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참 넓고도 좁다.” 얼마 전 동네 슈퍼마켓에서 있었던 일이다. 50대 남자가 나를 곁눈질로 흘깃 거렸다. 자꾸 쳐다보는 그의 눈길이 못마땅했지만 달리 도리가 없어 참고만 있었다. 살 물건을 들고 카운터 앞으로 가자 그 남자도 뒤따라오며 내게 말을 걸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 맞지?”그제야 궁금증이 풀어졌다. 그래서 나를 힐끔 거렸구나. “예, 맞습니다. 알아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내가 반응을 보이자 그가 신났다는 듯 말을 잇는다. “이 동네 사는가 봐. 오래 살았어?”계속 반말을 하는 그가 싫었지만 시비가 붙으면 득
일요일 오후,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있었다. 후진기어를 넣고 주차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쿵 소리와 함께 진동이 느껴졌다. 아차, 싶어 차에서 내려 보니 옆 차 범퍼에 반 뼘 정도 스크래치가 나있었다. 아이고, 나는 매사 이렇게 조심성 없는 게 탈이다. 내 실수였으니 사과하고 책임을 지기 위해 상대편 차량 앞 유리에 적혀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주차를 하며 실수로 당신 차에 흠집을 냈으니 나와 보셨으면 좋겠다고.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40대 남자가 운동복 차림으로 나왔다. 그는 자신의 차량 앞 범퍼를 손
“팡, 팡, 팡”케이블 TV에서 ‘2015 윔블던 테니스’ 남자 단식 결승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불꽃 튀는 접전을 벌인 끝에 조코비치가 작년에 이어 페더러를 누르며 우승을 거머쥔다. 그는 2015년 윔블던 외에도 호주오픈과 US오픈까지 3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했으니 당분간 조코비치의 천하를 깰 수 없을 것 같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조코비치는 페더러 앞에선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존재였다. ‘테니스 황제’ 페더러와 ‘클레이코트의 제왕’ 나달의 철옹성을 넘지 못하고 우승의 문전에서 번번이 밀려났었다. 우리는 안다. 세계적인
나는 산을 좋아 한다. 이른 아침에 혼자 하는 산행은 더 좋다. 누군가는 혼자 하는 산행은 위험하다고 말을 하지만 나는 결코 새벽 산행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이참에 나 홀로 산행의 좋은 점을 말해 볼까. 혼자 하는 산행의 좋은 점은 말을 안 해도 되는 거다. 동행이 있을 경우엔 대화를 하지 않으면 화난 것처럼 보여 계속 말을 해야 하지만 혼자라면 이런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옆에 아무도 없으니 그만큼 생각할 시간도 많다. 산행을 통해 잡다한 생각을 정리하고 운이 좋으면 글감도 얻을 수 있으니 이거야 말로 일거양득이다. 하지만 이
발표 수업 때의 일이다. 파워 포인트를 화면에 띄우자 사람들이 실실거리며 웃는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내게 후배가 스크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오타가 있다고 말해준다. 재빨리 확인해 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지역 축제의 개년.’ ‘념’이 ‘년’이 된 것이다. 피곤한 마음에 확인하지 않은 내 실수였다. 한데 놀랍다. 받침 하나로 인해 의미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하긴 철지난 유머에 이런 것도 있다.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사랑해”라는 문자를 보내야 하는데, ‘랑’이 ‘망’으로 바뀌며 “여보, 사망해”라
심리학에는 ‘조명효과’라는 것이 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필요 이상으로 타인을 의식하고 신경 쓰는 현상인데 이를 테면 이런 거다. 매일 화장을 하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이 화장 때문에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피부에 생긴 트러블로 인해 당분간 화장을 삼가라는 의사의 말을 듣게 된다. 그녀에게 ‘민낯’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회사에 출근한 그녀는 사람들에게 화장하지 않은 모습을 들킬세라 고개를 숙인 채 일을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사람들은 화장하지 않은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던
