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건강 때문에 우울한 친구를 불러내어 맑은 공기나 마시러 가자고 가볍게 길을 나섰다. 작은 산자락의 능선이라 쉽게 생각했는데, 오르막내리막이 반복되니 친구가 잘 걷지를 못한다. 쉬엄쉬엄 가자며 바위에 걸터앉아 가을을 만끽한다. 넘어진 겸에 쉬어간다고 사진기를 꺼내 주변 나무와 풀들을 담아본다. 꽃들은 자취를 감추고 푸른빛은 누렇게 물기가 빠져 시들어간다. 친구와 허허거리며 급할 것 없는 시간을 즐긴다. 가을빛이 꼭 우리 모습이라며 윤기 없는 얼굴과 까칠한 피부색을 마른 풀에 견주어 본다. 길옆에 산초나무가 키재기를 하자는 듯
일과를 마치고 저녁 늦게 볼 일이 있어 고향 길을 재촉한다. 자동차 불빛에 달맞이꽃이 반사되어 눈에 들어온다. 학창시절 어두운 밤길에 동무가 되어주던 꽃. 그 꽃이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길은 멀기만 했다. 아랫마을을 지나 논두렁을 걷는 길은 풀로 덮인 좁은 길이었다. 늦은 밤 혼자서 가는 길은 무서웠다. 달이 없어 칠흑같이 어두운 날은 덩그러니 서 있는 둥구나무만이 거리를 가늠해 줄 뿐이었다. 그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으로 좁은 길을 안내하던 달맞이꽃. 달빛이라도 있는 날은 노란꽃이 반사되어
판소리 동편제(東便制)의 발상지로도 유명한 이곳 소리마을. 당시에 가왕(歌王)이라 불렸던 송흥록(宋興祿)과 명창 박초월(朴初月) 선생의 생가터가 있는 곳. 피를 토하는 듯 구성진 판소리로 민중들을 울렸던 명창의 소리는 녹음기로만 전해줄 뿐이다. 명창의 생가터 뜰에 서 있는 동상(銅像)만이 그분들을 추억하고 있다. 생가터의 텃밭 울타리를 따라 자줏빛 물감이 든 댑싸리가 줄을 지어 서 있다. 참 오랜만에 보는 풀이다. 이미 단풍이 들어 색이 변한 것이다. 누가 씨앗을 뿌리지 않았는데도 봄이 되면 담장이나 밭가에 저절로 싹이 나고 거름을
유등천을 거스르니 넓은 수면 위로 비친 쪽빛 하늘이 그림처럼 곱다. 잘 관리된 녹색 잔디가 눈을 편하게 해 준다. 냇물을 따라 도열한 고층 아파트와 건너편의 빌딩모습에 내가 도심 속의 사람임을 새삼 느낀다. 이마에 스치는 뽀송뽀송한 바람이 가을이 왔음을 일러준다. 어디에서 이같이 상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까. 심호흡을 하며 가슴 속 깊이 밀어 넣는다. 물가에는 왜가리가 긴 목을 내밀고 먹이를 조준하고 있다. 곳곳에 만들어진 화단에 아기자기한 꽃들이 하늘거린다. 망종화가 노란꽃을 흔들거리고 바로 아래 붉은 토끼풀꽃이 조화를 이룬다.
