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잔인성의 극치를 경험하고 있었다. 내가 그들에게 용서받지 못할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나의 잔인성이 어디까지 가는 지를 시험하고 있었다. 특수부대 생활을 통해 뼛속에 배였던 잔인성이 오늘에 와서야 하얀 알약이 녹아내리듯 조금씩 배어 나왔다.나는 쓰러진 채 버둥거리고 있는 사내의 우측 갈비뼈 하단 부를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며 구두 끝으로 차올렸다.그는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하고 길게 혓바닥을 빼물더니 흰 거품을 토했다.그러자 바로 곁에서 떨고 있던 사내가 내 눈치를 힐끗 살피며 도망을 가려는 듯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는 나의 잔인
그들은 하나같이 떨고 있었다.나는 이들이 달아난 야마모토와 한패거리며 채린을 납치한 자들과도 같은 패거리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발뺌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이들이 채린의 납치에 직접 가담한 자들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채린의 납치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쁜 새끼들!”가슴속에 응어리졌던 분노가 터질듯이 치밀어 올랐다. 죽여도 성이 차지 않을 것 같았다.나는 무릎을 꿇고 있던 사내의 입에 박혀있던 총구를 빼는 순간 그의 턱을 권총 손잡이로 있는 힘을 다해 후려갈겼다. 그러자 욱 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우두둑 이빨이 뽑히
나는 꼬꾸라지며 피를 토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은 빈정거리며 히죽거렸다. 내가 두 다리를 쭉 뻗고 드러눕자 한 녀석이 높이 뛰어 오른 뒤 신발 뒤 굽으로 이마를 알밤을 까듯 짓밟았다.나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푸줏간에 걸린 고깃덩어리 같이 무력하게 축 늘어졌다. 또 다른 사내가 늙은 말처럼 쉭쉭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푹 꺼진 그의 동공에는 자신이 위대하다는 착각에 빠져 혼자 즐거워하는 그런 미치광이의 자긍심이 번뜩였다. 또 자신에게는 대적할만한 자가 없다는 유아적 오만함이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그는 나를 일으켜 세우기
“......”“여기 뭣 하러 왔느냐니까. 말이 안 들려. 놀러왔어. 아니면 재미 보러 왔어?”“......”“이 새끼가 대답이 없어, 묻는 말이 말 같지 않아?”멀뚱하게 쳐다봤다.“나 말이오?”나는 아무 말도 못들은 척 대답했다.“그렇다면, 여기 너 말고 또 누가 있냐?”그 사내는 기분 나쁜 어투로 내게 더욱 다가서며 가래침을 땅바닥에 퇵 뱉었다. 순간 그의 뒤에 서 있던 사내가 내 가슴을 향해 느닷없이 발을 날렸다. 갑작스런 일이었다. 너무나 순간적으로 닥친 일이라 숨 들이쉴 겨를도 없이 그 자리에 꼬꾸라졌다. 그러자 또 다른
최근 문제가 된 기무사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기무사의 인식이 여전히 군사 독제정권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이는 국가의 주체가 국민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개념조차 확립되지 않은 상태란 점에서 우려를 더한다.국가는 국민이 주인이다.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잠시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세력이다. 따라서 군은 국민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 근본이다.하지만 기무사가 작성한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보면 그들은 국민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다는 생각이 없다.자신들의 권력욕을 채워줄 정권에 앞장서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문서
15. 정부부처 조정.통제 방안기무사 문건은 비상계엄 시행부문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조밀하게 계획을 수립함으로써 최고 권력자의 서명이나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행동에 옮길 수 있도록 했다. “계엄시행”부문은 그런 사실을 잘 입증한다.먼저 계획서는 계엄협조관과 정부 연락관 운용준비를 주문했다.계엄협조관은 각 군 본부에서 중.대령급 장교를 소집, 정부부처별 2명씩 파견하도록 했다.경비계엄시에는 주요 행정과 사법관련 17부처에 34명을 파견토록 했다.비상계엄시에는 보건, 환경, 고용, 금
