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후소’(繪事後素) - 논어 팔일편 -‘그림 그리는 일은 흰 것을 맨 뒤에 한다.’ 『논어 팔일편』에 보면 공자와 제자인『자하』의 대화중에 유명한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의 해석은 학자마다 다르다 지난 회에서는 ‘주자’의 해석을 토대로 삶의 교훈과 지혜를 살펴보았다. 이번 회에는 정현(鄭玄)의 해석을 토대로 삶의 교훈과 지혜를 살펴보겠다. 참고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회사후소’에 대한 ‘주자’의 해
‘회사후소’(繪事後素) - 논어 팔일편 -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을 마련한 뒤이다.’ 논어『팔일편』에 보면 공자와 제자인『자하』의 대화중에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의 뜻은 학자마다 해석이 다르다. ‘주자’(朱子) 의 해석에 의하면 ‘그림을 그릴 때는, 그림을 그리는 바탕을 횐 비단이나 흰 물감으로 희게 하고 나서 그 위에 채색을 한다.’고 풀이 하였다.이러한『주자』의 해석을 토대
서예가인 너의 증조부님께서는『가정 ● 철학 ● 평화』라고 가훈을 내려 주셨단다. 내가 젊었을 때는 미처 그 뜻을 깨닫지 못했는데 차차 학문을 하고 삶의 경험을 통해서 그 깊으신 뜻을 뒤늦게나마 깨닫게 되었단다. 그래서 너희에게 우리 집안의 가훈인『가정?철학?평화』의 뜻을 설명하니 깊이 새기어 삶의 지침으로 삼기 바란다. ?『가정』에 대해서 설명하겠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즉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되어 나간다.’라고 하였다. 집안이 편안치 못하고 자식이 올바르지 못하면 걱정과 근심으로 내 기운이 쇠하게 되므로 밖
子曰(자왈) 君子無所爭(군자무소쟁)이나 必也射乎(필야사호) 읍양이승(揖讓而升) 하여 하이음(下而飮)하나니 其爭也君子(기쟁야군자)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경쟁하는 것이 없으나 불가피한 경쟁은 활쏘기뿐이다.활쏘기 할 때는 서로 읍(揖)하고 사양하면서 당(堂)에 오르고 또 당(堂)에서 내려와서는 술을 마시니 이러한 경쟁이 군자다운 경쟁이니라.’하셨다. 위의 문장의 내용을 다시 자세하게 살펴보겠다. 군자는 자기의 지식이나 지혜는 물론이고 인격까지도 자랑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누구나 결혼을 하여 자식을 낳으면 자식의 부모인 동시에 부모의 자식이 된다. 다시 말해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식의 입장이 됨과 동시에 자식으로부터 효도 받는 부모의 입장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지혜를 살펴보고 또한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으로부터 효도 받는 지혜를 살펴보기도 한다. 1. 먼저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에게 효도하는 지혜를 살펴보기로 하겠다. 뭐니 뭐니 해도 ‘역지사지’(易地思之)해야 한다. 다시 말해 그 자식이 그 부모의 입장에서 그 부모님을 이해하고 헤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
부모와 자식관계의 고전적 의미는 부자자효(父慈子孝) 즉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관계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부모는 자식을 위하고 자식은 부모를 위하는 이타적(利他的), 희생적의미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즈음의 부모와 자식 관계는 다소 이기적, 타산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자기 삶의 가치를 자식위한 사랑이나 부모위한 효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의 가치에 더 무게를 두는 것 같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 필자가 노인 대학에 가서 종종 특강을 하고 있는데 지금부
