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골목집에서 나를 엿봤거나, 아니면 노파의 고자질을 듣고 나를 털려고 이곳에 대기하고 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매춘부들에게 뒷돈 집어 주는 모습을 보고 그들은 내가 호사스런 사업가이거나, 혹은 이곳 실정을 전혀 모른 채 홍등가를 찾은 관광객쯤으로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 정작 내게서 별다른 소득이 없자 그들은 몹시 불쾌해 하는 기색이었다.칼을 들이댄 사내가 내 코앞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대고 나를 빤히 내려다 봤다. 큰 눈알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짙게 뻗은 콧수염과 콧등에 붙어있는 사마귀가 더욱 섬뜩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순식간에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나와 눈빛을 마주대하는 것조차 귀찮은 기색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얇은 겉옷을 벗어젖히고 알몸으로 바퀴벌레처럼 담요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리고는 값싼 눈빛으로 나를 유혹했다.나는 문득 그녀의 행동에 헛구역질을 느끼며 속으로 “골든 드레곤”과“하바롭스크거리”를 되새김질했다. “고마워.”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불결한 공간, 어두운 조명, 머리가 지끈거리는 비릿한 냄새, 이 모든 것이 몸에 흠뻑 배인 것 같았다.밖으로 나온 나는 가쁘게 호흡을 토했다. 폐 속에 고스란히 고여
그녀는 딴전을 펴며 더 이상 말문을 열지 않았다. 담배 연기만 뽀얗게 내뿜었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내 물음에 무관심 한 것처럼 창밖을 넘어다봤다. 그녀가 무엇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뒷주머니의 지갑을 뒤져 5불짜리 지폐를 그녀의 손에다 쥐어 주었다. 그러자 얼굴에 화색이 돌며 배시시 웃었다. 그녀는 헤프게 파헤쳐진 옷을 여미고 침대 난간에 걸터앉았다.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납치된 한국 여자가 이곳에 끌려 왔다거나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어?”“그런 얘기를 들은 적은 없어. 하지만 요즈음 중국계들이
“서울.”“아! 서울 코리아?”그녀는 흥미롭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서울 코리아는 잘 알지, 내 친구도 그곳에 갔어.”“무엇 하러?”“돈 벌로…….코리아는 대단한 나라더라고. 땅은 작지만 우리보다 훨씬 잘 살잖아. 내 친구도 그곳 부산에 갔거든. 같이 가자고 했었는데…….” “그래?”“그런데 왜 이곳에 왔어?”그녀는 내 눈치를 살핀 뒤 곧바로 말꼬리를 돌렸다. “글쎄…….”“사업차 왔나 봐? 간혹 그곳 사람들이 이곳에 온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직접만나 보기는 처음이내. 무슨 사업을 하는데.”나는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굳이 설명
나는 복도 중간쯤에 난 작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방 안은 눅눅하고 비릿한 냄새로 절어 있었다. 그 냄새는 소금에 곰삭은 고등어의 냄새와 흡사했다. 침대에 깔린 낡고 때에 찌든 모포가 어슴푸레 보였다.그 방에는 노란 머리칼의 매춘부가 멋쩍게 서서 히죽거렸다. 그녀는 껌을 씹고 있었는데 핏기 없는 얼굴에 립스틱이 짙게 발린 입술이 유난히 또렷했다. 가까스로 가릴만한 엷은 천 조각을 몸에 걸치고 빨간 매니큐어가 발린 손톱을 물고 있었다. 나이는 스무 살이 채 될 것 같지 않았지만 얼굴색은 이미 황혼기를 접어 든 중년의 모습이었다.
