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고 이태리 가곡에 대해서는 더더욱 무지한 내게도 노래 제목만은 알고 있는 이탈리아 민요 ‘돌아오라 소렌토로(Torna a Surriento)’의 본고장 소렌토(Sorrento)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 주에 속하는 해안가 작은 마을이다. 소렌토는 기원전부터 그리스인들이 지중해를 건너와 정착하면서 이곳을 시레나(Sirena)라고 불렀는데,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완전히 차지한 뒤 수렌툼(Surrentum)이라고 고쳐 불렀다. 풍요로움 속에서 살았던 로마의 시인들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매력을 가진 마녀
로마에서 남쪽으로 약270km 떨어진 해안가 도시 폼페이(Pompeii)는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산(Vesuvio Mt. 1277m)의 화산 폭발로 1500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다가 1592년 폼페이를 가로지르는 운하건설 공사 중 발견되어 세상에 처음 알려진 불운의 도시다. 당시 폼페이시가 있는 남동풍이 불어서 폼페이는 화산재로 뒤덮인 반면에 반대편 엘코르라에는 많은 용암이 흘러내려 약400여m나 쌓였다고 하는데, 약200년가량 발달했던 폼페이시는 갑작스런 화산 폭발로 2만여 명으로 추정되는 시민들과 함께 순식간에 화산재에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인 로마는 고대 로마를 꽃피웠던 포로 로마노(Foro Romano), 가톨릭이 지배하던 중세 유럽의 중심 지역이던 로마, 그리고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먼저, 포로 로마노는 BC 8세기경 늑대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 쌍둥이 형제가 고대 로마를 건설했다는 전설이 있는 팔라티노(Palatino) 언덕으로서 이곳 메인 스트리트인 ‘성스러운 길(Via di Sacra)’을 사이로 왼편에는 바실리카, 에밀리아, 공회당, 원로원 건물이 있고, 오른편 팔라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가장 중심지는 ‘베네치아 광장(Piazza of Venezia)’이다. 베네치아 광장은 이탈리아 반도와 발칸반도 사이에 있는 아드리아 해의 여러 섬들로 구성된 ‘물의 도시’ 베네치아 공화국이 1861년 이탈리아 통일 전까지 로마에 설치했던 대표부 건물인 베네치아 궁(Palazzo di Venezia)이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다.지중해를 통한 해상무역이 발달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은 800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기독교를 전도하다가 죽은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산마르코(Saint Marko, 영어식으로는 Ma
베드로 광장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성 베드로 성당이고 그 오른쪽이 성 시스티나 성당 시스티나 성당 오른편으로 굽어진 건물이 교황이 집무하는 교황청이다. 그리고 성 시스티나 성당에서 오른쪽으로 쭉 뻗은 건물이 2000년 가톨릭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하고 있는 바티칸 도서관이고, 그 오른쪽 가장 끄트머리가 바티칸 박물관이다. 결국 바티칸 박물관은 성 시스티나 성당의 뒤편인 셈인데, 박물관 입구에는 천재화가 미켈란젤로와 라파엘의 흉상이 입구 위에 새겨져 있다.박물관 입구는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수많은 관람객들이 항상 긴 행렬을 이루고
가톨릭의 총본산인 바티칸(Vatican) 혹은 로마교황청(Curia; The Holy See)은 로마 시내에서 테베레 강 서쪽으로 약20㎞가량 떨어진 로마 속의 작은 도시국가이다. 우리의 경복궁 넓이만한 사방 700m가 채 되지 않는 약15만평(0.44㎢)의 바티칸이란 지명은 ‘미래를 점치는 사람’이라는 라틴어 ‘바테스(Vates)’에서 유래되었다. 바티칸은 AD 1세기 칼라골라 황제가 이곳에 로마인들이 즐겨하는 격투기 원형 경기장을 지었는데, 네로 황제는 이 경기장에서 수많은 기독교인을 죽였다. 67년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
할슈타트(Hallstatt)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주의 작은 도시 잘츠 캄마굿(Salz Kammer -gut)의 작은 산골마을이다. 할슈타트란 지명은 B.C 2000년경부터 고대의 ‘회색 황금’이라고 하는 ‘소금(Salz)’의 고대 겔트어 ‘hal’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예로부터 유명한 소금 생산지로서 일찍부터 많은 부를 축적한 도시 할슈타트는 1311년부터 크게 융성했으나 현재는 소금을 캐서 벌어들이는 수입보다 관광업이 더 수입이 좋다고 소금생산을 중단하고 있을 만큼 세계 각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지다.
