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신의 말도 전해주십시오.”그제야 홍나부인이 정신을 차리며 말을 받았다.“그러시지요. 전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무엇인지...”여불위는 차를 한 모금 들이킨 다음 자분하게 속내를 털어 놓았다. “화양부인께옵서는 자식이 없사옵니다. 그리고 후계자를 정한 것도 아니옵니다. 이러다 안국군께서 태자에 봉해지시면 자식 없는 화양부인께서는 사랑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더욱이 효성이 없는 자를 태자로 맞는다면 부인께서 늙으셨을 때 태자의 사랑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이옵니까?”홍나부인은 여불위의 말을 들으며 사념에 잠겼다
여불위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던 상인이었으므로 7국에 대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진나라의 정치적 상황은 손금 보듯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거상이 된 것도 그만한 안목이 있어서였다.진나라는 태자가 건강이 좋지 않아 늘 우환에 휩싸여 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를 상황이었다. 늘 병약하여 왕실은 후대를 걱정하고 있었다. 이러다보니 진나라의 태자가 죽게 된다면 소양왕의 둘째 아들인 안국군이 태자가 되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물론 그에게는 20여명의 아들이 있었지만 자초도 그중의 한사람이었다. 서열이야 어떻든 자초
자초가 널찍한 방 가운데 자리를 잡자 상다리가 휘청거릴 만큼 많은 음식이 오른 주안상이 나왔다. 산해진미에 그가 좋아하는 마른 해물이 상 언저리에 보였다. 입맛이 돌았다. 이어 무희들과 기녀들이 줄을 지어 들어왔다. 그 가운데는 그에게 수청을 들 청순한 기녀도 함께 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그녀는 조금도 때 묻지 않은 청순함이 얼굴에 묻어있었다. 순박한 눈빛과 불거래 달아오른 볼 그리고 앵두같이 붉은 입술.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술기운이 돌 지경이었다.무희들이 비파와 북, 피리소리에 맞춰 춤을 추었다. 기녀들은 상에 둘러
여불위는 그길로 집으로 돌아와 늙은 아버지를 찾아뵈었다. 그의 얼굴은 달덩이처럼 피어올랐다. 누가 봐도 좋은 일이 있음이 분명해보였다.“무슨 좋은 일이 있기에 그리도 싱글거리는고?”늙은 아비가 문간에 쪼그리고 앉아 물었다.“아버님 농사를 지으면 얼마나 많은 이익이 납니까?”여불위는 그의 앞에 바짝 다가앉으며 물었다.“열배쯤 되지.”늙은 아비는 체머리를 흔들며 말했다.“주옥을 팔면 얼마의 이윤이 날까요?”“백배쯤은 되겠지. 그런데 그것을 왜 묻는 거냐?”“그럴만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왕을 세우고 나라를 안정시키면 얼마나 벌 수 있
“왕손께서는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집안은 왕손님의 집안이 잘 되어야 빛이 날 수 있사옵니다.”여불위는 자초의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제야 자초는 여불위가 다른 뜻이 있음을 알고 조용히 일어서서 동정을 살폈다. 그곳에 있는 하인들이란 작자들이 조나라의 염탐꾼이나 다름이 없었으므로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초는 밖을 살핀 다음 내실 문을 닫아걸었다. 주변이 조용해지자 여불위가 차분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여불위는 현재 진나라 왕실의 내부형세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자분자분 말했다. 자초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귀
“모르겠사옵니다. 비단옷을 입은 사람인데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왕손님을 뵙자고 청하옵니다.” 하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비단옷을 입고 나를 찾아왔다고?”자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상기된 표정으로 황급히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누구도 찾아주는 이 없는 처소에 비단옷을 입은 귀인이 찾아왔다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보면 간절히 기다리던 일이었다. 속으로 숙원하고 또 기원했던 일이 찾아온 것이었다. 그렇다고 호들갑을 떨며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조금은 무게를 잡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가쁜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왕마마. 이 일을 절대 비밀에 붙이신다는 약조를 해주시옵소서."장록은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과인이 그렇게 하겠소. 걱정 마시고 말씀해 보시오."그제야 장록이 머뭇거리며 천천히 입을 열였다. “안국군 마마께는 20명에 달하는 공자들이 있으며 그 가운데 자초라는 왕손이 있사옵니다. 하지만 그는 안국군 마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그의 모친 되시는 하희마마 역시 안국군의 사랑과는 먼 거리에 있사옵니다. 그를 조나라에 보내는 것이 합당하다고 사료되옵니다.”“자초라… 자초. 과인에게 그런 왕손이 있었던가.”소양왕은 스스로에
“하지만 먼저 짚어봐야 할 일이 있사옵니다. 지난날 위나라가 조나라 건너편에 있는 중산국을 쳐서 빼앗기는 했으나 결국 중산국은 위나라가 차지하지 못하고 조나라가 차지했사옵니다. 중산국은 지리적으로 조나라와는 가깝지만 위나라와는 멀기 때문이옵니다.”“그렇다면 어떤 계책이 필요하겠소?”“먼 곳에 있는 나라와는 친교를 맺고 가까이 있는 나라를 먼저 거두어 들여야 할 것이옵니다. 그렇게 한다면 한 치의 땅을 얻어도 대왕의 땅이 될 것이옵니다.”“승상의 말씀대로라면 우선 먼 곳에 있는 조나라와 제나라와는 친하게 지내고 가까운 한나라와 위나라
소양왕은 그날 관료들의 퇴청이 있은 직후에 승상 장록을 늦은 밤 함양궁 내전으로 부르도록 내관에게 일렀다. 긴히 논의할 일이 있어서였다.장록은 본래 위나라 사람으로 진나라로 건너와 승상에 오른 인물이었다. 책략이 비상하고 인품이 뛰어나 소양왕은 그를 옆에 두고, 크고 작은 일을 의논하여 결정했다.특히 장록은 선태후와 양후 그리고 소양왕의 친 형제지간인 고릉군과 경량군 등이 모든 실권을 쥐고 국정을 농단할 때 소양왕이 이들을 물리치도록 도왔으며, 친정체제를 구축하도록 한 인물이었다. 때문에 소양왕은 누구보다 그를 신임하고 있었다.장록
춘추전국시대를 가로지른 역사의 강은 권력에 대한 야욕과 숱한 민중들의 피로 얼룩졌다. 음모와 살상 그리고 끝없는 보복은 피가 피를 불렀다. 신흥 제후국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또 스러지기를 반복했다. 춘추전국시대를 엄격히 구분하면 기원전 770년에서 기원전 476년에 이르는 294년을 춘추시대라고 부른다. 동주시대를 공자가 편찬한 노나라 편년체 역사서 ‘춘추’의 이름을 따서 그렇게 불렀다.이 시대는 주나라 왕실의 재건을 위해 제후들이 다툼을 벌인 시대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주나라 왕실의 권위에 도전한 제후에 대해 다른 제후들이 그를
진시황은 (BC 259-210)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인물이다.그는 태황(지신)의 황자와 오제의 제자를 사용하여 황제라는 시호를 만들어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를 진시황이라고 부르는 것은 진나라의 최초 황제란 의미다.천하를 통일한 뒤 군현제를 확행하고, 문자를 소전체로 통일시켰으며, 수레의 궤도를 획일화시켰다. 또 도량형을 통일시키고 동서를 잇는 일종의 고속도로인 직도와 치도를 건설했다. 치도는 통치를 위한 전용도로였던 셈이다.운하를(34킬로미터) 뚫어 남북을 연결시켰으며 사상을 통일시켰다. 이로써 일백여 제후들이 통치하던 중원은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