보청천 물줄기가 굽이굽이 한가하게 흐른다. 지금이야 편하게 자동차로 산을 넘지만 걸어서 다니던 시절은 만만치 않은 고갯길이었다. 구불구불 몇 굽이를 돌아 눈높이가 평평해지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먼발치에 백화산이 우뚝 서서 바람막이를 하고 섰고 그 앞으로 넓은 뜰이 펼쳐진다. 야트막한 산 아래로 납작 엎드린 시골집과 그 앞에 펼쳐진 논과 밭들이 아지랑이 사이로 뿌옇게 다가온다. 언젠가 내 보금자리였고 다시 돌아가야만 할 것 같은 모습들이 푸근하고 정겹다. 이 고개를 넘어 처가(妻家)를 오간 지도 서른 해가 넘었다. 빈 집 같은 널찍한
어제 내리던 빗줄기가 그치고 반짝 보이는 햇빛은 눈이 부실 정도다. 숲길을 걸으며 나무 사이로 만나는 빛이 따갑다. 대웅전 뜨락에서 내려뵈는 풍경은 이곳이 신선 세상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흰 구름 사이로 언뜻 보이는 쪽빛은 무어라 표현할 말이 없다. 오랜만에 찾은 수덕사에서 아내와 망중한을 즐긴다. 경내를 살짝 비켜 오르는 길은 계단이 없고 숲길이라 산책하기 십상이다. 노송(老松)과 잡목이 우거진 옆길을 따라 걷는 이 시간이 나를 행복감에 젖게 한다. ‘삼 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의 탐물은 하루 아침의 이
강의 장소가 시내의 한복판에 있어서 오랜만에 구(舊)도심도 걸어보고 싶고 지하철도 타볼 겸 여유 있게 집을 나섰다.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서니 상큼한 공기가 답답한 가슴을 씻어 내린다. 복잡한 출근시간을 벗어나선지 차량 흐름도 원만하고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다. 이 도심의 한복판에서 직장생활을 해서 낯익은 거리다. 신시가지가 생겨 도시의 중심기능이 옮겨갔지만 직장생활의 추억이 고샅마다 오롯이 묻어있는 거리다. 건물마다 화단을 만들어 푸른 나무들이 싱그럽다. 조그만 가게 앞에도 갖가지 화초와 채소를 심어 조그만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
죽림정사에서 용화사로 다니는 산행길은 경사도 완만하고 숲길이다. 집 앞에서 버스를 타든 걸어서 가든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잠깐만의 아스팔트길을 지나면 흙길 옆으로 모과나무, 상수리나무, 오리나무, 때죽나무 등 각종 크고 작은 나무들이 도열하여 그늘을 만들어 준다. 특히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에 앉아 쉴 수 있어 참 좋은 쉼터이기도 하다.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이라 아내와 종종 버스를 타고 와서 산책 겸하여 이곳을 찾는다. 이미 여름에 들어선 풀과 나무들은 검푸른 이파리가 싱싱해 보인다. 철조망 울타리에 붉은 인동덩굴이 길게 꽃을
이따금 찾는 갑천변을 나오니 비가 종일 온 후라선지 하늘도 물도 맑다. 하늘의 뭉게구름은 어느 조각가라고 그런 흉내를 낼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다양한 모양을 만들며 흘러간다. 쪽빛 바탕에 둥실둥실 모습들이 한가롭다. 엑스포 다리 밑으로 흐르는 물 위에 뜬 구름도 풍치를 더한다. 맑은 물을 따라 강변으로 펼쳐진 푸른 잔디는 어느 영화에서나 본 듯한 풍경이다. 유등천을 따라 거스르면서 천변의 둑방에 피어 있는 다양한 야생화가 발길을 잡는다. 자전거를 세우고 열심히 사진기에 담아본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배경은 금상첨화(錦上添花)다.달
마당의 조그만 물동이에 연(蓮)을 심어보고자 신매리 연꽃저수지를 들렀다. 저수지는 가뭄으로 바닥을 거의 드러내고 있다. 마침 모내기는 거의 끝났지만 이상 기온으로 가뭄이 심해 논바닥이 거북등 같다. 한 농부가 그곳에 양수기를 들이대고 마저 남은 물을 끌어 논에 대고 있다. 금년에는 봄 가뭄이 심해 농작물 피해가 예상된다고 하니 농민들의 속 타는 심정이야 오죽하랴 싶다. 뜰에는 보리가 여물어 황금벌판이다. 산자락을 따라 길게 이어진 밭에 누런 보리가 실하게 영글었다. 지난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나고 결실을 본 것이다. 우리 몸에
오랜만에 남원(南原)을 찾았다. 가끔씩 오다가다 들리긴 했지만 이번 여행은 큰 마음먹고 광한루(廣寒樓)와 춘향의 일대기를 실물로 형상화한 춘향 테마파크를 천천히 돌아볼 작정으로 온 것이다. 소설 속의 인물이지만 400여 년 전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을 새로이 만나는 것도 가슴 설레는 일이다. 큰 냇가의 다리를 건너 춘향촌(春香村)을 거스른다. 인위적이지만 고샅고샅마다 정성들여 옛날 거리를 재현하여 마치 옛 유적을 보는 듯하다. 동헌(東軒)을 들어서니 망나니가 춘향을 묶어놓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대청마루에서 내려 보는 사또의 추상
대청호수가 내려뵈는 이곳 능선 길은 아늑하고 포근하다. 시원한 물색과 주변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외국에 있는 친구는 이 모습을 보고 그냥 쳐다보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웅장하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소박한 우리 산천의 본 모습이다. 한자리에서 사철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이곳은 어느 풍경 부럽지 않다. 집 가까이에 이런 풍치를 즐기며 사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나무 그늘은 시원하지만 관목(灌木)을 지나노라면 후끈후끈한 열기가 얼굴을 스친다. 한 여름에 들어서니 한낮의 기온이 온몸에 느껴진다. 나뭇잎도 무성하여 검푸르다. 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