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측이 노골적으로 이런 공문을 보내온 것을 보면 김 선생도 이런 차원에서 납치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야.”“그렇다면 북한 측에 의해......”“면목이 없네. 그럴 가능성이 가장 많다는 것이지.”나는 긴 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후두부를 둔탁한 물체에 얻어맞은 것 같았다.눈을 지그시 감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몽롱한 넋이 아른거렸다. 나 선배는 내가 받은 충격을 스스로 흡수 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침착성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내게 던진 충격이 종이위에 떨어진 물방울같이 스며든 뒤
나는 계속 그 점을 걱정하고 있었다. 세르게이에게 보복 가능성을 듣고 난 뒤부터 솔직히 나는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잠자리에 들면 종종 천 길 낭떠러지를 헤매듯 침대를 기어 다니다 새벽녘에야 겨우 눈을 붙이곤 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신 뒤에야 잠을 청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채린을 찾아 나선 것이 도리어 그들을 자극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에 괴로워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채린을 찾아나서는 일을 도중에 그만두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것은 나약한 생각이라고 치부하기보다 채린을 사경으로 몰아넣을 수 없다는 절박한
전화를 끊었다. 빅또르 김에게도 전화를 걸었지만 그 역시 빈손이었다. 원점으로 돌아갔다. 나는 주소록을 뒤져 나홋카에 있는 박 인석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에게 나홋카의 분위기도 알아볼 겸, 또 채린에 대한 소식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였다.하지만 박 부장은 자리에 없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출장이 의외로 길어져 다음 주쯤에야 온다는 것이 그곳 여직원의 설명이었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다시 룸으로 돌아왔다.알리에크는 샤워를 끝내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유달리 큰 배가 볼품없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나는 알렉세이에게 전화를 걸
[11] 깨진 커피 잔6월24일 블라디보스토크 호텔에서 눈을 뜬 것은 낮 12시가 조금 지나서였다.나는 심한 갈증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 병이 텅텅거리는 소리를 내며 머릿속을 굴러 다녔다. 뒷골이 당겨왔다. 피로가 가시지 않아 몸이 무거웠다.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생수를 들이켰다. 하지만 취기가 가시지 않았다.알리에크는 그 때까지 맞은편 침대에서 코를 골며 곤하게 자고 있었다. 따냐는 보이지 않았다.나는 침대 난간에 걸터앉아 까칠한 턱수염을 만지작거렸다.‘어디로 데려갔을까. 미스터 쟝은 왜 채린을 데려갔을까. 알리에크의 말
덮어두었던 낡은 신문을 들추어 보기도 했고,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책자를 들추기도 했다. 잠시만이라도 자신을 더 귀찮게 군다면 관리실의 문을 안으로 걸어 잠글 기세였다. “그렇다면 미스터 쟝의 방을 잠시만 보면 안 되겠습니까?“그것은 곤란하지. 주인이 없는 집을 어떻게 보여 주누”그는 혼자 말처럼 중얼거렸다. 심상찮다는 생각이 스쳤다. 쟝이 관리인을 매수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이곳에서는 보기 드문 10불짜리 지폐를 건네주었다. 그러자 관리인은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며 연신 나를 아래위로 훑어 봤다. 자신에게
그는 손을 떨며 주소를 쓴 뒤 손가락을 움켜쥐고 탁자에 엎드렸다.나는 주소를 집어 들고 그의 등을 다독거렸다. 그는 거친 숨을 토하며 탁자에 엎드린 채 흐느꼈다. 몸에서는 눅눅한 땀 냄새가 번져왔다.나는 룸 쪽으로 몸을 돌리는척하다 이내 돌아서며 권총의 손잡이로 그의 후두부를 힘껏 후려 갈겼다.그는 비명도 토하지 못하고 문어같이 그 자리에 허물어지며 탁자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선홍빛으로 물든 흰 탁자보가 함께 미끄러져 그의 얼굴을 덮었다.나는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며 루스 카야 이즈바를 나왔다. 알리에크는 벤치에 앉아있다 내가
그는 또 내가 이곳에 올 줄 알았으며 그런 사실은 이곳 조직원들이 다 알고 있는 일이라고 협박조로 말했다. 도리어 내가 조직원들에게 적발된다면 자신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그는 손톱으로 탁자를 긁으며 자신이 빠져나갈 좁은 틈을 시종 찾고 있었다. 나는 규칙적으로 탁자를 긁고 있는 그의 손가락을 내려다 봤다. 손목에 새겨진 까만 독거미 문신이 곰실거렸다.“쥐새끼 같은 놈.”순간 나는 그의 관자놀이를 겨누고 있던 권총의 손잡이 끝부분으로 사내의 왼쪽 새끼손가락 끝마디를 내리 찍었다.그러자 우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조용히 물었다.“어디 있나.”“........”그는 여전히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지 않았다. 다시 되물었다.“이 사람 어디 있나. 살고 싶으면 입을 열어.”“나는 아무것도 모릅니다.”그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면서도 서서히 긴장을 늦췄다. 내 마음이 갈수록 조급해지는 것과는 달리 그는 도리어 느긋해지고 있었다. 바들바들 떨던 몸도 이제는 안정을 되찾았고 바이올린 줄같이 팽팽하게 긴장됐던 얼굴에는 여유가 감돌았다.나는 낮게 달린 전등으로 그의 얼굴을 비췄다.그의 눈빛을 읽기 위해서였다. 그는 채린의 사진을
나는 발소리를 죽이고 내실로 통하는 복도를 유심히 관찰한 뒤 화장실 쪽으로 다가갔다. 금방이라도 사내가 내 앞에 불쑥 모습을 나타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바람처럼 다가왔다.나는 숨을 죽이고 첫 번째 룸 뒤에 숨어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사내는 화장실 속에서 물수건을 빠는 모양이었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질척거렸다. 그는 기분 좋은 일이 있었는지 콧노래와 휘파람을 섞어 부르곤 했다. 알아들을 수 없으리만큼 흥얼거리는 그 소리 때문에 쉽게 그가 있는 화장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그는 여전히 흥얼거리며 화장실을 나왔다.