어스름한 창문 너머로는 낡은 침대와 화장기 짙은 아가씨들이 들여다보였다. 마피아들이 홍등가를 장악한 채 공안당국자들과 짜고 아가씨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노파는 포주였으며 그는 홍등가를 찾은 사내들에게 아가씨를 소개하는 일을 했다. 노파는 내게 자신이 이곳의 주인처럼 거만하게 행세 했지만 나는 이 노파가 마피아들의 심부름꾼에 불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노파는 나를 데리고 통로 중간쯤에 있는 방으로 갔다. 나는 앞서가던 노파의 등을 두드려 세웠다. 그리고는 5불짜리 지폐를 그
밤늦도록 주점을 돌아다녔으므로 뻑뻑한 피로가 발목을 조였다.그 때 골목 안쪽에서 나무문이 빠끔히 열리며 불빛이 새어 나왔다. 두 사내가 용수철처럼 밖으로 튕겨져 나온 뒤 곧바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무엇인가에 쫓기듯이 빠른 걸음으로 달아나며 연신 나를 힐끗힐끗 돌아보았다. 어둠속에 선 나를 단속 반원쯤으로 본 모양이었다.나는 곧바로 그 사내들이 튀어 나온 집을 향해 다가갔다. 그 집은 하수구를 통나무로 대충 덮어 문과 연결을 시킨 집이었다. 하수구 썩는 냄새가 지독했다. 나는 문 앞에 서서 길게 호흡을 하고 문을 두어 번
나는 급히 전화번호를 눌렀다. 잠시 공허한 신호음이 들린 뒤 생소한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순하게 느낄 만한 그런 목소리였다.“박 인석씨 계십니까?”“박 부장님은 지금 자리에 안 계시는데요. 실례지만 누구십니까?”“한국에서 온 장 민이라는 사람입니다. 어디 가셨습니까?”“박 부장님은 회의 관계로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장 중이십니다.”“언제 쯤 오십니까?”“이번 출장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15일 정도는 걸릴 것 같다고…….”“예, 혹 연락이 오면 한국에서 온 장 기자에게 전화 왔다고 전해 주세요. 전
나는 객실 창문 아래 놓인 싱글소파에 앉았다.따냐가 개인적인 일로 아침 일찍 올 수 없다는 전화를 걸어왔다.시계가 오전 10시를 가리켰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수첩을 꺼내 들었다. 주소록을 뒤졌다. 정확히 4년 전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내게 유달리 친절을 베푼 박 인석의 전화번호를 낡은 메모지 갈피 속에서 찾았다.그는 당시 한국 기업의 현지 주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나홋카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고 내게 말했다. 내가 이곳 취재를 끝내고 귀국한 뒤에도 계속 연락을 해왔다. 물론 나는 바쁘다는 것을 핑계 삼아 자주 편지를 하거나 전
호텔 수속을 끝내고 배당 받은 방은 6045호실. 6층의 끝 방이었다. 추락할 것 같은 불안감이 소름 끼치게 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루하게 오른 뒤에야 6층 로비가 나타났다. 그곳은 공중전화가 걸려있는 작은 로비를 중심으로 길게 드러누워 있는 복도가 양쪽으로 뻗어 있었다. 바닥에는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벽체에는 두터운 베니어판이 칙칙하게 채색되어 있었다. 복도 중간쯤에 매달린 전등은 꺼진 상태였다. 복도는 어둠이 살포시 깔린 골목길을 연상 시켰다. 복도 끝에 붙은 창문은 빗물이 스친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나는 객실 문을
“동생, 나는 이곳에서 남부럽지 않을 만큼 사업도 확장시켰고 명예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은 늘 비어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고향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으니까. 형제들이 그립고 보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특히 혼자 있을 때면 더욱 마음이 울적해집니다.”“그럴 테지요.”빅또르 김과 내가 이런 애기를 나누고 있을 때 나 선배가 건배를 제의 했다. 좌중의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 숨이 막 힐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가냘프리만큼 목이 긴 유리잔에 찬물 같은 보드카를 한잔 가득 따랐다.“빅또르 김의 사업이 번창하고 우리의 우정이
“러시아로 말하면 특수안전요원 쯤 되는 셈이지요. 이 친구 깡말랐지만 대단한 친구였어요.”“아! 그래요. 아무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나는 감사하다는 뜻을 담고 있는 스바시바를 연거푸 토했다.또 한 차례 술잔이 오갔다. 나는 그들이 따르는 데로 술잔을 들이켰다.“저의 고향은 경북 상주라고 들었습니다.”빅또르 김이 말했다.“경북 상주?”“예! 상주군 사벌면. 할아버지께서는 그곳에서 농사를 짓다 일본인들의 침탈이 심해지면서 이곳으로 오셨답니다.”“그랬군요”“할아버지께서는 이곳에서도 계속 농사를 지어셨다더군요. 아버지의 말씀으로는 할아버
그는 자신을 빅또르 김이라고 또박또박 소개했다. 숫염소같이 단단해 보이는 피부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나는 그와 인사를 나누고 악수를 했다. 두터운 손바닥의 감촉이 부드럽고 촉촉 했다. 나는 그의 눈망울을 뚫어지게 들여다봤다. 까맣고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가 열정적이었다. 온후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 속에는 자신감이 이글거렸다.나는 두텁고 부드러운 손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내 손이 다소 두터운 탓인지 손이 두터워야 복이 따른다는 속설을 믿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놓고 그런 속설을 내뱉은 적은 없지만 손바닥이 두터운 사람이 후덕하고,
나 선배는 아파트 언저리에 볼품없이 붙어 있는 단층 건물 가까이에서 차를 멈추게 했다. 그 건물은 외견상 낡은 곡식 창고처럼 쥐가 드나들고 썪은 감자가 구석에 쌓여 있을 것 같은 그런 건물이었다. 하지만 나 선배는 이곳이 빅또르 김이라는 고려인이 경영하는 음식점이라고 소개 했다. 또 이 음식점이 블라디보스토크 전체에서 손꼽을 만한 규모로, 전통 러시아 분위기를 맛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말했다. 음식을 먹으며 가무를 즐길 수 있는 곳도 이곳뿐이라고 말했다.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으며, 더 이상 자신을 괴롭히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눈치였다. 컹컹거리며 생담배 냄새를 맡기도 했고 코를 실룩거리며 방안의 찝찝한 냄새를 즐기기도 했다. 나와 따냐는 중간이 헤진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렸지만 그는 회전의자에서 몸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구의 틈바구니에 숨어있는 바퀴 벌레처럼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눈을 내리깔았다. 내가 말을 먼저 꺼내지 않으면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채린에 대한 얘기를 끄집어냈다.“김 채린이라는 극동대 유학생의 실종…….”
