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드뇸?6월23일 이른 아침부터 달린 승용차는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나홋카 시내로 접어들었다.나홋카는 항구 도시였지만 도로가 산 중턱을 휘감았다. 가파른 언덕 아래로 회색빛 아파트가 촘촘하게 좁은 공간을 비집고 서 있었다. 구불구불 하게 난 도로는 그 아파트 머리 위를 지났다. 도시 전체가 항구에 발을 들이밀지 않고서는 행세를 하지 못할 것처럼 작은 만을 사이에 두고 빽빽하게 몰려 있었다. 건물들은 장날 알량한 약을 팔고 있는 약장사의 값싼 잔재주를 보기위해 몰려든 구경꾼들 같았다. 크고 작은 키를 재며 서로 먼저 항구를 내
골머리가 쑤셨다. 나는 알리에크에게 조찬을 시키도록 한 뒤 그가 조찬을 드는 동안 우유만으로 속을 채웠다. 입이 거북스러워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조찬이 끝나는 대로 나홋카에 갈 계획으로 나는 간단하게 채비를 챙겼다. 그때 따냐가 왔다. 그녀는 내가 짐을 챙기는 동안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서 있었다. 그러다 내가 거의 채비를 끝냈다고 생각했을 때쯤 핸드백을 열고 권총을 내게 건네주었다.나는 권총을 받아 등허리에 차고 알리에크를 따냐에게 소개했다.그녀는 간단하게 목례를 한 뒤 내게 돌팔매질을 하듯 말을 던졌다.“장 기자님 오늘
중국계마피아 들을 몰아내는데 나를 끌어들일 심산일까.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내게 호의를 보이며 권총을 선뜻 내준 것도 그런 의도일 수 있다. 내가 중국계 마피아들에게 피살된다 해도 그는 손해 볼 것이 없다. 대신 내가 그들에게 치명상을 입힌다면 그는 앉아서 그만큼의 영역을 넓히는 셈이 된다. 또 채린을 찾도록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한국 영사관과도 돈독을 꾀해 각종 상거래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치의 손해 없이 땅을 넓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내가 그들의 도움을 외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중국계 마피아의 조직원, 아니면 세르게이의 하수인, 누굴까, 가능성이 있다면 중국계 마피아의 하수인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점을 두고 있는 조직원일까. 내가 우수리스크에서 돌아오는 즉시 납치한 뒤 살해하라는 비밀 지령을 받았을 지도 몰라.’의심할 것이 없었다. 그가 중국계 마피아의 하수인이 아니라면 여기 있을 이유가 없었다. 나는 한 손으로 담배를 빼물고 성냥을 그었다.그러자 희미하던 방 안이 순간적으로 밝게 피어오른 뒤 이내 어둠속에 녹아들었다.그가 두 다리를 쭉 뻗으며 몸을 돌아 눕혔다. 나는 내심 뛰는 가슴을 억제하며 담배 연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꿈이었다. 식은땀에 침대 시트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따냐는 어느새 식탁 위에 음식을 차려 놓고 내 옆자리에서 곤하게 자고 있었다. 따뜻했다. 그녀는 알몸으로 내 가슴과 다리에 자신의 몸을 한 치의 틈도 없이 밀착시키고 쌔근거렸다. 내 허벅지에 그녀의 곰슬곰슬한 체모가 부끄럽게 감지됐다. 얇은 담요 속으로 그녀의 잘록한 허리와 탐스럽게 부푼 엉덩이가 매끄러운 선을 그으며 사라졌다.분노가 차올랐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타구니가 스멀거렸다. ‘꿈속에서 보았던 채린의
사내는 축축한 침을 흘렸다. 눈빛이 이글거렸다. 굵은 몸의 중심이 움찔거렸다. 그녀가 발버둥 치면 칠수록 사내의 중심은 더욱 거칠게 일어섰다. 칡넝쿨같이 엉킨 핏발이 흉하게 불거졌다. 사내는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가에 미치광이의 욕정이 흘러내렸다.사내는 한 차례 마른침을 삼킨 뒤 그녀의 발끝을 긴 혓바닥으로 핥기 시작했다. 발가락 사이사이를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듯이 핥았다. 질펀한 타액이 묻어났다.그럴 때마다 그녀는 몸을 꼬며 마른입을 벌렸다.