부자자효(父慈子孝)라 하였다.『예기』에 나오는 말로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뜻이다. 5월에는 자식에 대한 사랑의 의미가 담긴 ‘어린이날’과 부모에 대한 효도의 의미가 담긴 ‘어버이날’이 있으니 바로 5월은 ‘부자자효의 달’이라고 그 의미를 부여해도 좋을 듯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녀야 할 지극한 도리는 인(仁) 즉 ‘어짐’인 것이다. ‘어짐’ 즉 ‘어질다.’라는 것은 나 자신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남이라 할 때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
예(禮)는 與其奢也(여기사야)론 寧儉(영검)이요. 喪(상)은 與其易也(여기이야)론 寧戚 (영척)이니라. ‘예’ 특히 길례(吉禮)는 사치스럽게 하기 보다는 차라리 검소하게 해야 하고 상례(喪禮)는 형식적인 겉치레에 치우치기 보다는 진심으로 슬퍼해야 하느니라. 위의 원문 내용은 노나라의 위정자인 ‘임방’이라는 사람이 ‘공자’에게 ‘예’에
子曰(자왈) 人而不仁(인이불인)이면 如禮何(여예하)며 人而不仁(인이불인)이 면 如樂何(여악하) 리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사람이 인(仁)하지 못하다면 예(禮)를 행한들 무엇 할 것이며, 사람이 인(仁)하지 못하다면 악(樂)을 한들 무엇 할 것인가.’ 위의 공자 말씀은 ‘예(禮)와 악(樂)은 인(仁)함의 바탕 위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仁)함이 결여된 예악(
집을 지을 때는 무엇보다도 주춧돌 즉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일층의 집도 오래지 않아 무너지지만 기초가 튼튼하면 높은 고층 빌딩도 오랜 세월을 끄떡도 하지 않는다.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의 주춧돌이 튼튼해야 그 위에 어떤 삶을 얹혀 놓고 살더라도 그 삶이 무너지지 않고 오랫동안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인생의 삶을 받쳐주는 인생의 주춧돌 즉 기초는 바로 인성(人性)과 철학(哲學)이라 할 수 있다. 인성과 철학이 갖추어진 사람은 삶의 목표와 가치가 항상 곧고 바르며 또한 하는 일이나 직업에 대해서
子曰(자왈) 人而無信(인이무신)이면 不知其可也(부지기가야)로다. 大車無?(대거무예)하며 小車無?(소거무월)이면 其何以行之哉(기하이행지재)리오. (논어●위정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으로서 신실함이 없으면 그 사람됨을 알 수 없음이로다. 큰 수레에 ‘예(?)’가 없으며 작은 수레에 ‘월(?)’이 없으면 무엇으로 그 수레를 가게 할 것인가.’ 인간의 사회는 ‘信實(신실)함’ 즉 믿음과 진실에 바탕을 두고 성립되는 것이다. 만일 신실함이 없다면 인간관계나 사회가 성립할 수
或謂(혹위) 孔子曰(공자왈) 子(자)는 奚不爲政(해불위정)이니싯고 子曰書云(자왈서운)孝乎(효호)인저 惟孝(유효)하며 友于兄弟(우우형제)하여 施於有政(시어유정)이라하니是亦爲政(시역위정)이니 奚其爲爲政(해기위위정)이리오. (논어?위정편) 어떤 사람이 공자에게 묻기를 ‘선생께선 왜 정치를 하지 않으십니까?’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효도하라, 오직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여라, 효도와 우애를 정치에 베풀어라’하였으니 효도하고 우애하는 것 또한 정치를 하는 것인데 어찌 내가 직접 정치를 하는
애공(哀公)이 문왈(問曰) 하위즉민복(何爲則民服)이니잇고 공자대왈(孔子對曰) 거직조제왕즉민복(擧直錯諸枉則民服)하고 거왕조제직즉민불복(擧枉錯諸直則民不服)이니이다.