“자원봉사 행사에 재능기부 좀 해줄 수 있어?”“그날 일정이 있어서 어렵겠는데요?”“에이, 무슨 일정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좀 도와줘. 부탁할게.” 구청 자원봉사센터장의 전화를 받았다. 다음 주에 있을 ‘자원봉사 한마음 대회’를 하는데 재능기부로 사회를 봐달란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마땅히 달려가야 하겠지만 망설이는 데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나는 대전광역시 예산참여주민위원회 문화체육분과 위원장인데, 공교롭게도 그날 분과 위원장들이 만나는 운영위원회가 열릴 예정이다. 한쪽은 참석만하면 7만원의 수당도 받고 점심대접까지
“안녕하세요.”시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이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시죠?”한데 그의 다음 말이 나를 당황스럽게 한다.“오늘 기사 내주신 것 잘 읽었습니다. 고마워서 전화 드렸습니다.”내가 아니다. 기자에게 해야 할 전화를 나에게 한 것 같았다. 이름이 같아서 착각한 것이겠지. 내가 정중하게 말했다.“죄송한데요. 전화가 잘못 걸렸습니다. 저는 이름만 같은 다른 사람입니다.”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마도 저장되어 있는 이름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겠지. 이윽고 그가 너스레를
나는 젊은이들이 좋다. 생각이 깨어있고 열정이 있는 젊은이들은 더 좋다. 그래서 대학 시간강사 일을 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여러 대학에서 ‘기업윤리’나 ‘국제구매론’ 또는 ‘마케팅’ 등을 강의 했으나 금년에는 대전대학교만 출강했다. 내가 이렇게 결심한 이유는 시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원했던 과목에만 내가 가진 에너지를 집중하기 위해서였다.내 수업은 ‘매스컴과 현대사회’라는 교양과목이다. 수업의 특징은 세 가지로 요약 된다. 책이나 참고 서적이 필요 없고, 과제물을 제출하지 않으며, 필기도구가 없어도 된다.
어릴 적 한동네에서 자란 후배와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번듯한 직장에 높은 연봉, 좋은 집,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그는 똑똑한 마누라에 아들과 딸도 있으니 모든 것을 다 가진 남자였다. 한참동안 수다를 떨고 일어서려는데 그가 어두운 낯빛으로 말했다.“형, 우리 어머니가 곧 돌아가실 것 같아요…….”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았기에 그의 어머니는 나도 알고 있는 분이다. 후배의 어머니는 ‘치매’ 증세가 심해 10년 전부터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는데, 몇 년 전 그와 함께 요양원을 찾았던 기억이 난다. 사실 난 그때 난생 처음 요양원을 가봤
길을 걷는데 웬 외제 차 한 대가 내 앞을 가로 막는다. 기분이 나빴다. 차보다 사람이 먼저가 아니던가? 교양 없는 인간 같으니라고. 속으로 이렇게 투덜거리는데 운전석 창문이 내려진다.“오빠, 오랜 만이예요. 저 아시겠어요?”밝은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하는 여자. 가만? 누구였더라? 맞다. 그녀다. 야간대학 다닐 때 내 마음속에 있던 그녀. 신입생 환영회 때 처음 본 그녀는 참 예뻤다. 이복구비가 뚜렷하고 동글동글한 얼굴에 성격도 서글서글해서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나도 마음은 있었지만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그녀에게 한마디도
아침 출근길, 라디오 방송에서 재미있는 사연이 나온다. 아내가 운전하던 차가 교차로에서 교통사고가 나며 상대방운전자와 실랑이를 벌였단다. 그런데 옆자리에 함께 있던 남편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만히 있더란다. 누구의 잘못을 떠나 남편은 당연히 자기편을 들어 줄 거라 생각했는데,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나 몰라라 하는 남편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난 아내. 뿐만 아니라 이 인간이 시키지도 않은 짓도 하더란다. 교차로 사고는 쌍방과실이기 때문에 몇 대 몇이라며 판정까지 내렸다나. 아내는 끓어오르는 울분을 토해내며 진행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