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는 뜻글자로써 ‘만물의 이치’나 ‘철학’ 그리고 ‘마음 다스림’ 등의 뜻이 담겨 있다. 선(善)자에 대해 살펴보겠다. 필자의 사견임을 전제로 한다. 善자의 상형문은 羊(양양)자와 言(말씀 언)자가 합해진 글자이다. 여기에서 양(羊)은 단순한 동물로서의 양이 아니라 중국 고대 문명의 기원을 연 ‘염제 신농씨’의 토템이라 한다.(낙빈기 선생의 設) 그러니까 추론하면, ‘염제 신농씨’가 족장으로써 양(羊)을 토템으로 하는 자기 종족을 이끌며 하는 훈시의 말(言)은 ‘착하라’ ‘잘하라’ ‘좋게 하라’ ‘사이좋게 지내라’ 등의
세계 각국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문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세계의 대부분 국가가 사용하고 있는 표음문자(表音文字) 즉 소리글자로서 한글, 로마문자, 일본의 가나문자 등이 이에 속한다. 또 하나는 표의문자(表意文字) 즉 뜻글자로서 중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한자가 있다. 한자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지금까지 사용하는 뜻글자이다. 소리글자는 그 글자 자체에 뜻이 없기 때문에 그 글자만으로는 뜻을 알 수 없다. 다른 글자와 합쳐야만 뜻을 이룰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에다가 ‘지’를 합쳐서 ‘가지’가 되고 ‘a’에다
子曰(자왈) 弟子, 入則孝, 出則弟(제자, 입즉효, 츨즉제), 謹而信(근이신), 汎愛衆而親仁(범애중이친인), 行有餘力則以學文(행유여력즉이학문) - 논어(학이편)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는 사람은 집안에서는 효도하고 밖에서는 공손하며, 말과 행동은 삼가되 믿음을 주며, 많은 사람을 널리 사랑하되 특히 어진사람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이 모든 것
孟子曰(맹자왈) 順天子, 存(순천자, 존) 逆天子, 亡(역천자, 망) - 명심보감(천명편) -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의 뜻을 따르는 자는 살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죽느니라.’ 하늘은 인간에게 스스로 지키며 살아갈 도리를 하늘의 명(命) 즉 ‘천명’(天命)으로써 인간에게 내려 주셨다. 그래서 인간이 그 천명을 따르며 살면 삶을 잘
子曰(자왈) 君子, 義以爲上(군자, 의이위상) 君子, 有勇而無義 爲亂(군자, 유용이무의 위난) 小人, 有勇而無義 爲盜(소인, 용이무의 위도) - 논어(양화편)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의(義)를 으뜸으로 여겨야 한다. 군자가 용맹함만 있고 의가 없다면 난(亂)을 일으키고 소인이 용맹함만 있고 의가 없다면 도둑질을 하게 되느니라.’ 위의 공자 말씀을 다시 풀어보면, 군자 즉 나라의 관리가 지녀야 할 우선 덕목은 의(義)라는 것이다. 만일 관리에게 용맹함만 있고 의(義)가 없다면 그 용맹함만 가지고 함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의 최고 이상은 ‘태평성대’라 할 수 있다. 태평성대를 나타내는 고사성어로 ‘고복격양’(鼓腹擊壤)이라는 성어가 있다. 직역하면 ‘단순히 배를 두드리고 발을 구르며 흥겨워 한다.’라는 뜻이 지만 참 뜻을 알기위해 이 ‘고복격양’에 담겨 있는 고사(故事)를 살펴보겠다. 유가(儒家)에서 태평성대와 성군(聖君)의 표상으로 전설상의 인물인 요임금과 순임금을 꼽는다. 때는 천하의 성군으로 꼽히는 요임금이 천하를 통치한지 50년이 지난 어느 날, 『요』임금은 정말로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있는지 궁금하여 평민 복으
