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시내에서 MRT 5호선 판남선(板南線: 군청색) 롱산스역(龍山寺站)을 나서면, 길 건너에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이자 가장 유명한 용산사(龍山寺)가 있다.우리는 삼국시대에 중국을 통해서 불교며 유교 등을 수용하여 사상체계와 생활의 좌표를 형성하게 되었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춘추전국시대에 노자(老子)의 무위자연사상에서 기원하는 전통 민족종교인 도교(道敎)가 가장 융성하다.우리의 생활문화를 지배하고 있는 불교는 인도에서 형성되어 후한 말 실크로드인 서역 대월지국을 거쳐 중국에 수입된 후 한반도와 일본에까지 전파되고 2천년 동
타이베이 관광에서 4대 관광코스 중 하나인 국립고궁박물관은 국민당정부가 중국공산당에서 패하여 1949년 대만으로 피난할 때, 북경의 고궁박물원에 있던 송~ 청대의 유물을 옮겨와서 세운 박물관이다. 우리가 명~청대의 황궁으로만 알고 있는 자금성(紫禁城)은 사실 1912년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 1906~ 1967)가 퇴위한 뒤, 궁 안의 보물들을 정리하여 1925년부터 일반에게 공개한 ‘고궁박물원’이다. ‘고궁(古宮)’이란 북경의 자금성을 뜻하는데, 동서 760m, 남북 960m에 72만㎡ 대지에 약800채의 건물과 9999개
2.28. 평화기념공원과 대만총통부가 있는 MRT 2호선(붉은색) 다이타이위엔역(台大醫院站) 네거리에서 대만총통부 남쪽 네거리인 MRT 2호선과 3호선 송산신점선(파랑색)이 교차하는 중정기념당역을 나서면 중정기념당이 있다.중정은 국민당 주석이자 대만 초대총통이었던 장제스(蔣介石: 1887~1975)의 본명이고, 국립중정기념당은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국부기념관, 용산사와 함께 ‘타이베이 4대 관광 코스’로 꼽히고 있다.흰색 바탕에 청색 기와를 얹은 30m 높이의 우뚝 솟은 정문에 ‘자유 광장(自由廣場)’이라는 현판은 중국인들이 ‘서성(
타이베이 시내에서 대만총통부와 국립대만의과대학이 있는 번화가에 있는 2.28.화평기념공원(2.28.和平記念公園; 228 Peace Park)은 1947년 2월 28일 주민들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을 기리는 기념공원이다.MRT 단수이행(붉은색)의 다이타이위엔역(台大醫院站) 1번 출구를 나서면 기념공원 정문이 있는데, 이곳은 원래 사찰이 있었으나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후 대만을 식민지배하기 시작한 일본이 1908년 사찰을 철거하고 대만 최초의 서양식 공원 타이호구신공원(台北新公園)을 조성했던 곳이다.공원에서 도로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는 우리의 김포공항과 인천공항처럼 두 개의 국제공항이 있는데, 송산공항(松山)이 시내에, 타오위안 공항(桃園)은 시내에서 약 50분가량 떨어진 외곽에 있다. 인천공항에서 타오위안 공항까지는 2시간 30분이 걸리지만, 서울과 1시간 시차로 1시간 30분이면 갈 수 있다. 타오위안 공항청사는 2층 건물로서 우리의 지방공항 청사보다도 작지만, 입국장에서 지문인식만으로 신속하고 간단하게 수속을 마칠 수 있는 첨단장비는 매우 부럽다.타오위안 공항에서 타이베이 시내까지는 전용고속도로와 MRT가 있으며, 약50분 정도 걸린
타이완의 최북단은 단수이(淡水)인데, 이곳은 섬 내륙에서 흘러서 남중국해로 빠지는 단수이 강의 하류이자 남중국해와 합류하는 지점이어서 일찍부터 대륙의 상인들이 강을 따라 섬 내륙으로 들어가는 길목이었다.또 1590년 포르투갈 항해자들이 섬을 처음 발견한 뒤 ‘아름다운 섬(Ilha Formosa)’이라고 불렀는데, 1624년 네덜란드가 타이완의 남부 타이난(臺南)을 무력으로 점령하자 1626년 에스파냐도 타이완의 북부 단수이 지역을 점령하고 요새 산 도밍고(Fort San Domingo)를 구축했던 지역이다.그러나 1642년 네덜란드
세상을 살다보면 이웃이라고 해서 모두 친하게 지내는 것은 아니듯이 허구한 날 우리를 침략하고 약탈하고, 그리고 지금까지 식민통치의 향수에 젖어서 동해며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다.하지만 한반도의 제주도처럼 중국대륙에서 남쪽으로 약 161km 뚝 떨어진 작은 섬 타이완(Taiwan)의 ‘대만(台灣)정부’는 대륙을 통치하던 시절 우리의 독립투사들이 상해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벌이는 항일운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임시정부를 승인해준 세계 유일의 우방이었다.그런 국민당정부가 대만으로 쫓겨가
