정이 21세가 되던 해였다. 즉위한지 9년의 세월이 지났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실권을 쥐고 정국을 농단하고 있는 중부 여불위와 어머니 태후를 당장 내치고 싶었지만 이미 모든 권한을 그들이 쥐고 있었으므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리어 그들이 어떤 변을 일으킨다면 자신의 입지가 위태로울 지경이었다. 진왕은 매일 술을 마시며 설욕의 나날을 기다렸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귀를 세우고 그들을 내몰 빌미를 찾고 있었다.한번은 내관 조고를 불러 물었다.“어찌하면 조정 중신들의 속뜻을 알아볼 수 있겠느냐?”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