나는 길 건너편을 따라 오르며 그가 어디로 가는 지 관찰했다. 만일 내가 걸음을 빨리 걷는 다면 그자에게 발각될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걸음을 무작정 늦추면 다시는 그를 만나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불안감이 스쳤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공장 노동자들이 몰려나오는 시각이라 내가 그를 쫓기에 용이했다.다음 횡단보도에 다다랐을 때 나는 그와 4차선의 도로를 사이에 두고 평행선을 그으며 같은 위치에서 걷고 있었다.‘야마모토는 채린과 같은 층의 기숙사를 썼기 때문에 그녀에게 쉽게 접근 할 수 있었을 거야. 또 기숙사에서 나와 아들 그
기무사 계엄령 문건 대해부 [4] 사법.입법부 장악 음모10. 계엄사령부 가용 장소 판단.기무사의 문서는 철두철미하다. 한 치의 틈도 없다. 모든 것을 거의 완벽하게 준비했다.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보면 볼수록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씨줄과 날줄이 탄탄하게 엮여 있다. 잘 짜인 시나리오와 같다. 기무사는 이 문서에서 계엄사령부가 위치할 장소를 판단해두었다.대상으로는 B-1과 B-2, U-3, 국 별관, 구 사이버사령부, 구 방위사업청, 전쟁기념관을 검토했다. 주요 검토요소로는 공간과 통신시설, 위치, 경계, 지원시설 등을 분석했
그가 나를 피해 몸을 숨긴 곳은 노점상들이 즐비한 시장골목이었다. 그곳에는 시장사람들이 허리높이의 회색빛 판자 위에 딸기와 야채, 거센 불에 구어 낸 빵, 음료수 등 식료품을 올려놓고 팔리기를 기다렸다. 잡동사니며 세간들이 거리에 너절하게 널려 있었다. 하얀 보자기를 뒤집어 쓴 노파와 체중을 거북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뚱보 아주머니. 중년의 노동자, 때가 꼬질꼬질 한 시장 아이들, 흥정에 지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나는 몇 발자국을 더 달리다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기무사 문건 “대비계획 세부자료”대해부, 시리즈 [3] 계엄선포-국방부 비상대책 회의-전국 통행금지 실시, 교통 통제 등 국민 기본권 통제 계획 세웠다.-언론, 인터넷, 통신, 출판, 보도는 검열기무사의 “대비계획 세부자료”는 계엄선포를 전제로 계획이 준비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항 9로 분류된 “국방부 비상대책회의” 계획부터는 즉시 시행에 옮길 수 있는 모든 조치가 준비됐다. 소름이 돋을 만큼 구체적이고 즉각 시행이 가능하도록 했다. 최고 책임자의 결정만 내려지면 실행에 옮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런 사실이 계획서의 구석구
3. 시국에 관한 단계별 조치사항기무사는 “대비계획 세부자료”를 통해 지난해 촛불시위가 확산되던 상황에 대한 단계별 조치사항을 제시했다. 먼저 1단계로 위수령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판결직후 청와대와 일부지역의 치안이 위협받을 경우 발령한다는 계획이다.서울 및 지방에서 대규모의 시위가 발생할 경우 육군참모총장은 국방부장관의 승인을 받아 지역별 위수 사령관을 임명하고 위수사령관이 위수령을 발령한다는 계획이다.국가 주요시설로는 청와대와 국방부, 국회, 대법원, 정부청사, 국정원, 한국은행, KBS등 전국 59개를 적시했다. 이
그 때였다. 내 앞 10여 미터쯤 떨어진 아파트 모퉁이에서 매끈하게 생긴 동양계 사내가 불쑥 튀어 나왔다. 얼굴선이 단조로운 외모로 보아 일본인 같았다. 색이 적당하게 바랜 청재킷과 청바지를 입고, 몸은 호리호리하게 보였으며 눈썹은 먹물을 바른 것처럼 짙게 돋아 있었다. 나이는 25세 정도로 보였다. 그는 담배를 비스듬히 꼬나물고 걸어왔다. 생긴 것과는 달리 불량기가 몸에서 풍겼다. 그는 나를 보는 순간 움찔 놀라는 기색이었다. 새까맣게 박힌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흔들리는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바지 주머니 속에 꽂혀 있던 손이 순
기무사가 작성한 67쪽의 문건. 문서명 “대비계획 세부자료”는 그 자체로 충격이다. 문서 명에 주어가 생략되어 “대비계획”이지 세부내용은 쿠테타(?) "대비계획”이다. 2017년 3월10일 대법원이 박근혜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하지 않았다면 이 계획은 실행되었을지도 모른다. 21세기 대명천지의 대한민국 전체가 1980년 광주가 되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된다. 너무나 끔찍하고 잔혹하다. 계획의 세부내용을 보면서 소름 돋는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평화적인 촛불혁명의 물결이 전국에서 도도히 흐르고 있을 때 기무사의 어두운 방에서는 국가
나는 권총의 자물쇠를 잠갔다.권총을 지닌 후 불안함을 느끼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속으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지 않기를 간절히 고대했다. 권총에 촘촘히 박힌 실탄을 다시 뽑아 낼 까도 생각했지만 홍등가에서 격은 일이 떠올라 장전한 채로 서너 차례 자물쇠를 확인하고서야 옆구리에 총을 찼다.나는 따냐에게 차이나타운에서 50 미터정도 떨어진 아파트 단지 옆에 차를 세우게 했다. 그리고는 혼자 차이나타운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연신 옆구리에 찬 총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자기 최면을 통해 불안감을 조금이라도 들고 싶다는 절박한