사내의 입술은 발바닥을 지나 달팽이처럼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가슴이 아려 더 이상 그녀의 모습을 지켜 볼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달려가 당장 허리를 작신 분질렀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고함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기둥 뒤에 숨어서 비굴하게 숨을 죽였다. 다른 사내가 채린을 어깨에 들쳐 업고 내 앞을 지났지만 나는 아무런 생각 없는 사람처럼 그런 광경을 보며 멀뚱히 서 있었다.채린은 나를 발견하자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내게 손을 내밀 때마다 더욱 몸을 움츠리며 떨고 있었다. 그녀가 내 손끝에 닿을 만큼 가까운
현관과 맞닿은 복도에서는 생활에 찌들어 짜증 부리는 중년 부인의 투박한 말소리가 들려 왔다. 둔탁한 물체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렸고 이내 계집아이들의 흐느끼는 소리가 희미하게 문틈으로 새어 들어왔다. 나는 천장 무늬가 엷게 번져 가는 것을 보며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내가 숨어서 채린의 행동을 본 것은 작은 주점의 기둥 뒤에서였다. 그곳은 현란한 조명등이 눈을 자극했고 사면이 유리벽으로 장식돼 실제보다 서너 배는 더 커 보였다. 채린은 그곳에서 턱없이 큰 사내들의 술시중을 들었다. 입술에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가슴이
나는 다시 바퀴벌레처럼 침대 시트 속으로 기어들어 반듯하게 누웠다. 우수리스크에서 만났던 사내들의 손목에 새겨진 검은 독거미 문신이 떠올랐다. 까만 잉크를 피부에 새겨 만든 독거미는 어느새 꿈틀거리며 기어 나와 내 가슴 위를 걷고 있었다. 독거미는 내 오른쪽 겨드랑이를 파고들다 그대로 머리를 향해 기어오르고 있었다. 살금살금 기어오르는 독거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내 목을 지난 뒤 오른쪽 볼을 타고 검은 발을 내디딜 때쯤이었다. 길게 뻗은 다리에는 보기 흉한 털이 잔뜩 돋아 있었다. 주름진 몸통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
[9] 밤꽃 냄새6월18일 내가 눈을 떴을 때 조잡한 무늬가 불규칙적으로 그려진 천장이 희미하게 보였다. 널찍한 방 한편에 놓인 딱딱한 침대에 내가 반듯이 누워있었다.겨울나무 같은 알몸에는 여자의 실크 잠옷이 걸쳐 있었고 그것에서 배어나는 라일락꽃 향기가 나를 유쾌하게 했다.피로 뒤범벅이 됐던 손은 기름때 묻은 것처럼 손톱 주변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깨끗이 닦였으며 흙투성이가 됐던 바지는 보이지 않았다.“여기가 어디야? 내가 왜 여기 누워 있지.”나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딱딱한 침대에 꽁꽁 묶인 듯
“나홋카에 있는 루스 카야.”“루스 카야?”“예, 루스 카야 이즈바.”“루스 카야 이즈바!”나는 같은 소리를 되씹으며 권총의 공이를 풀었다.그는 죽음에서 살아난 불사신 같이 한숨을 길게 내쉬고 풀썩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에 긴장을 풀고 있었다.그는 잔인성에 치를 떨듯이 내 눈을 의도적으로 피했다.나는 그에게서 돌아서려다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던 사내의 턱을 향해 권총을 날렸다. 그자 역시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꼬꾸라졌다. 나는 다시 그의 관자놀이를 내리 찍었다.골목 안이 조용해졌다.그들은 도살당한
나는 잔인성의 극치를 경험하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나의 잔인성이 어디까지 가는 지를 시험하고 있었다. 특수부대 생활을 통해 뼛속에 배였던 잔인성이 오늘에 와서야 하얀 알약이 녹아내리듯 조금씩 배어 나왔다.나는 쓰러진 채 버둥거리고 있는 사내의 우측 갈비뼈 하단 부를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며 구두 끝으로 차올렸다.그는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하고 길게 혓바닥을 빼물더니 흰 거품을 토했다.그러자 바로 곁에서 떨고 있던 사내가 내 눈치를 힐끗 살피며 도망을 가려는 듯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는 나의 잔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