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는 한마디로 유학의 시대요. 중국 숭상의 존화(尊華)시대라 하겠다. 그러나 우리 민족 고유의 철학과 역사는 이런 것들에 의해 능멸 되다시피 하였다. 당시 유학자들에 의해 능멸당한 우리 민족사를 되찾고자 일생을 바친 민족사가가 있었으니 바로 규원사화를 쓴 북애자(北崖子)이다.▴ 북애자(北崖子)는 누구인가?본명은 밝혀지지 않고 별명이 북애 노인이라는 뜻의 북애자(北崖子)인 그는 조선 숙종 원년(1675)에 저술되었다고 전해지는 규원사화의 저자라는 것 외에는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다. 북애자는 규
일제에게 강탈당한 나라와 역사를 되찾는 독립 투쟁에 57년의 삶을 전부 소진시킨 단재 신채호선생의 독립투쟁사를 기려본다.▴ 단재의 57년 삶은 독립투쟁의 역사였다.선생은 충청남도 대덕군 정생면(현재 대전시 중구 어남동)에서 태어났고(1880년, 고종 17년) 중국에 있는 여순감옥에서 57세 나이로 순국하였다.(1936년) 선생은 6세 때부터 조부(申星雨)가 운영하는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하여 13세 때 사서삼경을 독파하여 신동 소리를 듣기도 하였다.19세 때 성균관에 입학한 선생은 박은식 선생이 주도한 진보적 유학을 접하면서 봉건유생
우리 역사를 중국에 팔아먹은 사대사가(事大史家), 일본에 팔아먹은 식민사가(植民史家)가 있었는가 하면 목숨을 걸고 우리 역사를 지켜온 민족사가(民族史家)들이 계시다. 조선시대에는 북애자(北崖子), 일제 강점기에는 백암 박은식 선생과 단재 신채호 선생이 그 대표적인 분들이라 하겠다. 먼저 백암 박은식(白巖 朴殷植)선생의 민족운동과 우리역사를 통한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기로 한다.(여러 자료 및 문헌을 참조하였음)▴ 선생의 66년 삶, 이 나라 독립의 제단에 바친 삶이었다.• 선생은 황해도에서 태어났으며(1859년 철종), 부친
▴ 일제의 우리역사 말살 의도는 무엇인가?무력으로 조선을 점령한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을 영원한 식민지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제의 가장 큰 고민은 조선이 그들보다 월등히 긴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이라는데 있었다. 조선시대 왜구들이 노략질을 하면서도 조선의 위력을 두려워했듯이 일제가 조선을 침탈하기는 했으나 지배하기는 힘이 부족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총칼로 일시적 지배는 할 수 있었지만 영원히 통치하기에는 그들의 문화 총량이 조선보다 못함을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네들보다 훨씬 월등한 조선의 역사 문화를
▴ 우리는 아직도 역사 광복을 하지 못하였다.1897년 10월 12일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국내외에 선포하고 황제자리에 오름으로서 비로소 우리는 500여년 중국의 속국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음으로서 우리는 35년간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 있다. 바로 우리의 역사다. 나라광복은 하였지만 역사광복은 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 역사는 사대사관, 식민사관의 독에서 해독되지 못하고 있다.우리가 중국의 속국에서 벗어 난지 120여 년이 넘었고, 일본의
사회적 지위를 얻고, 최고의 전문가가 되었다고 참 성공을 이룬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참 성공인생을 사는 것인가? 그 답과 지혜를 찾아보기로 한다.▴ 자신의 성공이 남과 사회를 위함이 되어야 한다.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룸이 성공이다. 그러나 이루어진 것만 으로는 참 성공이라 할 수 없다. 그 이루어진 것이 덕으로 이어져야 참 성공인 것이다. 즉 사회적 지위에 오르는 것만으로는 참 성공이라 할 수 없다. 그 지위를 가지고 덕을 베풀고 공을 쌓아야 참 성공이다. 이순신 장군께서는 삼도수군통제사로서 사회적 지위 성공을 이루었다