오스트리아 수도 비엔나에서 서쪽으로 약185㎞, 이탈리아와의 국경도시 인스부르크에서 동쪽으로 약190km 떨어진 잘츠부르크는 잘츠부르크 주의 주도(州都)이다. 이곳에서 남동쪽으로 지방도를 따라서 약30분쯤 가면 아름다운 산간도시 잘츠 캄마굿(Salz Kammergut)은 알프스의 계곡과 70여 개의 호수를 품은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휴양지로서 독일어로 ‘소금(Salz), ’황제의 창고(Kammergut)’라는 말로서 그만큼 예부터 국가에서 중요시했던 소금생산지였음을 알게 한다. 잘츠 카머구트가 위치한 알프스 산맥은 한때 바다였으나
잘츠부르크 주의 주도(州都) 잘츠부르크(Salzburg)는 아름다운 알프스 산과 화려한 바로크식 건물이 어우러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 하나로 그 명성이 세계에 알려진 도시이다. 잘츠부르크는 인구가 고작 15만 명에 불과한 도시이지만, 오스트리아의 북서부 관문이자 중요한 도로와 철도의 교차하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국제공항이 있어서 국제회의의 중심지이다.시내는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의 조화를 보여주는 주교관 건물들과 주택들이 자랑거리여서 잘츠부르크를 '독일의 로마'라고도 하는데, 소금광산의 수입으로 넉넉해진
오스트리아는 동서유럽의 중간에 위치해서 잦은 외침을 겪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세차례 서유럽여행과 동유럽과 남부유럽을 여행할 때마다 매번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느라 자주 찾은 나라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는 면적이 83000㎢(남한 98000㎢)에 인구는 서울시민 숫자보다 적은 870만 명의 나라이지만, 수도 비엔나는 유럽에서도 ‘최고의 음악도시’라고 할 만큼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브람스․ 요한 슈트라우스 등 수많은 음악가들을 배출했으며, 지금도 1년 내내 각종 음악축제가 끊이지 않는다. 또, 티롤 주의 민속춤에서 파생된
‘폴란드’라고 하면 우리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히틀러가 수백만 유태인을 강제수용하고 대량 학살한 ‘아우슈비츠(Auschwitz) 포로수용소’일 것이다.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남서쪽으로 약300㎞, 그리고 폴란드의 옛 수도이자 소금광산으로 유명한 크라쿠프에서 서쪽으로 약61km 떨어진 인구 4만 명의 작은 공업도시 오스비에침(Oswiecim)인데, 아우슈비츠란 폴란드 도시 오스비에침의 독일식 지명이다. 비수아 강과 소우아 강의 합류지점인 오스비에침은 지리적으로 독일과
폴란드 남부의 도시 크라쿠프(Krakőw; 독일어 Krakow)는 1572년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길 때까지 1138년부터 약500년 동안 폴란드 왕국의 수도였는데, 2차 대전 중에도 도시가 피해를 입지 않아서 1978년 UNESCO 최초로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크라쿠프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약15㎞ 떨어진 비알리츠카(Wieliczka)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으로 알려진 유배지였으나, 1290년 이곳에서 소금이 발견되면서 폴란드 왕국을 풍요롭게 해주었다.중세에는 소금(Salt)을 오늘날 황금처럼 중요시하여 ‘회색
크라쿠프 구시가지에서 신시가지 쪽 도로에는 중세의 우주관이던 천동설을 부인하고 처음으로 지동설(태양중심설)을 주장하여 근대자연과학의 눈을 뜨게 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1473~1543)가 공부했던 야기에오 대학교가 있다(코페르니쿠스에 관하여는 2018. 01.01. 폴란드 바르샤바 참조).야기에오 대학은 먼 훗날 로마교황이 된 청년 보이티와(Karol Józef Wojtyła; 1920~2005)가 다닌 대학으로서 1939년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자 보이티와는 징병을 피하려고 공장 근로자
