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는 정국으로 인해 잠시 수명을 연장시켰을 뿐 거두어들이심에 문제가 전혀 없사옵나이다. 반면 정국의 대수로 공사는 관중 주변지역을 비옥하게 만들고 있으며 장차 이 공사가 마무리 되면 관중의 수많은 농토마저 비옥하게 됨으로써 이는 우리의 경제발전에 커다란 촉진제가 될 것 이옵니다. 대왕마마. 부디 청하건대 정국으로 하여금 대수로 공사를 마무리 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진왕은 이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맞는 말이었다. 정국이 진나라의 쇠락을 앞당기기 위해 시행한 대수로 공사가 국력을 신장시켜주고 있었으므로 그를 죽
내전을 오가며 목이 마를 때마다 술을 마셨다. “아직도 조정에서 무슨 전갈이 없더냐?”“아직 별다른 전갈이 없사옵나이다. 중신들이 머리를 맞대고 비책을 찾고 있사오니 잠시만 기다려 주시옵소서. 대왕마마.”내관은 좌불안석인 왕을 위해 조용히 진언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늦은 밤이었다. 조정에서 중신들이 내전으로 찾아왔다. “대왕마마. 비책을 마련하였기에 늦은 시각이지만 촌각을 다투는 일이라 내전으로 찾아 왔사옵나이다.”“그래 어찌 하면되겠소?”중신은 한왕의 귀가에 다가가 나직하게 비책을 고했다. 그가 고한 책략은 진나라의
“과인은 열세 살 어린 나이에 등극했소. 그러다 보니 정사는 태후와 승상 여불위가 전담하고 과인은 어깨 너머로 구경이나 하는 처지였소. 게다가 궁실에 불행한 일이 연이어도 힘을 쓸 수가 없었소.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소. 태후는 물러나고 여불위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소. 드디어 과인이 뜻을 펼 때가 된 것이오.”진왕이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러자 이사가 진왕의 인물됨을 새롭게 느끼며 자신의 의중을 털어 놓았다.“대왕마마. 진나라는 힘이 넘치고 나머지 여섯 나라는 점점 쇠약해지고 있사옵니다. 이런 때 부지런히 천하를 도모하지 않는다면
막상 어디서든지 자신을 알아준다면 충성을 다하겠다고는 마음먹었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착잡한 기분이었다.‘나를 알아주지 않는 이들을 위해 일할 수야 없지. 암 그렇고말고. 진왕의 그릇이 그 정도라면 미련 없이 진나라를 떠나야 할 것이야. 그에게도 희망이 없어…….’ 이사는 여산에 있는 객관에서 날이 밝자 길을 떠나기 위해 자리를 걷었다. 일찌감치 조찬을 차려먹고 신발을 동여맸다. 갈 길이 멀었다. 객관을 나서면서도 이사는 혹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구중궁궐 쪽을 바라보았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아무렴. 내 어찌 그것까지야 당부드릴 수 있겠소. 다만 나를 찾으시면 여산 쪽에서 하루 밤을 머물고 다시 길을 떠날 것이라고만 전해주시구려.”이사는 상소를 위사에게 맡기고 발길을 돌려 터덜터덜 동쪽으로 향했다. 진나라에서 더 이상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다면 동쪽에 있는 또 다른 나라로 들어가 뜻을 펼 욕심이었다.한편 위사에게 전달된 상소는 여러 경로를 통해 진왕의 앞에 놓이게 되었다.하지만 진왕은 이사가 올린 상소를 내팽개쳤다. 그가 여불위의 식솔이었기에 그의 상소를 읽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며칠이 지난 다음 뒤늦게 그것을
이로써 이사는 그날로 진나라에서 벼슬길에 올라 장사(長史)라는 직책을 얻었다. 물론 여불위의 심복이 되어 그를 보필했으며 뒷날 중서령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노애사건으로 여불위가 쫓겨나면서 결국 그도 함께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하남까지 따라가 자결한 여불위의 시신을 거두어 북망산에 장사를 지낸 이도 이사였다.이사는 여불위의 장례가 끝난 다음 초나라 고향 상채로 돌아가 토끼사냥이나 하며 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더욱이 여불위의 죽음을 계기로 “진나라에서 벼슬을 하는 이들 가운데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6국에서 온 자들은 모두 이 나라
여불위는 그제야 이사가 쓸 만한 구석이 있는 인물이라고 판단하고 며칠 뒤 진왕 영정에게 천거했다. 진왕 영정이 이사를 굽어보며 물었다.“그대는 초나라 사람이면서 왜 진나라에서 벼슬을 얻으려고 하는가?”“소인배는 기회를 놓치지만 성공을 하려는 자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법이옵나이다. 지금이 진나라에서 벼슬을 얻기가 가장 좋은 때이옵나이다.”“왜 그렇다고 생각하는가?”진왕이 흥미로운 듯이 물었다.“소인배가 기회를 놓치듯 진나라가 지금 기회를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여불위가 크게 놀라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가슴을 졸이며 이사에게 시선