“…….”“왜 사이가 안 좋아?”“사실은 집사람 때문에 이곳에 왔습니다. 극동대…….”“아! 그럼 김 모라는 극동대 유학생이 제수씨란 말이야? 그래서 보호자란에 장 기자 이름이…….난 전혀, 자네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네.”그는 적잖게 놀라는 표정이었다. 전혀 상상치 못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나를 뚫어지게 봤다. 갑자기 허를 찔린 사람같이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냉수를 한 컵 길게 들이키고 난 뒤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역시 조심스런 말투였다.“김 선생 실종 문제는 사실상 내가 전담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이렇다 할 단
“개인적인 일 때문에…….”“기자들은 매번 입장이 곤란하면, 개인적인 일이라더라.”“.......”“ 탈북자들 때문에 왔구먼.”“…….”“어휴 말도 하지마. 탈북자들 때문에 얼마나 곤혹을 치렀는지 알아, 탈북자란 말만 들어도 진저리가 날 지경이야. 탈출을 극비리에 성사시켜 놓으면 귀순자들이 이곳으로 온다고 보도하는 사람들이 기자들이야. 그 바람에 살해된 사람도 있어, 장 기자도 기자니까 하는 말이지만 너무들 하더라고......” “......”“어떤 기자는 이곳 블라디보스토크로 전화를 걸어요. 그리고는 뭐라고 묻는지 알아?” “..
총영사는 내게 트집을 잡히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눈치를 살피며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또 그는 구차 할 만큼 세부적인 수사 자료까지 일일이 내 보이며 자신들이 빈둥빈둥 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시키려고 애썼다. 그들은 채린을 찾는 일보다 수사상황을 어떻게 그럴싸하게 보고를 하느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나는 면담을 끝내고 사무실로 나왔다. 여전히 여름날의 한가로움이 졸고 있었다. 텅 빈 공간을 직원 한 명과 터벅머리 사내, 전화를 열심히 받고 있는 러시아여성이 지키고 있었다.내가 막 영사관을
내가 또 다른 담배를 빼물었을 때쯤에야 그는 채린의 실종에 대한 얘기를 어렵게 끄집어냈다. 폭탄에 뇌관을 심듯이 조심스러웠고 신중했다. 종전에 러시아와의 관계를 설명할 때와는 달리 한마디 한마디를 할 때마다 여운을 남겼다.“김 선생이 실종됐다는 보고를 받은 것은 솔직히 지난 3일 이었습니다.”그는 두 손을 모아 입에 대고 잠시 머뭇거렸다. 잠시 입을 오물거린 뒤에야 다시 답답하던 말문을 열었다.“실종되고 이틀이 지난 뒤였지요. 처음에는 영사관에서도 어디 여행을 떠났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 수도 있다
‘1850년 네벨스크 제독이 이끄는 탐험대가 연해주 해안을 탐사하고, 1858년 동 시베리아 총독 무야비요프 제독의 휘하에 있는 탐사대가 이 지역을 정밀 탐사 한 후 1859년 이를 근거로 블라디보스토크 군사 기지를 만들기로 결정 했다…….’나는 한 차례 숨을 길게 들이켰다.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한 스스로를 나무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눈으로는 계속 해서 자료를 읽어 내려갔다.‘1860년 쉐프너 선장 및 선원 31명을 실은 해군 수송선 만튜르호가 블라디보스토크 해안에 닻을 내림으로써 세계지도 상에 등장하게 된다. 시의 명칭인 블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