인생은 ‘얼마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에 의미가 있다. 그리고 ‘인생을 어떻게 마감할 것이냐.’에 인생의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할 것이다.? ‘행백리자 반구십리’(行百里者 半九十里)라 하였다. 시경(詩經)에서 인용된 말로 ‘100 리를 가는 사람은 90 리를 절반으로 삼으라.’ 다시 말해 ‘100리 길을 가야하는 사람이 90 리를 오고서도 아직도 한 절반쯤 더 가야하는 구나.’하는 마음가짐으로 나머지 10리 길도 최선을 다해 가라는 뜻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죽는 순간까지 한 순간이라도 흐트러짐 없이 자기
子曰(자왈) 富與貴是人之所欲也(부여귀시인지소욕야) 不以其道得之(불이기도득지) 不處也(불처야) 貧與賤是人之所惡也(빈여천시인지소오야) 不以其道得之(불이기도득지) 不去也(불거야) - (논어 ● 이인편)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귀는 누구나 다 바라는 바이지만 정도(正道)로서 얻는 것이 아니라면 누리지 말아야 한다. 빈천은 누구나 다 싫어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의 남자는 본 이름 대신 아명(兒名), 자(字), 호(號), 시호(諡號)와 같은 여러 호칭이 있었다. 그러면 조선시대의 왕의 호칭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 왕은 태어날 때 이름을 갖지 않는다. 왕의 맏아들로 태어나면 원자(元子)가 될 뿐 이다. 따라서 원자에서 세자(世子)가 될 때까지는 그저 ‘원자’라고 부를 뿐이다. 조선시대에는 원자로 책봉되면 바로 관례를 행하는 경우가 많았다. 관례를 행하면 자(字)를 받는데 자(字)는 그 사람이 일생 동안 명심해야 할 훈계 또는 축복의 내용을 담은 두 글자로 이루어
이름은 누구나 많이 부르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옛날 사대부 집안에서는 태어날 때 지은 본 이름을 부르는 것을 금시기하고 있다.그러므로 평생 본 이름을 부를 기회가 거의 없다 할 수 있다.조선시대에 사람이름을 ‘휘’(諱)라고 했는데 이는 ‘꺼린다’는 뜻이다. 즉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는 대상이 아니라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그 무엇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이름을 신성시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이름은 그 사람 자체를 나타내고 또 그 사람의 사주를 놓고 짓기 때문에 그 사람의 이름을 보면 그 사람의 운명
나 자신과 인류에게 있어서 화두의 글자는 선(善)자라고 정의(定義)하여 본다.상형문을 살펴보면 善(선)자는 羊(양양)자와 言(말씀언)자가 합해진 글자이다. 여기에서 양(羊)은 단순한 동물로서의 양이 아니라 중국고대 문명의 기원을 연 ‘염제 신농씨’의 토템이라 추측되며 ‘염제 신농씨’가 자기 종족을 이끌며 하는 말(言)이 선(善)자의 뜻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양을 토템으로 삼는 종족의 족장인 ‘염제 신농씨’가 자기의 종족을 이끌며 여러 가지 훈계의 말을 하였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善)자의 뜻이라 할 수 있다.이처
子曰(자왈) 不仁者(불인자) 不可以久處約(불가이구처약) 不可以長處樂(불가이장처락) (논어 ● 이인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인하지 못한 자는 오랫동안 곤경에 처하지 못하며 또 오랫동안 즐거움에도 처하지 못하니라.’ 공자의 핵심 사상은 인(仁)이다. 그러나 공자는 ‘이것이 仁이다.’하고 인에 대한 정의를 딱 떨어지게 내린바 없다. 다만 인의 실천에 대하여 사람과 경우에
天下之無道也久矣(천하지무도야구의) 天將以夫子爲木鐸(천장이부자위목탁) (논어 ● 팔일편) “천하에 도가 없어진지가 오래되었음이라. 하늘은 장차 선생님(공자)으로 하여금 목탁을 삼고자 하실 것입니다.” 공자는 오십이 삼세 때에 조국인 노나라에서 지금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자리에 잠시 있었으