子曰(자왈) 由(유)야, 誨女知之乎(회여지지호)인저 知之爲知之(지지위지지) 不知爲不知(부지위부지) 是知也(시지야)니라. (논어 ● 위정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유’야 너에게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 이것이 곧 아는 것 이니라.’ 위의 말씀은 공자가 ‘자로’(子路)라는 애제자(愛弟子)에게 하신 말씀이다. ‘유’(由)는 자로(子路
子曰(자왈) 學而不思則罔(학이불사즉망)하고 思而不學則殆(사이불학즉태)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되 사색하지 않으면 사물의 이치에 어둡고 사색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독단에 빠져 위태로우니라.’ 위의 말씀의 뜻은 ‘학문을 하는데 있어서는 학(學)과 사(思) 즉 배움과 사유(思惟)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의 말씀에서 우리는 두 가지 문제를 가정하여 생각해 볼 수 있다. ? 하나는 ‘만일 사물에 대한 학(學) 즉 지식을 배우기만하고 그 배운 지식에 대하여 사(思) 즉 사유가 없다
자왈(子曰) 군자(君子)는 주이불비(周而不比)하고 소인(小人)은 비이부주(比而不周)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두루 사귀며 견주어 편당을 짓지 않고 소인은 견주어 편당을 지으면서 두루 사귀지 못하니라.’ 공자의 이 말씀을 현대적 의미로 재해석하여서 처세의 방편으로 삼았으면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군자 즉 지성인으로서의 처세 방편은 주이불비(周而不比)이다. 즉 ‘치우치거나 편협되지말고 두루두루 폭 넓게 살아야
인생은 ‘얼마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에 의미가 있다. 그래서 ‘나이는 숫자 놀음이 아니다.’라 한 것이다.그리고 ‘인생을 어떻게 마감할 것이냐.’에 인생의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할 것이다.‘행백리자 반구십리’(行百里者 半九十里)라 하였다. 시경(詩經)에서 인용된 말로 ‘100 리를 가는 사람은 90 리를 절반으로 삼으라.’ 다시 말해 ‘100리 길을 가야하는 사람이 90 리를 오고서도 아직도 한 절반쯤 더 가야하는 구나.’하는 마음가짐으로 나머지 10리 길도 최선을 다해 가라는 뜻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 70세부터 80세까지 노인을 모질(??)이라고 일컬었다. ‘모’(?)는 70세 노인을 ‘질’(?)은 80세 노인을 뜻한다. ‘우리 할머니는 한평생을 참으로 모질게 살아 오셨다.’라 했을 때 ‘모질게’는 바로 이 모질(??)에서 왔다 할 수 있다. ▲ 77세의 나이를 ‘희수’(喜壽)라고 한다. 이 말은 기쁠 희(喜)자를 초서로 흘려 쓰면 七十七(칠십칠)이라고 쓴 뜻이 보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 ▲ 80세의 나이는 산수(傘壽)라고 한다. 우산 산(傘)자를 약자로 쓰면 여덟 팔(八)자 아래에 열십자(十)를 쓴다. 그
▲ 60세의 나이를 이순(耳順)이라고 한다. 즉 ‘60세가 되니 귀가 순해졌다.’는 뜻이다. 공자께서는 ‘오육십이이순’(吾六十而耳順) 즉 ‘내 나이 60이 되니 남의 말을 듣기만 하여도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다.’라고 하신 말씀에서 60세를 이순(耳順)이라고 한 것이다. 공자의 이 시기는 고국인 노나라에서 인덕(仁德)정치의 뜻이 좌절 되자 공자는 55세부터 68세까지 약 14년 간 몇 몇 제자들과 함께 노나라를 떠나 각국을 유랑하면서 각국의 왕들에게 인덕정치를 펼치도록 권했으나 각 나라마다 처한 정치현실이 너무나 각박
▲ 30세의 나이를 이립(而立)이라고 한다. 공자께서는 지나온 생을 회고하면서 ‘오삼십이립’(吾三十而立) 즉 ‘나는 30에 자립하였다.’라고 술회한데서 30세를 ‘이립’(而立)이라고 하게 된 것이다. 공자는 15세에 큰 학문의 뜻을 세우고(志學) 권세가 집안의 창고관리인, 목장관리인 등의 천직(賤職)으로 생계를 유지해 나가면서 한편으로는 독학으로 학문에 정진하여 드디어 30세가 되어서는 학문이 경지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고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참고로 공자와 예수의 ‘이립’(而立)의 나이가 같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