크라쿠프(Krakőw)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에서 남쪽으로 약300㎞ 떨어진 슬로바키아 국경 부근에 있는 도시로서 현재는 마우오폴스카 주(Malopolska: 작은 폴란드)의 주도(州都)이다. 비스와 강(Wisla River) 양쪽에 형성된 도시 크라쿠프는 독일 베를린· 체코 프라하· 오스트리아 비엔나 및 러시아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슬라브족의 왕자였던 클락 왕(Krak)이 비스와 강에서 살고 있던 불을 뿜어내는 용과 싸워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하는데, 도시 곳곳에는 용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많다. 966
우리에게 폴란드(Poland)는 동유럽의 공산국가로 기억하지만, 조금 더 생각한다면 ‘피아노의 시인’ 쇼팽(Frédéric Chopin: 1810~1849)나라이자 여성으로서 최초로 노벨상을 받은 퀴리 부인(Marie Curie: 1867~1934)을 낳은 나라인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동서 유럽 사이이자 발트 해에서 남유럽으로 통하는 교차지역에 위치한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게르만족과 슬라브족 간의 문화충돌로 전쟁을 많이 겪고, 수많은 외침으로 지도상에서 사라졌다가 회복하는 등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우리의 쓰라린 역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남서쪽으로 약200km 떨어진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부근에 있는 체스키크롬로프(체코어: Český Krumlov, 독일어: Krumau an der Moldau)는 체코에서는 프라하 성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성이다. 프라하 시내를 흘러내리는 블타바 강이 S자 형으로 완만하게 흐르는 강 언덕에 자리 잡은 체스키크롬로프는 인구 15000명의 아주 작은 도시인데, 체스키란 체코어로 ‘체코의’란 형용사이고, 크룸로프는 ‘강의 만곡부의 습지’를 의미한다. 결국 ‘체코에서 말발굽처럼 휘어진 강에 둘러싸인 풀밭’이란 의미의
체코 수도 프라하(Prague) 시내를 흐르는 블타바 강(Vltava River)은 체코와 독일의 국경인 슈마바 산맥의 해발 1300m의 보헤미아 산에서 발원하여 프라하 30㎞쯤 하류에서 독일 엘베 강(Elbe River)과 합류하는 체코에서 가장 긴 435㎞의 강인데, 독일어로 몰도우 강(Moldau river)라고 한다. 서울의 한강처럼 프라하 시민의 젖줄인 블타바 강 위에는 여러 개의 다리가 놓여있지만, 프라하성에서 구시가지로 통하는 카를교(Karluv most, Charles bridge)는 동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이자
체코 수도 프라하(Prague)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블타바 강(Vltava river) 건너 고지대에 프라하 성이 있고, 반대편 저지대에는 구시가지가 있다. 기원전부터 보헤미아 왕국의 수도였던 프라하는 10세기부터 1100년 이상 신성 로마제국의 수도였던 탓에 로마네스크(10c~12c)․ 고딕(12c ~15c)․ 르네상스(14c~16c)․ 바로크(17~18c)․ 로코코(18c)․ 아르누보(19C~20c초) 등 다양한 유럽 건축양식의 건물이 많은 프라하를 ‘건축양식의 백화점’이라고 하는데, 또 지리적으로 유럽 동서남북 교통의 중
2차 대전 후 미․소 냉전체제로 철의 장막(Iron Curtain)너머 미지의 세계였던 동유럽도 1990년 탈 이데올로기로 구소련이 해체되면서 하나둘 ‘비밀의 정원’처럼 문을 열고 있다. 동쪽으로 슬로바키아, 서쪽으로 독일, 남쪽으로 오스트리아, 북쪽으로 폴란드와 인접한 체코는 라틴어로 보헤미아(Bohemia), 독일어로 뵈멘(Bőhmen)이라고 하는데, 6세기경 슬라브족의 일파인 체코족이 원주민 켈트족을 쫓아내고 모라바(동부), 체히(Čechy,서부), 슬레스코(남부) 등 세 지역에 나누어 산 것이 시초다. 833년 모라비아와 슬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 시내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도나우 강의 북쪽 페스트(Pest) 지역은 고지대인 남쪽의 부다(Buda)지역과 달리 근대의 건축물이 많다. 특히 뾰쪽한 첨탑들과 돔(Dome) 형식의 웅장한 건물인 국회의사당(Orszaghaz)과 성 이슈트반 대성당(St. Stephen Basilica)의 두 건물은 1885년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지은 건물로서 높이는 각각 96m이다. 이것은 헝가리 건국 896년의 숫자와 맞춘 것이며, 부다페스트에서는 두 건물보다 높게 지을 수 없도록 규제받고 있어서 두 건물은 부다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