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국내 보수언론에 대한 비난과 비판이 거세다.어느 자리를 가나 우리 보수매체에 대한 무책임성, 부정확성 그리고 교만성에 대한 성토가 뒤따른다.그러니까 부동산정책과 코로나 사태에 대한 보수언론의 정부 때리기가 도를 넘고 있다는 지적이 그것인데, 예를 들어 그동안 부동산가격 급등에 대한 정부책임론을 일관되게 비판해 오다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이후 부동산시장이 오시장의 재개발공약으로 되레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거나 이로인해 시장활성화를 도모하게 되었다고 오도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 모범국으로 상종가를 치던 때에는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
4·7 재보궐선거가 민주당의 참패 속에 막을 내렸다.특히 민주당이 선거에 투입한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공세, 높은 투표율 등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혹독한 완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정권심판론이 야당견제론을 압도한 모양새다.이번 선거결과는 향후 여권의 국정운영과 정치행태에 대한 국민의 거부감이 명백히 표출된 일대 사건이이자 일종의 경고라고도 규정지을 수 있다.물론 여러 악재가 있었지만 대통령지지율과 민주당 지지율이 지난 총선과 비교할 때 정확히 반토막이 났다는 사실은 탄핵에 가깝다. 민주당의 위기관리능력이 전혀 그 빛을
그야말로 완연한 봄이다. 일찍이 담장 너머로 까치발을 섰던 하얀목련부터 삭막한 도심을 뒤덮은 소박한 듯 보이지만 고고한 자태의 벚꽃, 산야의 제비꽃, 민들레가 한창이다.꽃이 진 뒤의 새하얀 깃털이 아름답다는 민들레, 철죽, 연산홍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분수에 맞게 척척 피워 올리겠지만 곧 가는 봄을 어찌 막을 수 있겠는가 싶기도 하니 아련하다.한껏 기지개를 펴고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땅을 딛고 올라 온 초록의 향연은 우리의 크고 작은 근심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1980년,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도 여느 때처럼 봄이
온 사회가 LH(한국토지투택공사) 직원들의 부동산 투기문제로 그야말로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다.오죽했으면 대통령과 총리까지 나서 연일 국민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강력한 처벌의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 만하다.이번 대책에서 필자가 특히 주목하는 대목은 정부의 부동산정책 관련 정보를 누설하거나 이용해 온 공직자를 색출, 처벌하겠다는 대목이다.사실 부동산투기가 문제된 것이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고 문제가 될 때마다 정부가 발본색원을 다짐해 왔지만 여전히 활개를 치고
독도는 마음의 성/ 바람 많은 한민족의 토담/ 누구도 이 섬을 넘볼 수 없다. // 독도가 중요한 것은/ 독도 앞의 바다가 중요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많은 파도 앞에 자신을 던졌던 / 민족의 핏줄/ 민족의 용기/ 민족의 영혼/ 그 자존의 영토를 지키기 위함이다.// 이 밤에도/ 불면으로 뒤척이며/ 단호하게 단호하게 조국의 이름을 부른다.//아, 대한민국이여.이우걸 시인이 노래한 ‘독도’라는 제하의 시(詩)다.‘아, 대한민국이여!’라는 싯구가 몹시 서럽기까지 하다.해마다 3·1절이면 한일관계를 돌이켜 보고 새로운 다짐을 하는 것이
사실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녔던 6,70년대만 해도 교과서 외에 책다운 책을 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화책을 처음 접해 본 것이 언제쯤 이었던가 기억해 내는 일조차 쉽지 않다.세월이 흐르면서 아무리 집안형편이 어려워도 아이가 있는 집이면 으래 세계 명작 동화 한 질쯤은 갖추게 되었지만 그 시절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인지 후일 아는 분의 집을 방문해 한 쪽 벽면을 점령군처럼 차지하고 있는 책장을 보면 그게 그렇게 부러워서 샘이 날 지경이었다. 굳이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책 한 권을 손쉽게
신축년 새해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이 1주일 앞으로 다가 왔다.‘설’하면 떠오르는 우리네 옛 정경들이 있었다. 우선 부엌에선 솥뚜껑에 부침개 부치는 맛있는 냄새가, 안방에선 광주리뚜껑에 스르륵 스르륵 산자무치는 소리와 술잔 기울이는 소리가 마당까지 가득했었다. 다음날 떡국과 함께 나이를 한살 더 먹은 총생들은 하얗게 눈덮인 들판에 나가 연을 날리고.그런 모습들을 넉넉한 품으로 품은 고향마을. 거기에 가족이 있고 정이 있었다.이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올 법한 풍경이지만 그것이 진정 우리 모두의 설이었다.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의
나를, 적어도 민주주의에 있어 ‘시계 제로’였던 80년대로 데려다 놓아 본다.암울한 시기 캠퍼스에선 삼삼오오 모여 과연 우리가 지식인인가 파시스트인가를 놓고 언쟁을 벌인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팍팍한 현실을 다른 방법으로 바라보는, 그래서 현실너머를 간절하게 갈구하던 우리는 당시 그 논쟁을 일종의 해방구로 여기던 시절이었다.당시 나는 한 점잖은 학자를 알고 있었다. 미국 유학을 다녀왔고 시도 쓰는 분이었는데 그 분의 전두환 체제 옹호발언은 도를 넘어도 한참을 넘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던 시절이긴 하지만.어떻게
정상적이라면 해마다 이맘 때 쯤 되면 대체로 우리 지친 영혼은 새해와 더불어 회복기에 접어드는 시기였다.‘새해벽두’라는 화두는 일상에 찌든 우리에게 온 대지에 품고 있는 차가우나 신선한 기운과 함께 분별력도 살뜰하게 챙겨주는 그런 직관의 요체로 수식돼 왔기 때문이다.그러나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엄혹한 코로나 정국 속에서 민심은 영혼의 회복은 커녕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져 옆 사람에게 말도 쉽게 붙이기 어려운 형국이니 참으로 답답할 노릇이다.이 와중에 제4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여야간 기싸움이 팽팽하다.여당은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