성공에는 대체로 사회성공, 전문가성공, 인생성공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지난 호에서는 사회에서 정상의 지위에 오르는 사회성공에 대한 지혜를 찾아보았다. 이번에는 어느 전문분야에서 최고의 능력자가 되는 전문가 성공지혜를 찾아보려 한다. 어떠한 성공도 역경과 시련, 자신감과 사명감의 시험관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이루어 질 수 없다. 다시 말해 어느 분야에 최고의 능력자가 되기 위해서는 아무리 힘들어도 역경과 시련의 시험관문을 통과해야 하고,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자신감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하고, 그리고 그 일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룸이 성공(成功)이다. 그러나 이루고자 하는 어떤 성공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고 한 번에 이루어짐은 없는 것이다. 성공의 과정, 성공의 시간 그리고 성공의 운(運)이 필요한 것이다. 주역에서 성공의 지혜를 찾아보기로 한다.▴ 도광양회(韜光養晦)하라.주역에서는 잠룡물용(潛龍勿用) 즉‘물속에 잠겨 힘을 기르고 있는 용은 쓰지 말라’하였다. 다시 말해 물속에 있는 잠용은 물속에서 충분히 힘을 기르면서 나갈 때를 기다리라는 것이다. 성공자가 되기 위해서는 충분히 실력을 갈고 닦으면서 그 때를 기다려야 한다. 이때
▴ 욕망뒤에 허탈함을 염려하라.‘산해진미(山海珍味)도 배부른 뒤에는 음식쓰레기요. 절세미인(絶世美人)도 정사(情事)후에는 목석(木石)이다.’했다. 산해진미(山海珍味)도 식욕을 채운 후에는 음식쓰레기가 되고 절세미인(絶世美人)도 색욕을 충족한 후에는 목석(木石)이 되는 것처럼 욕망의 달콤한 뒤에는 허망함, 후회스러움이 찾아온다. 술을 마실 때는 즐거웠으나 술 깬 뒤에 허탈함도 이와 같게 하겠다. 이것이 욕망의 생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욕망의 달콤함만 취하려 하지 말고 욕망 뒤에 올 허망함, 후회스러움을 먼저 염려해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의 존경받는 성공자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의 자기관리에 대한 어록 중에서 몇 가지를 발췌하였다. 공감해 보았으면 한다.▴ 게으름 때문에 스스로가 두 배의 세금을 감당해야 한다.여러분 우리는 정부에서 부과하는 세금보다 훨씬 무거운 세금을 스스로가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게으름 때문에 두 배의 세금을, 허영 때문에 세배의 세금을, 어리석음 때문에 네배의 세금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러한 세금은 아무리 가혹하다 할지라도 정부 관리들이 줄여주거나 면제시켜 줄 수가 없습니다. 게으름은 병을 만들어 우리생명을 단축시킬
미국의 존경받는 성공자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의 자기관리 실천덕목 13가지 중 마지막 덕목인 겸손(謙遜)에 대해 공감해 보기로 한다.▴ 프랭클린은 겸손의 덕목을 가장 어렵게 여겼다.프랭클린은 원래 자기관리 실천덕목으로서 12가지를 정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프랭클린에게‘대화를 할 때 자존심을 너무 드러내고, 토론할 때도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여 사람들이 자네를 오만한 사람이라고 어길지 모를 것이다.’는 충고를 해 주었다고 한다. 프랭클린은 친구의 이러한 충고를 받아들여‘겸손’이라는 덕목을 13번째로 추가하였
미국의 존경받는 성공자의 한 사람인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 그의 성공 원동력인 13가지 자기관리 실천덕목 중 청결, 침착, 순결에 대해 공감하여 보기로 한다. 공감은 실천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청결, 첫 인상의 필수 조건이다.남녀 관계는 대부분 첫인상에 끌려서 사랑하게 된다. 이러한 첫인상이 상대방 머릿속에 새겨지는 데는 3초가 걸린다고 해서 3초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심리학자인‘엘버트 메리라비안’교수는 첫인상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체형, 얼굴표정, 옷차림 등 외향적 요소가 90%이상을 작용한다고 하였다. 옛 사람