오늘은 양력으로 8월 12일, 음력으로는 7월 6일로 말복(末伏)이다. 또한 월복(越伏)이기도 하다. 보통 ‘초복’ ‘중복’ ‘말복’사이의 기간이 열흘이 되는데 년도에 따라 중복과 말복 사이가 열흘이 되었다가 20일이 되었다가 하는 현상이 생긴다. 이처럼 중복과 말복사이가 20일이 되는 경우를 ‘월복’이라고 한다. 올해는 중복이 음력 6월 16일(양력 7월 23일)이고 말복은 음력 7월 6일(양력 8월 12일)로서 중복과 말복사이가 20일이 되므로 ‘월복’인 것이다. ? 그렇다면 ‘삼복은 어떻게 정하는가.’ 그 정하는 방법
남의 슬픔이나 애사(哀事)는 위로해 주고, 남의 기쁨이나 경사(慶事)는 축하해주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요 도리이다. 그런데 여기에 불편한 진실이 있다. 대체적으로 친구나 가까운 지인(知人)의 슬픔이나 애사에는 진심을 다하여 슬퍼하고 위로해 주면서도 기쁨이나 경사를 기뻐하고 축하해 주는 데는 다소 인색한 것 같다. 오히려 겉으로는 기뻐하고 축하 해 주는듯하나 속으로는 시기하고 질투하는 또 다른 마음을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하지 않는가. 여기에 ‘우정(友情)의 대명사’라 할
子曰(자왈) 關雎(관저) 樂而不淫(낙이불음) 哀而不傷(애이불상) - 논어 팔일편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관저’의 시(詩)는 즐거우면서도 음탕하지 아니하고 슬프면서도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느니라.” 위의 글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시집인 시경(詩經)의 ‘관저’(關雎)라는 시에 대한 공자의 논평의 말이다. 관저(關雎)란 ‘
君使臣以禮(군사신이례) 臣事君以忠(신사군이충) (논어 • 팔일편) 임금은 신하를 부리기를 예(禮)로써 하며, 신하는 임금을 섬기기를 충(忠)으로써 하여야 한다. 노나라의 군주인 ‘정공(定公)이 당시 대신(大臣)의 지위에 있던 공자에게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도리 즉 군신(君臣)간에 지녀야 할 마땅한 도리에 대해 물었다. 이에 공자는 임금은 신하를 함부로 대할 것이 아니라 예(禮)를 갖추어 대하고 부려야 하며 신하는 충(忠) 즉 성심을 다해서 섬겨야 한다.’고 했
子曰(자왈) 事君盡禮(사군진례) 人以爲諂也(인이위첨야) < 논어 • 팔일편 >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하는 것을 사람들은 아첨한다고 하는구나.” 위의 공자 말씀의 배경을 살펴보겠다. 공자시대의 군주 즉 왕은 진시황제와 같은 절대 권력을 쥔 절대 군주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군신관계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왕과 신하로서의 관계가 아니라 어느 정도 친구사이 정도의 예를 지키는 사이였다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공자 당시에는 왕을 섬기는 자들이 대체적으로 무례했다. 또한 당시의 정치 상황을 살
王孫賈問曰(왕손가문왈) 與其媚於奧 寧媚於?(여기미어오녕미어조) 何謂也(하위야)?『왕손가』가『공자』에게 물었다. ‘안방 신에게 잘 보이는 것 보다는 차라리 부엌 신에게 잘 보이라는 말이 있는데 무슨 뜻 입니까.’ 子曰(자왈) 不然(불연) 獲罪於天 無所禱也(획죄어천무소도야)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습니다.
祭如在(제여재) 祭神如在 (제신여재) - 논어 팔일편 - 공자께서는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는 바로 앞에 조상이 계신 듯이 하셨고 천지(天地)의 신(神)께 제사 지낼 때는 신령이 앞에 계신 듯 하셨다. 위의 문장은 공자의 제자가 스승인 공자의 제사지내는 모습을 보고 기술한 내용의 일부이다. 제사란 조상신이나 천지신을 만나고, 보본반시(報本反始), 사신치복(事神致福)하는 의식(儀式)이라 할 수 있다. ? ‘보본반시’(報本反始)란 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