인류의 출현이래 지구는 크고 작은 전쟁으로 얼룩졌지만, 전쟁은 더 많은 사람을 지배하고 싶어 하는 탐욕스런 인간의 정복욕의 결과이다. 우리 역시 수많은 외침의 피해자로 지금까지 살아왔고, 또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겪었다. 동남아에서도 동족상잔의 긴 전쟁 끝에 통일된 베트남과 캄보디아가 나날이 발전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도 통일을 생각해본다.킬링필드(Killing Field)란 말 그대로 대량 학살된 '죽음의 들판'을 뜻하지만, 캄보디아에서의 킬링필드는 이민족에 의해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불과 한 세대 전인 1970년대
씨엠립 북쪽의 앙코르와트와 앙코르 톰이 있는 반대 방향인 남쪽으로 약14km쯤 떨어진 곳에 동양 최대의 톤레삽 호수(Tonle Sap Lake)가 있다.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큰 톤레삽 호수는 한자로 동리살호(洞里薩湖)라고 하는데, 이것은 크메르어로 ‘거대한 호수’(The Great Lake)라는 의미라고 한다.중국 칭하이 성 티베트 고원의 해발 4,900m가 넘는 히말라야 산맥에서 발원하여 중국을 지나서부터는 미얀마,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 등의 국경을 이루며 흐르다 베트남에서 남중국해로 흘러가는 장장 4
동북아시아는 일찍부터 중국 대륙의 영향으로 인도에서 발생한 외래종교인 불교를 받아들였지만, 불교사상은 불교도 대중 전도에 중점을 둔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동남아는 이와 달리 자기해탈을 강조하는 소승불교(小乘佛敎)와 인도 전통 민속신앙인 힌두교가 널리 전파되었는데, 9세기부터 14세기까지 약630년 동안 동남아의 대제국 앙코르왕조의 왕성이 있던 캄보디아의 씨엠립에는 힌두사원과 불교사원이 뒤엉켜 있다.인도와의 해상교역을 하며 힌두교를 받아들인 앙코르 왕조는 지방의 호족출신인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씨엠립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6.5㎞쯤 떨어진 곳에 앙코르왕조 최대의 힌두사원인 앙코르 와트(Angkor Wat)가 있고, 이곳에서 다시 북쪽으로 약 1.5km 떨어진 곳에 앙코르 왕조의 왕성이던 앙코르톰(Angkor Thom)이 있다.앙코르톰은 인드라바르만 1세(Indravarman: 877~ 889)가 착공하여 37년만인 야소바르만 1세(YasovarmanⅠ: 889~910)때 완성된 가로 3km, 세로 4km의 사각형 왕성으로서 인구 100만 명이 사는 도사였고, 앙코르 와트(Angkor Watt)는 앙코르톰을 완성한 후 약1
앙코르왕조의 왕성인 앙코르 톰의 남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해자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탑을 높이 쌓은 아치형 성문이 있는데, 성문은 당시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코끼리를 타고 통행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높다. 그리고 성문 위의 탑에는 사방을 바라보고 있는 4개의 거인 얼굴상이 있고, 그 아래로 머리가 3개인 3m 높이의 코끼리 위에 앉아 있는 인드라 신의 좌상이 있다.성안의 한 가운데에는 바이온 사원(Bayon Temple)이 있는데, 성안의 모든 도로는 바이온 사원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나눠져 있다. 바이온 사원 왼편에
825년 자야바르만 2세(Jayavarman: 802~850)가 앙코르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프놈 클렌(Phnom Kulen) 언덕에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캄부자(Kambuja)’라고 했는데, 캄부자는 오늘날 캄보디아(Cambodia)라는 국호의 시초가 되었다.몇 년 후 자야바르만 2세는 툰레삽 호수 부근으로 도읍을 옮겼지만, 인드라바르만 1세(Indravarman: 877~889)가 새 도읍지 앙코르톰(Angkor Thom) 건설을 시작했다. ‘앙코르’란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Sanskrit)어로 ‘나라’ 혹은 ‘도읍’을
