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장 기자님을 감금한 것도 그런 이유랍니다. 그들의 말로는 사살된 놈이 메스암페타민 2킬로그램을 그날 오후 블라디미르 호텔에서 미화 15만 달러에 밀매한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덮쳤다는 겁니다. 타이밍이 맞지 않아 마약 밀매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경찰이 덮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거죠. 물론 메스암페타민은 찾아 내지 못했지만.”“......”“경찰은 당시 호텔 내에 있던 누군가가 필로폰을 가지고 들어왔다고 본 거죠. 그런데 그놈의 수첩에서 장 기자님의 이름과 방 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발견하고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
“대충은 아시겠지만 소련체제 붕괴 이후 러시아로 넘어오면서 이곳은 마피아의 세상이 됐어요. 대부분 밑바닥 상권과 경제권을 마피아들이 쥐고 있으니까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마피아들도 조직에 따라 서로 성격을 달리해요. 자동차 중계상이나 주점 등 비교적 양성경제를 쥐고 있는 마피아가 있는가 하면 마약과 같은 범법 행위를 통해 조직을 확대시키는 마피아도 있어요. 조직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것이 주로 러시아계 마피아며 음성 경제를 쥐고 있는 쪽이 중국계지요.”“.........”“이곳 경찰 당국이 범죄와의 전쟁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는 마
[3] 마피아의 마약밀매 6월12일경찰에 연행 된 뒤 파김치가 된 모습으로 풀려 난 것은 오후 4시 40분이 지나서였다. 나는 낯선 영사관 직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호텔방에 내동댕이쳐졌다. 꼬박 이틀 하고도 2시간이 넘게 숨 막히는 공간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눅눅한 습기와 꿉꿉한 냄새가 가득했던 심문 실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나의 의지나 러시아 경찰의 아량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현지 한국 영사관에서 내 신원을 보증하는 조건으로 풀어준 것이었다. 이곳에서 더 이상 말썽을 피우지 않겠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사
“당신 신분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지만 이 자리에서 약속하겠어. 당신네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고, 당신의 이 무례한 행동을 고발 하겠어.”그러자 이반 곤예프는 더욱 큰소리로 버럭 고함을 질렀다. 얼굴색이 급작스럽게 돌변했다.“이 새끼 도저히 안 되겠구먼. 죽고 싶어 환장 했어, 여기가 어디라고 고함이야. 하스볼라토프 홍이 너를 만나기로 했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있어. 그래도 끝까지 시치미 뗄 생각이야?”“증거라니?”이반 곤예프는 작은 수첩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그 속에서 얇은 메모지를 꺼냈다.“이것이 미스터 홍의
그는 피식 웃었다. 독사눈을 뜬 채 의도적으로 눈가에 잔웃음을 흘렸다. 갑자기 책상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조금 전에 죽은 그 놈과 한 통속이잖아. 다 알고 있는데 무슨 넋두리를 떨고 있는 거야. 제대로 손을 봐주어야 실토를 하겠나?”그는 다시 고함을 버럭 지르며 메모지 뭉치로 책상을 내리쳤다.“너는 내 손 안에 있어. 이렇게 한 방이면 끝이야. 순순히 털어놓는 것이 좋아.”그는 엄지와 검지만을 편 뒤 내 이마에 대고 말했다. 권총 한 발이면 모든 것이 끝장이 난다는 것을 암시했다."무슨 얘깁니까. 그와 한 통속이라니.
“아니 여보셔. 내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는 겁니까?”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그를 응시했다. 그러자 그는 내행동이 가당찮다는 듯 빙긋이 웃었다.“시간이 없어. 가지고 있는 소지품을 책상 위에 모두 내 놓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좋게 말할 때 순순히 말해. 나도 인간적인 것을 좋아하니까.”나는 주머니 속에 있던 소지품을 몽땅 털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여권과 지갑, 이곳에서 사용하려고 가져온 지폐, 비행기 티켓, 담배, 라이터, 전화번호가 메모된 수첩, 가족사진, 손수건, 블라디보스토크 사진이
사내는 아무도 없는 지하 방에 던지듯이 쑤셔 박고는 밖에서 문을 잠갔다. 나는 그 방에 버려진 뒤 한동안 길게 거친 숨을 토해냈다.방에는 낡은 책상이 구석진 곳에 놓였고 그 책상 양 옆에는 결코 앉고 싶지 않은 그런 의자가 하나씩 놓여있었다. 그렇다고 양쪽에 놓인 의자가 같은 종류의 것은 아니었다. 한 쪽에는 낡고 딱딱한 의자가 놓인 반면 다른 쪽에 놓인 것은 등받이가 달린 회전 의자였다. 천장에는 갓 달린 백열전등이 조용히 매달려 있었다.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벽에는 어떠한 장식도 치장되어 있지 않았다. 어떤 장식을 해도 찝찔한
“뭐하는 거야?” 나는 심상찮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려고 애썼다. 그러자 그는 말없이 머리에다 러시아제 떼떼권총을 들이대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싸늘한 총구의 냉정함을 느꼈다.“조용히 해. 시끄럽게 굴어 좋을 것 없어.”“아니 왜 이러는 거냐구. 당신 누구야?”“따라가 보면 알 수 있어. 고분고분 굴어.”그는 사정없이 나를 끌고 레스토랑을 빠져 나갔다. 어이가 없었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닥친 일이라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발버둥 치는 나를 불끈 들어 올린 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순간적인 총격에 눈을 감고 얼굴을 바닥에 쑤셔 박았다. 안경이 허공에 튀어 오른 뒤 힘없이 내동댕이쳐졌다. 머리통에 손가락 굵기의 바람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을 통해 골수가 허공으로 치솟은 탓인지 머리가 빈 깡통같이 비어 있었다. 시퍼런 섬광이 동공을 강하게 찔렀고 이어 급작스럽게 수축된 동공이 신축성을 잃고 멎었다. 앞이 캄캄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코맹맹이 같던 메가폰 소리도, 또 전투화 발자국소리도, 찢어질듯 천정으로 솟구쳤던 괴성도 달팽이관이라는 이름의 블랙홀로 스며든 뒤의 고요함만 있었다. 비릿한 피비린내가 콧속
‘'이 상황을 모면해야 한다. 여기서 죽으면 개죽음이야. 이를 깨물고라도 살아야한다.’ 다시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레스토랑 문 쪽은 그가 지키고 있어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후문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달아날 틈이 있다면 가슴까지 차오르는 카운터를 뛰어넘는 길 뿐이었다. ‘카운터를 뛰어 넘자. 달아나자. 저 미치광이의 총에 죽을 수는 없다. 저자가 언제 총부리를 내게 겨눌지 모른다. 살아야한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는 조심스럽게 오른쪽 무릎이 가슴에 닫도록 끌어당겨 낮은 포
『꽃 나무 꿈 나무』 시조시인이며 아동문학가 김영수 작가(78)가 네 번째 동시집을 냈다. 『꽃 나무 꿈나무』(오늘의 문학). 책 제목처럼 자연과 어린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담겼다.작가는 머리말에서 “하얀 눈이 온 세상을 포근히 덮어 주었다. 내 마음은 하얀 바다가 되어 그 바다 위에 내가 살아온 여든 해의 꿈을 그리고 싶었다”고 적었다.작가는 또 “내일의 나라 기둥이 될 어린이들에게 ‘생각하는 동시’, 쉽게 써서 읽기 좋은 동시를 쓰려고 노력했다”며 “여든 살이 될 때까지 함께한 고향의 그리운 친구 그리고 꽃과 나무, 사람의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