그렇게 수년을 공부한 이사는 어느 날 스승 순자 앞에 나아갔다. 큰절을 올리고 스승 앞에 무릎을 꿇었다.“스승님, 이제 제가 스승님을 하직하고 세상에 나아가 출세를 하고자 하옵니다.”뜻밖의 이야기였다. “나는 세상이 너무 어지럽고 분분하여 물러나려 하는데 어찌 그대는 왜 하필이면 이런 때에 나아가려 하는고?”순자는 조용하게 물었다. 한참을 더 배워도 시원치 않을 판에 벌써 문하를 떠나겠다는 발상이 가당찮았다.“사람은 때를 얻으면 놓치지 말라 했습니다. 지금 만승의 제후국들은 서로 다투는데 각국의 정사를 맡아보는 사람들은 거의 유세객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이사는 그길로 사직서를 던지고 길을 떠났다. 그가 무작정 찾아간 곳은 초나라 난릉의 수령 순경(筍卿) 즉 순자의 문하였다. 이사가 이토록 과감하게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우선 자신이 처한 위치가 곡간의 창고지기라면 도둑질을 해도 그 정도의 규모에서 이득을 챙기게 되지만 국가에 나아가 큰 도둑이 된다면 보다 많은 이득이 생길 것이란 계산에서였다순자는 당시 직급이 고을 수령에 불과했지만 학문에 있어서는 명성이 천하에 자자했다. 때문에 이사는 그의 명성을 빌린다면 관직에 나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계산했다.그래
“그 대는 어떤 방도로 천하를 통일할 수 있겠소.”“신이 어떻게 천하를 도모할 수 있겠나이까. 다만 미력한 힘이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대왕마마께옵서 천하를 도모할 수 있도록 작은 보탬을 드릴 뿐이옵나이다.”“그 방법을 일러 주시오.” 진왕이 다가 앉으며 말했다.“신은 일찍부터 사물을 움직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연구하였나이다. 그래서 사물은 기의 흐름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인간은 재물을 통해 움직인다는 것을 알았나이다. 인간은 본시 재물을 탐하는 속성이 있어 넉넉한 재물을 준다면 어떤 마음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나
왕 앞에 나아가 절을 올리지 않는 것은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며 이는 곧 거역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살아남기 힘든 불충이었다. 그럼에도 돈약이 그러한 서한을 올린 것은 진왕의 그릇됨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진왕은 그 말을 그대로 수용했다.“과인에게 절을 올리지 않아도 좋으니 만나보았으면 하오.”진왕은 이런 내용의 친서를 적어 돈약에게 전하게 했다.뜻밖의 대답은 들은 돈약은 그길로 진왕을 배알하기 위해 조당에 나갔다.진왕이 용상에 앉아 있고 그 아래로 신하들이 줄지어 서서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분위기가 숙연했다. 등치가
그러나 위료의 입장에서는 달랐다.한때 자신을 극진히 대접하고 또 지근에 두고 자신의 뜻을 그대로 수용하여 정책에 활용했던 것과는 달리 만날 기회가 줄고 자신의 계책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어지자 위료는 주섬주섬 자신의 짐을 챙겼다. 그것을 지켜본 객사 관리가 말했다.“객경 나리 어디로 떠나시려고요?”“떠나야지. 이곳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이유를 모르겠구나.” 위료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대왕께서 별다른 하명을 주시지 않으셨는뎁쇼?”관리가 초조한 모습으로 말했다.“대왕은 생활이 검소하고 아랫사람에게 자신을 잘 굽히지만 사람됨이 넉넉지
“대왕마마. 죄인 여불위가 죽은 뒤에 그를 흠모하는 빈객과 문객들이 하루에도 수천씩이나 조의를 표하고 있다 하나이다.”“무어라? 조문객이 하루에 수천에 달해? 그래 그자들이 어떤 자들이라고 하던가?”“문객 가운데는 이 나라 고관대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6국에서 몰려든 문객들이라 하옵나이다. 그들은 죄인을 흠모하는 시를 짓고 밤을 새워 경배하며 슬퍼하고 있다 하옵나이다.”“무어라. 죽은 죄인을 흠모하여 시를 짓고 밤을 새워 경배를 한단 말이냐. 이는 과인을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더냐.”진왕은 격노하며 명을 내렸다.“