캄보디아의 제3의 도시인 씨엠립은 9세기부터 14세시까지 630년 동안 동남아에서 대제국을 형성했던 앙코르 왕조의 도읍지로서 곳곳에 앙코르 왕조의 유적이 많다, 캄보디아는 중국 역사서를 통해서 1세기경 부남국(扶南國)으로 처음 알려졌는데, ‘부남’이란 크메르어로 산(山)이란 의미의 '푸난'(Pnom)을 중국어로 음역한 것이다.부남국은 오늘날 베트남, 타이, 캄보디아를 포괄하는 거대한 동남아시아 최초의 힌두교왕국으로서 해상교역을 하며 인도에서 힌두교를 받아들였다. 3~ 6세기에는 중국 황제에게 조공을 보내기도 했다. 부
동남아국가 중 태국․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 라오스 등은 무비자 여행국이지만, 캄보디아 여행에는 비자가 필요하다. 비자 발급은 한남동 순천향대학병원 앞에 있는 주한캄보디아대사관에 가서 신청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캄보디아에 도착 후 공항에서 도착비자를 발급받고 있다. 비자발급비용은 30달러이지만, 공항에서 담당공무원들의 지체, 노골적인 팁 요구, 줄을 잇는 비자신청자들로 시간이 지체되는 불편을 생각하면 출국 전에 미리 발급받는 것도 한 방법이다.또, 처음에는 태국에서 육로로 입국했지만, 두 번째는 씨엠립(Siem
아란에서 포이펫까지 우리나라는 반도 국가이지만 휴전선에 막혀서 사실상 섬나라와 다를 바 없어서 기차나 버스를 타고 외국으로 갈 수 없다. 하지만,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서유럽처럼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를 입국하는데도 마치 대전에서 서울이나 부산을 가듯 버스나 승용차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물론, 서유럽에서도 EU 회원국이 아닌 스위스를 입국하거나 출국할 때에는 간단한 입출국절차를 거치기도 하지만, 그것도 거의 형식적인 절차들이다. 동남아 국가의 여행은 대체로 육로교통이 잘 발달되지 않아서 국가 간 이동은 대부분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남쪽으로 약 145㎞ 떨어진 파타야(Pattaya)는 태국여행에서 필수 관광코스이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본토까지 휴가가지 못하는 장병들을 위하여 1961년 미국의 관광회사가 타이 만의 약4km에 이르는 해안에 미국풍의 환락가로 개발한 휴양도시인 파타야란 태국어로 우기의 시작을 알리는 ‘바람’이란 의미라고 한다(2018.09.03. 파타야 산호섬 참조).파타야 관광은 파타야 시내에서 관광도 좋지만,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산호섬(Ko Larn; 코란 섬), 코사멧 섬, 라용 등에서 멋진 해수욕과 패러글라
태국여행을 떠난 한국인 관광객들이라면 싫건 좋건 방콕에 있는 세계 최대의 레스토랑 로얄 드래곤(Royal Dragon)을 한번쯤은 들렀을 것이다. 패키지여행이라면 가이드의 안내로, 자유여행객이라고 한다면 미리 검색해본 맛집의 명성에 호기심을 갖고 찾아가게 되지만, 기네스북에서 공인한 세계 최대의 레스토랑이라는 사실에 호기심 반 음식에 대한 기대감 반으로 찾아갔지만 그다지 만족해본 적은 없다.그러나 근래들어 현지 맛집을 찾아다니는 젊은이들이 특히 많아서 내 입맛만을 주장할 수 없게 되었는데, 로얄 드래곤을 찾아가려면 패키지여행객은 거
아시아에서 대표적인 입헌군주국인 태국은 2017년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차크리 왕조(Chakri Dynasty)의 라마(Rama) 9세 사후 그의 아들이 즉위하여 라마 10세가 되었다. 1782년 톤부리 왕조를 무너뜨리고 차크리 왕조를 창시하여 방콕으로 천도한 라마 1세(1782~ 1809) 이후 차크리 왕조는 ‘라마’라는 시호에 번호만 붙이면 될 정도로 간단명료하다.라마 2세(1809~1824)와 라마 3세(1824~1851)는 라마 1세의 쇄국정책에서 벗어나 포르투갈, 영국 등 유럽 국가들과 교류하고, 동인도 회사, 미
탁신 장군(Phraya Taksin : 중국명 鄭昭: 1767~1782)이 지금의 방콕 차오프라야 강 건너인 톤부리(Thon Buri)에 도읍을 정했으나, 1782년 라마 1세(1782~1809)가 탁신을 죽이고 짜크리 왕조를 세우면서 톤부리에서 방콕으로 도읍을 옮겼다. 그 후 1971년 방콕이 차오프라야 강(Chao Phrya River) 서쪽에 있는 톤부리와 통합하여 지금과 같은 대도시 방콕을 형성했다. 950만 명이 살고 있는 거대도시 방콕 시내를 남북으로 흐르는 차오프라야 강을 중심으로 서쪽이 톤부리, 동쪽이 방콕이다. 방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