그러나 줄곧 그런 즐거운 생각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어느 순간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섬광처럼 스치면 나는 길게 숨을 내쉬곤 했다. 그런 생각들은 대체로 채린이 나를 보고 스스로 죄책감에 시달리지나 않을까. 또 그녀가 의도적으로 나를 피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들이었다.채린은 내게는 가장 친한 친구이며, 연인이고, 애인이었다. 7년여의 삶을 그녀와 나누면서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떨쳐 본 적이 없었다. 도리어 그런 생각은 돌이끼 낀 부도같이 갈수록 빛깔을 더하며 우리 사이를 끈끈하게 묶었다.그런데 그런 아름다움이 오늘에 와서 흔들
나는 순간적으로 숨을 멈췄다. 그러면서도 내가 빅또르 김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이 아닐까를 의심했다. 채린을 보았다는 그 말이 도리어 믿기지 않았다.“뭐라고요?”“김 선생님을 우수리스크에서 봤다는 사람이 있답니다.”나는 그제야 흐트러졌던 생각들이 제자리를 잡아감을 깨달았다. 그것은 마치 흐트러졌던 병사들의 대열이 일순간에 기수의 신호에 따라 움직여지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우수리스크에 있는 주점에서 김 선생님과 비슷한 사람을 아이들이 봤답니다. 1주일 전쯤. 그러니까 지난 8일 저녁에 아이들이 우연히 중국계들이 경영하는 ‘바’
알렉세이는 그제야 2층 계단으로 오른 뒤 10여 분이 지난 뒤에 내려왔다. 그의 손에는 작은 권총과 실탄 5발이 들려 있었다. 그가 들고 나온 권총은 살상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널리 알려진 러시아제 토카레프 38구경 다연발 권총이었다.그는 권총을 내게 넘겨주기 전에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일러주었다.그것은 먼저 총기를 가지고 다니다 경찰이나 정보요원 등에게 적발되면 그 즉시 철창신세를 면치 못한다는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총기를 지니게 된 동기에 대해서는 절대 비밀로 해야 하며 혹 그것을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해도 자신에게 총
“못 들었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그것은 빅또르 김에게 전화를 걸어 알아보세요. 그리고 앞으로는 나를 찾아오지 마시고 모든 것을 빅또르 김과 상의를 하세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도 그에게 얘기를 해놓을 테니까. 왜냐하면 나를 만나봐야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직 세상이 평안치 못하기 때문이요. 중국계 아이들이 블라디보스토크 한복판에서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지 않소.”그는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지며 자신이 뱉은 말에 스스로 동요되는 듯 더욱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그자들은 정신을 좀먹는 마약거래를 일삼고 있소.
그는 회갈색의 싸늘한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작은 체구에 비해 다부지게 보였으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청바지와 하늘색 남방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의 이미지와 분위기에 잘 어울렸다. 손가락에는 아일랜드 정통문양인 켈틱 디자인이 선명한 반지를 끼고 있었다.“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소. 자리에 앉으실까요.”그는 정중하게 우리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늙은 사내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일렀다.그는 다소 당돌하게 느껴질 만큼 당당했고 매사에 자신감이 살아 있었다. 또 확실하게 일 처리하는 것을 생명으로 여기는 그런 부류의 사
“알렉세이?”“…….”대답이 없었다.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쫓기듯이 주변을 둘러 본 뒤 곧바로 내게 손을 내밀며 바싹 다가섰다. 그리고는 목각인형처럼 뻣뻣하게 선 채 귓속말을 했다. “아무 말 하지 말고 차로 갑시다. 차는 어디 있소?”따냐의 차에 오르자 그제야 세웠던 옷깃을 내리며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그런 곳으로 가자고 요구했다.“나는 알렉세이의 심부름을 왔소, 그가 별장에서 기다리고 있어요.”그의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내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기도 전에 고개를 창밖으로 돌린 뒤 다시 나를 보지 않았다.그가 우리를 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