진왕은 다시 손을 내려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더듬기 시작했다. 긴 더듬이로 먹이를 찾아 나서는 귀뚜라미처럼 곳곳을 탐색했다.때로 딱딱한 돌기가 만져지는가 싶으면 이내 드넓은 구릉을 지나 눅눅한 풀숲이 만져졌다. 살아있는 조갯살을 만지는 야릇한 감각이 자신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감미로움에 흠뻑 취한 것은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물풀처럼 흐느적거리며 진왕의 거친 팔에 온몸을 내맡겼다. 두 사람은 모두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오감에 자신들을 내맡기고 허물어지고 있었다.진왕은 그동안 견고하게 굳어있던 자신의 관념이
진왕은 스스로 ‘왜 미천한 계집의 눈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까’를 되뇌었지만 그녀의 눈 속에 자신이 몰입되는 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정신이 혼몽해질 지경이었다. 그녀의 모습을 만져보지 않고서는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진왕은 술잔을 내려놓고 그녀의 얇은 볼을 만져보았다. 어린아이의 볼처럼 매끈한 윤기가 가슴을 녹였다.“네 이름이 뭔고?”진왕은 갑자기 아이를 대하듯 부드럽게 물었다.“연화라 하옵나이다.”“함양궁에서 살았더냐?” “그러하옵나이다.”“그런데 왜 오늘에야 과인 앞에 나타났는고?”“대왕마마의 부르심이 없었기에 그러하옵나이다
하지만 진왕은 스스로 따른 술잔을 기울이는 것 외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녀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았다.“소녀 연화라 하옵나이다. 성은을 입어 오늘에야 대왕마마를 모시게 되었사오니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시옵소서.”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진왕은 반응이 없었다. “소녀 다시 아뢰옵나이다. 미천한 몸으로 하해와 같은 성은을 입어 대왕마마를 모시려 했으나 물리치시니 용안을 본 것만으로도 모신 것과 진배가 없사옵나이다. 다시 한 번 성은에 감사하며 만수무강을 비옵나이다.”연화는 스스로 자리를 물리며 뒷걸음을 쳤다
그러다 잠시 뒤 함양궁을 향해 삼배를 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랑채로 사라져버렸다. 비틀거리며 건물 모퉁이를 돌아가는 여불위의 뒷모습이 지는 해를 보는 것 같았다.“데리고 살았다지만 이미 선왕의 아내가 된 태후를 다시 간음했노라. 뿐만 아니라 왕들을 둘이나 독살하였으며 진나라의 왕통을 끊고 내 씨를 임금의 자리에 올렸도다. 내 죄가 이럴 진데 황천인들 용납하겠는가?”그는 혼잣말을 읊조리며 눈물을 떨구었다. 여불위는 그길로 극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여불위가 죽었다는 소식이 진나라 전역에 전해지자 그를 따랐던 많은 문객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왕명을 받기 위해 숨을 죽였다. 사자는 자신이 가지고 온 진왕의 전지를 빼들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죄인 여불위는 들어라. 과인은 그대에게 10만 호의 봉읍을 내렸고 상부로 존칭하였노라. 그대는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고서도 무엇이 부족하여 노애로 하여금 난을 일으키도록 사주 하였는가? 그때 과인은 그대를 죽이려 하였으나 하남으로 내려가 근신하도록 조처했도다. 그러나 그대는 후회하고 근신하기는 고사하고 열국과 연락을 끊지 않으니 이것이 과인에 대한 보답인가? 그대는 일족을 데리고 변방으로 들어가 그곳에
더욱이 그렇게 한다면 자신에게 반기를 들고 일어설 수 있는 무리가 함양궁에 전혀 없다고도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길게 숨을 내쉬며 진왕은 편전을 오갔다. 어떻게든 결론을 내려야 할 때가 온 것만은 사실이었다. 진왕은 내관에게 집필묵을 준비토록 하고 조용히 앉아 왕명을 적어 내려갔다.다음날이 되면 마음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곳에 옥쇄를 찍게 하고 그것을 밀봉하여 날이 밝는 대로 하남 땅에 있는 여불위에게 보내도록 명했다.다음날 날이 밝자 왕명을 전하는 파발마가 하남 땅으로 내달렸다.한편 하남 땅에 내려와 매일같이 빈객
“대왕마마. 지난해 하남 땅으로 내려간 여불위가 잔당들과 어울리고 있다는 전갈이옵나이다.”“뭐라?”진왕은 결재를 하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관 조고를 굽어보았다.“여불위가 무엇을 한다고 하였느냐?”그는 의외로 흥분하였다. 여불위란 말에 평소의 진왕답지 않게 예민하게 반응했다.“하남에서 온 전갈을 보면 여불위의 집에 하루도 빠짐없이 사람들이 들끓고 있으며 그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식객들과 어울리고 있다 하옵나이다. 또 그의 안부를 묻고 돌아가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옵나이다.”진왕의 노기가 다시 차올랐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