내 볼을 만졌다. 하지만 까칠한 수염만 만져졌다. 그녀는 없었다.루스 카야 이즈바가 열린 것은 오후 6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내가 지루함에 지쳐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딴전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그 순간도 나는 한 중년 부인의 뒤뚱거리는 걸음을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다리가 체중을 이기지 못해 부었고 부푼 허리를 치마끈으로 동여맨 탓에 답답함을 느낄 만큼 몸통이 조인모습 이었다. 내가 그녀를 유독 주의 깊게 지켜 본 것은 그녀의 묵직한 가슴 때문이었다. 그녀의 가슴은 내가 지금까지 본 사람들의 그것들 가운데 가장
일방통행으로 통하는 도로와 도시공원 사이, 비슷한 크기의 문들이 벌집같이 조밀하게 붙어있는 회색빛 건물의 중간쯤이었다. 그곳은 낡고 잘 달은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문간에는 “루스 카야 이즈바” “술과 음악 그리고 여자, 사랑이 속삭이는 곳”이라고 쓰인 간판이 아담하고 좁은 출입문 위에 붙어 있었다. 문 양편에는 먼지가 낀 창문이 나있었고 한쪽 창문 곁에 속옷만 걸친 무희의 색 바랜 사진이 붙어 있었다.그곳은 블라디보스토크의 여느 술집과 달리 겉보기엔 무슨 사무실같이 보였다. 낡은 무희의 사진이 나붙지 않았다면 이곳이 술집이 아니라
우수리스크에서 행한 나의 행동이 이곳 현지 중국계 마피아들에게 상당히 위협적이고 또 모독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그들은 나에게 보복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고 충고했다.그의 충고가운데 나를 더욱 불안하게 한 것은 그런 보복이 채린에게 미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중국계는 나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며 그런 보복이 이루어 지지 않을 경우 채린에게 앙갚음을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기분이 몹시 언짢았다.사실 나는 그동안 내 행동이 채린에게 어떻게 미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줄곧 아내를 찾으면 그
[10] 드뇸?6월23일 이른 아침부터 달린 승용차는 오후 2시가 되어서야 나홋카 시내로 접어들었다.나홋카는 항구 도시였지만 도로가 산 중턱을 휘감았다. 가파른 언덕 아래로 회색빛 아파트가 촘촘하게 좁은 공간을 비집고 서 있었다. 구불구불 하게 난 도로는 그 아파트 머리 위를 지났다. 도시 전체가 항구에 발을 들이밀지 않고서는 행세를 하지 못할 것처럼 작은 만을 사이에 두고 빽빽하게 몰려 있었다. 건물들은 장날 알량한 약을 팔고 있는 약장사의 값싼 잔재주를 보기위해 몰려든 구경꾼들 같았다. 크고 작은 키를 재며 서로 먼저 항구를 내
세종시교육청이 19일 조치원여자중학교에서 교육행정직렬 등 총 36명을 뽑는 '2018년도 지방공무원 9급 선발 공개경쟁임용시험'을 갖는다.시교육청은 주차여건과 주변 지역에서 응시하는 수험생들의 접근성 등을 고려해 필기시험장을 결정했다고 밝혔다.주차장은 시험장인 조치원여중 운동장을 비롯해 조치원교동초·조치원읍사무소공영주차장·조치원장로교회 주차장 이용이 가능하다.응시자는 시험 당일 응시표와 신분증, 컴퓨터용 수성 싸인펜을 지참해 오전 9시 20분까지 시험실에 입실해야 하고 응시표는 원서접수사이트에서 출력이 가능하다.금번
박영순 청양군 해남보건진료소장이 첫 번째 시집 ‘사랑받는 꽃’을 발간해 화제다.시집 ‘사랑받는 꽃’은 4부로 구성돼 78수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장희구 문학박사(시조시인·문학평론가)는 박 시인에 대해 “칠갑산의 정기를 받아 밝고 맑은 심성으로 시심을 일구었다”며 “시상의 문이 넓고 진폭이 커서 중견 작가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한들 뒤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이어 "생화는 물론 말라버린 꽃까지도 사랑으로 안아 주는 고운 심성이 시상 곳곳에서 흘러넘치고, 아버지에 대한 효심, 직업에 대한 사명감, 칠갑산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담겨 있다
“아니 여보셔. 내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러는 겁니까?”나는 눈을 똑바로 뜨고 그를 응시했다. 그러자 그는 내행동이 가당찮다는 듯 빙긋이 웃었다.“시간이 없어. 가지고 있는 소지품을 책상 위에 모두 내 놓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좋게 말할 때 순순히 말해. 나도 인간적인 것을 좋아하니까.”나는 주머니 속에 있던 소지품을 몽땅 털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여권과 지갑, 이곳에서 사용하려고 가져온 지폐, 비행기 티켓, 담배, 라이터, 전화번호가 메모된 수첩, 가족사진, 손수건, 블라디보스토크 사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